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좀비 바이러스 따위에 멸망해 마땅할지도?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살아있는 시체들의 낮 (작가: 코코아드림, 작품정보)
리뷰어: , 20년 11월, 조회 114

작품 제목은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 <시체들의 낮>이란 영화 제목 두 개를 조합한 것으로 보인다. 1화를 보고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다음, 다음 화를 클릭하다가 새벽을 맞이했다. 브릿G 리뷰어는 한 달에 한 번씩 장편을 주제로 리뷰 하나를 작성해야 하는데, 장편 리뷰는 처음이라 걱정이 되었다. 본작은 그런 긴장을 덜어주었다. 재미있는 작품을 읽으면 감상도 술술 나오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재미에 비하면 브릿G 독자들에겐 덜 알려진 작품 같기도 하고. 왜, 리뷰어의 열정에 불을 붙이지 않는가? 이렇게 재밌는 작품에 리뷰가 하나도 없다니!

리뷰 제목을 자극적으로 썼는데, ‘인류는 멸망해 마땅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는 멸망해 마땅할지도?’ 의문형이지 않은가. 긴가민가하다는 뜻이다. 이 작품을 읽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현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시퍼렇게 설치고 있는 와중인데도 말이다. 2019년 겨울을 기점으로 우리, 아니 나의 세계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 주어를 바꾼 이유는 누군가에겐 세상은 언제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재난 문자와 뉴스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참담한 현실은 매일같이 일상으로 밀려든다. 좀비 바이러스가 남의 일 같지 않아졌다. 실제로 SNS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좀비 바이러스에 비유하거나, 역으로 비유하는 사람들을 본 적도 있다. 코로나든 좀비든, 바이러스가 쫓아오면 우리는 무엇을 하나? 정신없이 달린다. 나의 안위만이 중요하다. <부산행>에서 김의성 배우가 분한, 살기 위해선 나를 돕는 이도 좀비에게 던져줄 수 있는 캐릭터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필자는, 필시 김의성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을 리뷰어는, 본작을 읽고 나선 가슴에 대고 ‘우리, 과연 그렇게 악착같이 뛰어 살아남을 자격이 있나?’하고 묻게 된 것이다.

특별하거나 참신한 감상은 아니다. 좀비물을 비롯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작품을 본 이들은 흔히 필자와 같이 자조하곤 하니까. 인간 참 더럽지 않냐고 말이다.

물론 꼭 이야기에서 교훈을 끌어낼 필요는 없다. 보통 재난물의 테마는 ‘인간 이기적이고 짜증나니까 싹 다 망해버려라!’ 혹은 ‘나쁜 사람들보단 그래도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며, 우리도 그렇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 둘 중 하나이기 쉬운데, 본작은 딱히 한쪽에 치우쳐있진 않은 듯하다. 그저 인물과 상황을 그려내는 데에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작가의 의도야 어쨌든, 읽는 이들이 창작물로부터 특정 메시지를 원할 때도 있다. 특히 현실이 암울할 땐 말이다. 그리고 보통은 작가에게 메시지를 내려달라 종용하는 대신, 스스로 작품에서 원하거나 원치 않는 메시지를 읽어내곤 만족 또는 불만족하곤 한다.

요컨대 ‘인간들 꼴을 보니 다 죽어도 마땅하지 않나?’와 ‘사람(주로 나)이 살고 싶으면 좀 그럴 수도 있지!’가 염치불구하고 공존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가? 가능하다. – 필자는 이런 사고방식으로 수십 년째 살아왔다. – 읽고 함께 말하자. 분량은 제법 되지만 시간이 아까운 이야기는 결코 아니니까. 작품 소개에 카카오 페이지와 리디북스에서 일정 기간 판매되었다고 적혀 있던데, 본작은 그러니까 상업성이 어느 정도 검증된 작품인 셈이다. 거기에 재밌게 읽은 사람의 리뷰, 바로 이 글을 더한다. 많이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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