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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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에 합류한 지 이제 두 달이 지났다.

“서버에 고사를 지내자고요?”

성공이나 돈을 바라며 온 건 아니다. 그저 정글에 가보고 싶었을 뿐. 새롭고 어렵고 멋진 것. 그런 걸 하고 싶었다. 뜨끈한 권태감에 푹 퍼져있다가도 몸서리가 쳐졌다. 이렇게 안주하기에 나는 아직 너무 젊잖아. 그렇게 이직에 성공했지만, 새로 구비한 여섯 대의 서버 컴퓨터에 회사의 성공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자는 제안을 듣자 깨달아버렸다. 나는 정글에 온 게 아니라 도를 아십니까에 끌려왔다는 것을.

“서버한테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 거죠. 아 글쎄 내가 전에 있던 데서 나오려다 스톡옵션이 아까워서 마지막으로 고사라도 한번 해보자,하고 족발 사 와서 했더니,”

“했더니?”

“다음날 우리 앱 다운로드 수가 5,000건이 넘은 거 있죠?”

앱 개발자 주성이 냉면을 후루룩 먹으며 말했다. 타코야키같은 노릇한 민머리를 뽐내는 그는 올해로 마흔. 시도 때도 없이 과거의 스톡옵션 자랑을 할 때면 나불대는 조동아리를 콕 나무꼬치로 쪼아버리고 싶다. 그나마 타코야키는 맛있기라도 하지.

“그게 무슨 개소… 아니, 컴퓨터에 지박령이라도 산대요?”

오늘은 너무 당황해서 비속어가 나올 뻔했다.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누군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 그러나 몽상과 아이디어는 한 끗 차이라 했던가. 개중에 참신한 생각이 나와서 삽시에 프로토타입까지 뚝딱 만들어내는 게 스타트업의 묘미긴 했다.

“돼지 발이 아니라 머리로 했으면 코스피 상장했겠네요.”

모두가 웃음을 빵 터뜨렸다. 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곳에 취업한 신입 개발자 지원이었다. 앳된 얼굴의 지원 덕분에 이곳엔 특이한 사칙이 하나 있다. 바로 회식할 때 사원증을 목에서 빼지 않기. 지원의 첫 출근날 호프집에서 환영 회식을 하던 중 경찰이 들이닥쳤다고 한다. 아저씨들이 어린 여자애를 하나 데리고 소맥을 말자 주인이 경찰을 부른 것이다. 가출청소년, 혹은 성매매 같은걸 의심했으리라. 가끔은 이 업계의 극단적인 성비에 한숨이 나온다. 그 자리에 여자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괜찮았을텐데.

“그래, 머리! 그땐 회사에 돈이 없어서 족발로 했는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주성은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 사람 진심인가. 앨런 튜링이 이걸 보면 저승에서 스틱스 강을 헤엄쳐 건너올텐데. 불안감이 엄습하던 귓가에 짝짝 소리가 들려왔다.

“저 나가봐야 하는데 다 드셨으면 일어나시죠.”

파트너 매니저로 일하는 상철이 손뼉을 치며 바쁜 체를 했다. 파트너 매니저라, 멋진 직함이지만 뭘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맨날 외근나가서 음식점에서 법카만 긁어대는 걸 보면 낙하산이 의심됐다. 알고 보면 대표의 사촌이라던가, 아니면 뭔가 큰 약점을 쥐고 있다던가.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