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 ‘쥐’의 주인공 격 인물은 재은입니다.
아직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어린 자녀(율이)가 있는 그녀는 또한 주말부부이기도 합니다.
대전에 외따로이 떨어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재은의 남편.
대전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곧바로 사내 테니스 동호회의 충성회원이 된 그는 재은과 아들 율이 살고 있는 집 따위는 별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알아서 잘 크기 마련인 상추밭 정도로 여기는 모양인 가정에 은근히 무심한 흔한 가장입니다.
재은이네는 몇 년 전에 현재의 아파트로 이사를 왔습니다.
신혼생활을 시작했던 1억 4천짜리 빌라 전세방에서 알뜰살뜰 모은 종잣돈과 은행 대출금까지 껴가며 율이네 가족이 매입한 최초의 집은 그러나 삐까번쩍하게 아름다운 집이 아니었습니다.
구석구석이 갈라지고 물이 세며 무엇보다도 소설의 제목인 동시에 극의 중심갈등을 이끌어내는 ‘쥐’가 출몰한다는 구축 아파트.
이런 누추한 아파트를 굳이 사들인 까닭은 바로 재은의 무심한 남편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그가 사내 테니스 동아리 활동만큼이나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부동산 제태크의 레이더망에 해당 아파트는 준공일로부터 30년이 넘어 재건축이 될 가능성이 높다라는 신호가 감지되었기 때문이죠.
안전진단검사를 받아서 등급만 잘 따낸다면 재건축이 될 수 있다라는 추측과 희망이 섞인 전망. 비단 재은의 남편 혼자만의 염원이 아닐 것인 ‘재건축’은 그러나 재은에게는 허무맹랑한 뜬 구름 잡기에 불과합니다. 학군 지로 유명한 서울의 대단지 아파트조차도 퇴짜를 맞았다는 안전진단을 과연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 구축 아파트가 통과될 수 있을지가 영 미덥지가 못한 것이죠. 더군다나 ‘쥐’까지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그녀의 사고의 흐름 저변에 깔려있는 부정적인 물길은 더욱 급류를 타기 마련이었습니다.
재은과 쥐의 첫만남은 강렬했습니다.
새벽의 야음이 가시지 않은 화장실.
변기물 속에서 네 발을 바르작거리던 시커먼 물체. 물 밖으로 간신히 내민 주둥이와 구슬처럼 박힌 두 눈과 마주친 그녀는 생각을 하기에 앞서서 부서져라 변기 뚜껑을 닫아버렸고 이어서 변기에서 빠져나온 쥐가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화장실 문을 꼭 닫아버렸습니다.
집에 쥐가 나타나는 일은 사실 그 자체로만 놓고 보자면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닙니다.
쥐는 번식력만큼이나 생존력이 뛰어난 만큼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생물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하수구를 타고 올라와 종종 쥐가 출몰한다는 1층이라면 모를까 재은의 집은 10층입니다. 재은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도움에 기대고픈 마음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만
대전 어디에선가로부터 스피커를 통해 전달된 남편의 목소리는 어딘지 영 미덥지 못하다는 듯한 투였습니다.
“그럴리가 있나”
태평하게까지 들려오는 남편의 음성.
자신들의 집이 10층에 있음을 모를 리 없는 남편은 그저 아내가 꿈을 꿨거나 아니면 헛것을 본 것이라고 치부할 따름입니다.
아니 그런데 말이에요 믿어주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우선 걱정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온갖 병균 덩어리를 물어 옮기고 다니는 쥐가, 하물며 애정이 예전만 못지 않은 아내 재은은 고사하더라도 하나밖에 없는 어린 아들이 살고 있는 집의 한 공간에 버젓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믿지는 않을지언정 최소한 걱정이 묻어나는 말 한마디 정도는 건네야 하는게 맞지 않나요? 아무튼 남편에게서는 기댈 희망을 찾지 못한 그녀는 나름의 방법을 강구합니다.
우선 그녀는 배관공을 불러 쥐가 드나들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하수구 구멍 위에 트랩을 설치합니다. 그러나 웬걸.
이번에는 내달리는 듯한 소리가 천장 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쥐가 하수구의 배관을 타고 이동을 했을 것이라고 판단한 그녀는 이어서 세탁기와 연결된 배수구의 벌어진 틈새를 테이프로 꼼꼼하게 막아놓습니다. 관리실에도 연락을 해봤습니다만 그경비로서도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천장을 뜯는 공사는 관리소의 소관이 아닐뿐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이 돌아올 뿐입니다. 경비는 쥐를 잡을 수 있는 끈끈이를 내어 드릴 수는 있다고 말합니다만 재은은 결국 이를 거절합니다.
그녀는 최후의 방법으로 집을 내놓자는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는 정말로 상가의 부동산 가게를 찾아가 급매가로 아파트를 내놓기에 이르릅니다.
과연 그녀는 쥐의 공포로부터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요?
소설 ‘쥐’를 읽으면서 문득 ‘집’에 대해서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모양새로 자리잡은 주거형태인 아파트.
그리고 불과 작년 초까지만 해도 고공행진이 멈추지 않아 너도나도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던 부동산 투기의 대상물.
그러나 소설 내에서 등장한 ‘집으로 팔짜 고치기’란 현재의 우리에게는(적어도 2023년의 저에게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말이 되었습니다. 경기침체와 금리 인상이라는 더블 펀치를 동시에 얻어 맞은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은 그 기세가 허무하리만치 꺼져버렸으니 말이죠.
집값 하락으로 인해서 역전세(집값이 큰 폭으로 하락하여 기존의 전세 값에 매매가격이 역전당하는 것)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작금의 대한민국의 상황은 피부로 느끼면서도 사실 쉽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다시한번 일부 등장인물들을 재조명해볼까요?
재건축에 눈이 먼 남편.
부동산에는 별 관심이 없는 주인공 재은.
지금 아파트를 파는 것은 아깝다며 안전진단이 통과한 다음에나 집을 내놓는게 어떻냐는 부동산 사장.
쥐가 나오는 게 무슨 대수냐며, 나는 아직도 집을 팔아서 1억을 손해본 게 한이라는 재은의 언니.
그리고 쥐.
어쩌면 쥐는 모두가 부동산 가치의 불패성을 외치는 가운데 자신만의 방법으로 암담한 미래가 찾아올 것이라는 경고를 외로이 보내는 예지자가 아니었을까요?
주인공은 결과적으로 쥐로 인해서 정말로 아파트를 팔 뻔했습니다만 저지를 당합니다.
어쩌면 그녀는 아파트를 팔 기회를 영영 잃은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앞서는 이유는 왜일까요?
혹독한 겨울이 찾아와 그 끝이 보이기는커녕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일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온 사방에서 들려오는 현재.
어쩐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쥐의 경고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소설 ‘쥐’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