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가 좀비인지 네가 좀비인지 아무튼 누군가는 좀비인데.. 의뢰(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아직 살아있나요? (작가: 엄성용, 작품정보)
리뷰어: 리체르카, 17년 5월, 조회 174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저는 독서 편식가라 좀비 소설이나 호러 소설 등에는 그다지 조예가 없습니다. 작가님이 다른 독자님과 단문응원에서 나눈 “뇌를 먹고 본인이 되는 고전적인 설정”이라는 이야기도 굉장히 낯설었어요. 제가 알고 있는 좀비는 피아식별 없이 다른 생물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언데드 몬스터의 일종이었으니까요. 사실 저한테는 굉장히 참신한 설정이었거든요. 뇌를 먹고 당사자가 된다니! 때문에 제 감상은 주로 보편적인 독자의 시선이겠구나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어릴 때 보았던 영화중에 제 기억 속에 제일 공포스럽게 남았던 건 미이라의 딱정벌레였던 것 같습니다. 그 푸르스름한 등딱지의 딱정벌레요. 살을 파고들어가서 사람 피부 밑을 기어 다니며 내부를 파먹는 벌레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영화를 본 이후로 어디 구석에서 그 벌레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항상 이불 속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고 잠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직 살아있나요>의 황금색 딱정벌레는 바로 그 벌레를 상기시켰지요. 먹고 난 다음 후처리가 다르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벌레가 사람을 먹습니다. 게다가 날아다녀요! 수도 많습니다. 그냥 날아다니는 벌레만으로도 비명은 따 놓은 당상인데 좀비화까지 되다니요. 아무튼 설정부터 으악 하며 읽기 시작했더랍니다.

 

겨울. 홀로 산장에 남겨진 주인공. 그리고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고리는 전화선 하나요, 기록적으로 내리친 눈발. 공포 분위기는 대충 조성되었습니다. 산장지기는 조난객을 맞이하지요. 그런데 평범한 조난객이 아닙니다. 대화 상대는커녕 부러져가는 다리를 완전히 부러뜨리며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팔팔한 조난객이에요. 비록 입에서 침을 흘리며 주인공을 먹겠다고 하는 것이 썩 멀쩡해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두 번째 조난객과 함께 위기를 물리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음 위기를 향한 복선에 불과했는데..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헤이트풀 8을 떠올렸는데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입니다. 교수형 집행인, 현상금 사냥꾼, 카우보이, 남부군 장군 출신 노인, 보안관, 여죄수 등의 폭력이 적나라한 글인데, 묘하게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영화 생각이 나더군요. 눈 때문에 한 장소에 고립되어버린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나누는 치열한 긴장감, 그리고 승자 없는 마지막 때문이었을까 싶습니다. 이 영화의 OST와 글이 꽤 잘 어울립니다.

 

주인공과 함께 휩쓸리기 시작한 독자는 무엇이 진실일지 헷갈리게 되는데요. 두 번째 조난객과 세 번째 조난객이 털어놓은 진실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혼란이 오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주인공 상태가 썩 좋질 않아요. 누구라도 이런 초자연적인 공포 앞에 탈출구 없이 버려지면 이런 패닉을 맞이할 것 같긴 하지만, 두 조난객의 치열한 설전 앞에서 현명한 선택을 해 보였던 이전 주인공의 번쩍이는 기지는 사라지고 공포에 떠는 공포극 주인공의 두려움만 남았다는 것이 약간 아쉽습니다. 주인공의 변화가 극적인 이유는 그가 처한 상황이 너무 극적이라서였겠지요.

극심한 스트레스 앞에 그의 머리는 결국 눈처럼 새하얀 백발이 되어버립니다. 좀비를 만난 것보다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 그를 더 미치게 만들어버린 것 같아요. 물론 순차적인 일이었지만 그는 좀비를 죽인 것보다 사람을 죽인 것이 더 말이 되지 않는다며 자책하고 마지막 조난객을 흔들며 질문을 던집니다. 아직, 살아있나요?

 

맨 마지막에 가서 독자는 해결되지 않은 의문과 맞닥뜨립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인간이었나? 아니면 주인공 역시 벌레에 조종당한 좀비였을까? 자기가 죽은지 모르는 좀비도 있을 수 있다고 했으니,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마지막 조난객은 주인공이 한 적도 없는 말을 꺼내며(이건 첫 번째 조난객에게 했던 이야기였지요. 커피를 준 것도 그렇고요) 이제 괜찮은데 왜 그러냐고 묻습니다. 사실은 이 글을 이해하는데 몇 번의 재독이 필요했어요. 어, 그랬었나? 하고 확인하러 다시 올라가야 했거든요. 결과적으로는 너도 좀비, 나도 좀비, 위아더 좀비의 결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주인공은 좀비가 아닐 수도 있을 모양인데, 그래도 사람을 죽였다는 스트레스와 다시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좀비 시체들에 둘러싸여 참혹한 마지막을 맞이할 것 같고요.

내용에 관한 감상은 여기까집니다. 약간 횡설수설하지요. 처음 읽었을 때 비몽사몽한 상태로 읽어서 이해가 잘 안 가는구나 싶었는데 두 번째도 비슷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독자에게는 조금 불친절한 소설인 모양입니다. 보통 공포 소설 주인공이 끌려가는 상태가 태반인 것에 반해 이 주인공은 나름 선택하고 결정하려 노력하는데 썩 좋은 결과는 아니에요. 마지막까지 따라온 독자는 주인공이 택한 길이 그래도 그에게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패닉상태에서의 추론에까지는 따라가지 못하고 중간쯤부터는 마지막 조난객-형민과 주인공 사이를 왔다 갔다 하게 되어요. 그가 자기 머리가 백발이 되지 않았나 염려하는 시점에서 주인공에게서 분리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떻게 전화가 안 중요해. 그러고는 독자는 그가 커피와 식량에 관해 했던 이야기가 정말인지 되새기려 하는데, 거기서 이야기가 뚝 하고 중단되어버립니다. 끔찍한 방법으로 끝나지요.

이 사람이 뭘 말했더라, 저 사람이 무슨 말을 들었지? 하는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재독을 하고 나면 약간쯤 머리가 덜 아프지만 그래도 주인공의 끝은 참담합니다. 이게 상황적으로 좀비가 이용되어 공포소설이지만 이리저리 따지고 보면 공포보다는 추리/스릴러 장르에 더 어울리는 글이 되었어요. 일단은 이쪽에 좀 더 무게가 가는 글로 읽었고요. 좀비는 소재와 양념일 뿐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는 “누가 좀비이고 누가 사람인가?”에 관한 쌔빠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으음, 그래도 삼 미터씩 뛰어오르는 좀비와 사람 먹는 딱정벌레가 확실히 공포스럽기는 한데 저를 제외한 다른 분들께는 신선하지 않은 이야기였다고 하니까 호러 장르 약간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긴장감 있고 좋은 이야기였지만 조금 산만하고 복잡합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으나 주인공에 동화되어 같이 혼란스러워지므로 흐름을 잃기 쉬운 것 같습니다. 1인칭 시점의 특징인 것 같아서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함께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노리셨다면 아주 좋은 서술이었습니다. 제 머리도 한 가닥쯤 백발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글은 있을 법한 일이기에 더 무서운 종류의 글이라 좋아합니다. 횡설수설하는 리뷰였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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