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악몽 – 인형괴담 의뢰(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인형 괴담 (작가: 매도쿠라, 작품정보)
리뷰어: dorothy, 17년 5월, 조회 180

.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십여 년 전 우리 집엔 미미 인형이라고, 바비 인형의 하위호환 인형이 하나 있었다. 8등신도 훨씬 넘는 몸매에, 긴 머리카락, 그리고 화려한 분홍 옷까지 모두 갖춰입은 그 인형은, 내게는 공주님 그 자체였다. 정성스레 매일 머리를 빗겨주고 목욕을 시켜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의 언니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얘, 네 인형, 계속 머리가 자라는 것 같아.”

  지금으로서는 확실하지 않은 기억이지만, 나는 그 때 그 언니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우습게도, 그때의 나는 대수롭잖게 생각했었다. 인형의 머리가 자란다니! 지금 같으면 기겁해서 던져버렸을 텐데.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미미의 머리를 빗기고 목욕을 시켰었다.

결국 내가 그 인형을 버린 것은 향기가 나게 만들고 싶다며 독한 엄마 향수를 열 번 정도 뿌린 뒤였다. 아무리 씻어도 냄새가 빠지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미미와 작별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도 의문인 것은, 그 땐 정말로 머리가 자란 것 같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너무 뜨거운 물로 머리를 감겨서 늘어난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직접 겪은 일이건 그렇지 않건, 아마 한 번쯤은 인형에 대한 괴담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 잡아먹는 피에로 인형은 문구점에서 파는 손바닥 반만했던 500원짜리 공포 모음집의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인형을 옆에 끼고 살았던 어린 아이들에게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끼던 인형이 말하고 움직이는 게 악몽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비단 인형 뿐 아니라, 학교가 문을 닫는 고요한 밤이되면 동상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괴담들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캄캄한 밤에, 절대 움직일 수 없는 물체들이 돌아다닌다니. 아이들에게 이렇게 무서운 게 또 있겠는가.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여섯 살 때 가위에 눌렸던 기억을 되새긴다. 눈과 귀만 번쩍 뜨인 채로, 인형들이 떠드는 것을 보고 들었던 그 어린 아이는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하지만 독자는 묘하게 익숙한 인형들과 이상하게 우스운 대화에 빨려들기 시작할 것이다.

하찮은 것들. 내 검술을 잘 보았는가.

피에로가 눈짓을 날렸다. 로봇과 헬로우티키가 장군 인형을 둘러싸고 가만히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누렁이는 죽었나?-

-끼릭, 솜뭉치가 흥건합니다. 끼리리. 이미 그는……-

“솜뭉치가 흥건합니다.”라니. 인형의 입장에선 솜뭉치가 빠져나오는 것은 망가져 주인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존재,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두려움에 떨며 이런 대화들을 듣던 여섯 살 꼬맹이는 발가락을 꼼질댄다. 그러자 매일 껴안고 잠든 보람도 없이, 피에로 인형은 단박에 예의 그 ‘사람 잡아먹는 인형 괴담’의 주인공으로 변모한다.

-내가 오늘 맛보게 되는 건, 바로 사람 고기다.-

-오! 먹는 건가냥?-

-이 아이의 발가락부터 천천히, 하나씩 잘라서, 입에 넣을 거다-

-끼릭, 고통에 비명을 지르지 않을까요? 끼리리-

끼릭대고 냥냥대고 멍멍대는 이상한 인형들의 대화에서, 어쩌면 갑작스럽게도 제목에 걸맞는 ‘괴담’이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들은 독자들에게 여러 의미의 충격과 공포를 주기에 부족하지 않다.

백만 볼트! 를 외쳐야 할 것 같은 노랭이 인형과, 어쩐지 건전지 광고에 등장할 것 같은 듀라 토끼 인형의 반격으로 말하고 움직이는 인형들 사이에 작은 전쟁이 일어난다. 그리고 등장하는 악어 인형, 라이.

주인공이 처음으로 선물받았던 악어 인형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버려지지 않고 낡고 때탄 모습으로나마 아이의 방에 살아남았다. 옆에 곰돌이 인형을 놓고 자면 밤새 악몽과 싸워 준다던가 하는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낡은 악어 인형이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특이한 작품이다. 동화로 시작해서 괴담이 되었다가, 다시 동화로 끝난다. 장르 혼합의 괴작이 탄생했다. 괴작이라해서 또 말도 안되는 작품인가 싶으면 그런 것도 아니다. 시쳇말로 ‘병맛’이라 하던가. 매도쿠라 작가의 장르파괴 실험은, 병맛을 의도한 게 맞다면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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