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사실 이 리뷰를 쓰기까지 굉장히 골머리를 앓았었다. 분명 인기작 1위인데다, 성실연재되고 있으며, 심지어 세계관도 정교하게 잘 짜여있다. 그런데 왜 머리를 감싸고 끙끙대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 나는 ‘도입부에서 헤매는 독자’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낙원과의 이별」에 달린 또다른 리뷰를 보자. <도입부에서 헤매는 독자님들을 위한 안내서>. 얼핏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떠오르는 제목. 하지만 필자같은 사람에겐 꼭 필요한 것으로 느껴졌던 고마운 리뷰였다. 그리고 지금부터 작성하려고 하는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필자는 초반 몇 회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써 보려 한다.
제1화.
. 생소한 인명과 지명의 남발. 많은 판타지 장르의 고질병이라 사료되는 이 문제점은 「낙원과의 이별」에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친왕, 친왕공, 소군 등의 한자어는 그렇다 쳐도, ‘남발’이라고 말할정도로 너무나(!)많다.
. 예현친왕이 환영받는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망나니라 불리며 최전선까지 쫓겨나온 그녀에 대한 소문이 결코 좋지 않고, 그녀가 납득하기 어려운 명령까지 내리는데도 부하들은 그를 비웃기보다는 ‘동정’한다. 대단한 충심이다.
. “비옥한 들판과 야트막한 구릉지에 익숙한 대다수 제국군”들이 사막 한가운데 진을 치고 전투를 한다. 예민하고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다들 너무도 얌전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소위와 중위의 관계가 모호하다. 아무리 중위가 나사가 하나 빠져있고, 소위가 빠릿빠릿하다 해도 전시상황에서 중위에게 일갈할 뿐 아니라 보고 명령까지 내리는 소위가 제국군의 군법으로는 용서되는 것일까?
. 처음 1화를 읽었을 때는 옷 안 피묻은 단검과 대대적 공세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물론 두 번째 읽었을 땐 ‘누군가를 죽이고 돌아왔구나’라며 연관지을 수 있었지만, 첫회독때도 쉽게 알아챌 수 있도록 조금 친절하게 서술해주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에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나 같은 독자는 이 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선과 예현친왕에게 작위가 주어지는 상황 등을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위험이 있다.
. 여기서 첫 번째 장벽이 등장한다. 작품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독자는 흔치 않다.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장르문학은 손에서 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이 순문학과의 차이점이자 장르문학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독자는 장르문학에 ‘쉽게 읽히면서도 재미있는’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제2화.
.역시나 초반이라 그런지 인명과 호칭이 수없이 등장한다.
(전략)
그런 와중에도 3황녀 예진친왕 이서원과 5황녀 예윤친왕 이주원의 남편 강서친왕공, 금상의 계후 진서황후는 조당 내외에서 세력을 형성사기에 급급해 민생은 안중에도 없었다.
예진친왕, 예윤친왕, 이서원, 이주원, 강서친왕공, 진서황후. 한 문장에 무려 여섯 개의 이름과 명칭이 등장한다. 뭐랄까, 처음 가는 모임에서 자기소개랍시고 이름과 직책을 한 번씩 말하고는 곧바로 “제 이름이 뭘까요?”하고 질문을 당한 느낌이다. 명절날, 저분은 네 4촌 동생, 5촌 당숙, 6촌 재종조부, 그리고 저분은 재종백숙부란다! 7촌이지! 등의 말을 귓등으로 흘린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어쩐지 기시감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물론, 중요치 않다는 듯 작가가 금세 넘기긴 했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처음에 등장했었던 친왕의 이름이 뭐였더라? 하고 머릿속에서 뒤섞인다. 이를 조금 읽기 편하게 하려면 명칭을 빼든 하나씩만 골라 적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중요한 인물이라면 뒤에 나올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모르고 넘어가도 상관 없지 않을까? 인물의 이름은 억지로 눈 앞에 들이민다고 머릿속에 저절로 입력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오히려 인물의 한자 이름보다는 에피소드 속에 간간히 등장하는 외래어로 이루어진 지명이 눈에 잘 들어왔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제3화.
