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내가 두 번째로 읽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이다. 첫 번째는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이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기대감을 가득 안고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책을 펼치는 순간 속표지에 적혀있는 범인의 정체가 딱 눈에 들어온 것이다. 설마 하고 읽었지만, 아아, 범인은 예상대로였고 나는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은 채 책장을 덮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자체는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다. 등장인물들이 전부 사건과 피해자와 긴밀하게 얽혀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가 없었으며, 마지막에 드러난 진실은, 비록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해도, 꽤나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도 역시 그런 책이었다. 명성답게 이 책은 정말 굉장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우선 소재부터 굉장히 흥미롭다. 고립된 섬 안에서, 각자 나름의 비밀을 품고 있는 열 명의 손님들이, 섬뜩한 내용의 동요에 따라 차례로 하나하나 죽어간다. 듣기만 해도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이렇게 서스펜스적인 요소가 강한 소재를 사용한 추리소설일 경우 자칫하면 너무 작위적으로 흘러가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애거서 크리스티는 굉장히 훌륭하게 이 흥미진진한 소재를 잘 요리했다고 본다. 각자가 품고 있는 비밀스러운 사정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구조, 그러면서 점점 고조되면서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서스펜스,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나는 충격적인 반전까지. 범인은 굉장히 치밀하고, 유별나며, 어떤 의미로는 낭만적이다. 범인의 살해 동기는 정신이 나간 것만 같지만,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어딘가 납득이 가능하다. 살해 동기는 아주 중요하다, 그것이 추리 소설이 가지는 설득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애거서 크리스티는 나를 충분히 설득했다고 본다.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감탄한 것은 소설의 구성이다. 섬에 남아있던 마지막 사람까지 죽고 난 뒤에는 그토록 팽팽했던 긴장감이 싹 사라지고 허무함이 남는다. 끝? 이대로 끝인가? 그리고 마치 비 갠 뒤 남는 잔향과 같은 찜찜함을 안은 채, 나와 형사들은 사건을 다시 재구성해본다. 그러나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지고 나는 혼란스러워진다. 과연 누가 죽인 것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건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다음 장에 드러나는 범인의 자백은 나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는다. 여기서 내가 정말 마음에 들었던 건, 범인 스스로 내가 놓치고 만 단서를 짚어줬다는 점이다. 그 단서들은 결코 작가가 의도적으로 반칙을 써서 숨긴 것도 아니었으며, 잘 생각하면 마지막 장 전에 범인에게 도달할 수도 있는 그런 단서들이었다. 나는 ‘아하!’를 외치며 또 이를 스스로 전부 계획하고 있는 범인의 치밀함에 또 다시 감탄을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 나오는 U.N.Owen과 Unknown의 유사성을 이용한 언어유희, 동요 가사에 등장하는 red herring을 이용한 말장난에서는 작가의 재치도 드러난다. 정말 애거서 크리스티는 독자를 갖고 노는 데에 재능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물론 지금의 사람들이 읽으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살짝 지루한 클래식일 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다른 소설에서 등장하는 서술 트릭도 현재에 와서는 굉장히 흔해 오히려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가지는 의미는 결코 퇴색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해줬으며, 그것이 이후 추리문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을까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것이 상당히 오래 전 소설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지금도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고 여전히 신선한 충격을 선사해주고 있다는 점은 실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이 소설은 분명 두고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소설이라는 것을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