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데 다른 자전거 하나가 내 뒤를 따라온다.
누구나 가끔 겪어봤을 만큼 평범한 설정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리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굉장히 무서울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화령”에서는 위의 설정 중 뒤따라오는 자전거를 ‘수상한 자전거’라고 말하면서 그 안에서 무서운 상상력을 펼칩니다. 수상한 자전거의 행동에 설마 저렇게까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소설보다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언젠가 비슷한 사건이 뉴스를 탄다고 해도 그러려니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화자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는 독자는 그러려니 할 수가 없죠.
아무튼 한 줄로 설명가능한 설정 하나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부분에선 스티븐 킹 단편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간단한 설정임에도 딱히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도 없고 이야기도 깔끔해서 금새 상황에 머리에 떠올라요. 그 덕분에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주인공의 심리가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자전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누군들 그런 상황에선 주인공처럼 뇌와 근육을 풀가동 하겠지요. 아니라면 당신은 머리에 쇠구슬이 박힌 상태로 어딘가에 묻히겠지요. 운 좋으면 그나마 백골 상태로 발견돼 변사자 처리되거나.
아쉬운 점은 전개의 속도감을 위해 묘사가 많이 생략된 느낌이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마지막 클라이막스 때는 주인공에게 주변을 살필 여유 따윈 없었겠죠. 하지만 그 전까지, 야밤에 차도 지나지 않는 산길을 수상한 사람과 함께 자전거로 달리는 상황, 그 시간과 공간이 보여주기에 따라서는 지금보다 훨씬 무서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