망나니 진원의 설정이 갑자기 바뀐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쉴 새 없이 남자를 들이고, 약쟁이에, 사치한다는 소문은 어디서부터 흘러나왔단 말인가? 군관 학교마저 추문에 휩싸여 강제 퇴교되었다는 첫 화와는 너무도 달라진 황녀의 모습에 나는 첫 화로 다시 갈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런 사람이던가? 게다가, 수전노와 사치하는 사람이라는 별칭이 동시에 붙을 수 있는 것이던가? 물론 후에 이에 대한 해명 겸 설명 비스무리한 것이 규원과 진원의 입에서 나오기는 하지만, 상황을 전혀 모르는 독자로서는 혼란에 빠질 위험이 큰 것이다.
제4화.
(전략)
규원에게 슬쩍 눈짓으로 탁자에 놓인 패물함을 가린켜 보인 진원은 상궁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유에 대해서는 따로 말씀하신 바가 없소?”
“일단 입궁하면 아시시라 하셨습니다. 황장녀 이하 다른 친왕 전하들께도 같은 분부가 내려진 줄 압니다.”
“누이들에게도? 알겠소. 때맞춰 찾아뵙겠다고 회답을 드리시오.”
(후략)
진원이 상궁에게 말을 건넴에도 불구, 진원은 여자 형제를 누이라 칭한다. 성별의 구분이 거의 없이 진행되는 상황 때문일까? 이름과 행동, 그리고 말씨만으로 성별을 구별하기 힘들다는 것은 이 작품의 큰 매력중의 하나이면서도 단점이 되었던 듯하다. 진원이 말을 건 것인지, 규원이 말을 건 것인지 헷갈리게 된 것이 그러한 부분 중의 하나이다.
(놓쳤던 부분 중 하나. 오탈자가 숨어있다. “입궁하면 아시시라 하셨습니다.”부분. 아시리라가 옳은 단어.)
제6화.
‘황후를 앞에 두고’ 제들끼리 이야기하다 멋대로 식사 약속을 잡고는 ‘황후께 주청드려달라.’는 말을 하는 건 무슨 상황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 도착했을 당시 예를 차리던 그들의 모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혼절한 소원이 아직 옆에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그 공간을 벗어난 것 같지는 않은데.. 황후의 존재감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황후가 기막힌 상황에 넋을 놓고 있어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 설정이었던 걸까? 아니면 별실이 따로 마련되어있어 그 곳에서 이야기를 나눈 것일까? 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제12화.
탈자가 있는 듯하여 적어본다.
(전략)
혹시나 대접이 부족했다가 진원의 먹칠을 하는 게 아닐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후략)
진원의 얼굴, 혹은 명성에 라는 말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진원에(게) 먹칠을 하는 게 아닐까~ 로 문장을 이어야 하지 않을까?
* * *
필자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장벽이었습니다. 12화를 넘어서니 호칭들도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초반보다는 이야기가 잘 읽히더군요. 다만 한자어들이 꽤 많아 한번에 쭉 읽기에는 여전히 버거운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제가 무협 소설을 자주 접해보지 않은 탓이겠지요. 새로운 명칭과 홍수같이 밀려오는 한자어에 정신을 못 차리고 2주간 머리를 싸안고 있다 용기내어 리뷰를 적어봅니다.
다만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초반의 명칭들만 잘 정리가 된다면 이렇게 매력있는 소설도 다시없을 듯합니다. 행동과 말씨에 있어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세계관이 정말 잘 짜여있어 구멍을 찾기 어려운 작품이니까요.
두 번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 읽어야 더 재미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부분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겠군요.
물론, 두 번째 읽는 저는 또 새로운 회차 알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 회차도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