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세가의 외동아들 서문진이 무림맹 도서관에 신입으로 들어온 것은 두달 전의 일이었다.
구파일방의 오대세가 중 하나인 서문세가의 외동아들 서문진은 이미 무림에 그 명성이 떨친 사내입니다.
그렇겠죠, 서문세가의 차기 맹주라니 그 실력이 벌써부터 어마어마하겠죠. 근데 그게 아니라네요.
무공에 관심이 없고 책만 가까이 하기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나요. 음… 와우… 이쪽도 어마어마하긴 합니다.
무협소설 주인공이 무림에는 뜻이 없는지라 무림맹 도서관 말단 사서나 하라는 발령을 받고 근무를 시작하며
이야기는 펼쳐집니다. 사람 좋은 주인공은 오히려 잘됐다고 여기구요, 뭐 아버지가 서문세가 맹주이고 뭐고
농땡이 피울 생각도 없는 모양입니다. 사수 반여월이 책 읽다 졸아도 된다고 하니 ‘그래도 되나’ 싶어 반문하기까지
하는 순둥이인데요. 진짜 반여월이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며 감화(?)되어 어느덧 서문진도 드르렁 쿨쿨 모드에
들어갑니다.
어쩌다 오는 손님은 늘 그 나물에 그 밥인 나날을 보내던 중 보기 드문 색목인이 어느 날 찾아옵니다.
야율 씨 성을 쓰는 그녀는 방명록에는 이름을 남겼으나 이윽고 도서관을 살며시 떠나려하는데,
그순간 늘 꿈 속을 여행하는 줄로만 알았던 막장사수 반여월이 야율 씨 성의 그녀를 붙잡습니다.
” 저희 무림도서관에서는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장문인들에게만 관외 대출을 허가하고 있습니다.
만약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필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
야율 씨는 부인하지만 반여월과의 사투 끝에 책이 떨어집니다. 그 소란이 1층에까지 전해졌는지
도서관장인 유연선생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도둑 잡았다 소동이 이어지던 그때 야율 씨가 외칩니다.
” 그 책은 서요비사. 우리 할아버지가 쓴 책이다! “
거란문자로 쓰여졌다는 <서요비사>를 가져가려하는 무례한 손님 야율 씨,
거란인의 성을 숨기지 않고, 어두운 밤을 틈타지도 않고 당당히 나타난 그녀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무협소설의 주인공이지만 주인공 버프도 없이 도서관 말단 사서에 불과한 서문진은 사수 반여월와 함께 소중한
무림맹도서관의 장서를 야율 씨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까요? 그보다도 사서 일동… 거란문자 읽을 줄이나 아시나요…
<나무 한 그루로 자라날 수 있는 이야기 씨앗>
– 본 단편 <거란문자로 쓰인 책>의 작가 코멘트에서 김현욱 작가님께서 남겨놓으시기론,
원래 장편을 염두에 두고 쓰시다가 여차저차하여 단편으로 끝낸 이야기라고 하십니다.
과연 그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구파일방의 세계관 속 오대세가를 둘러싸고 불어닥치는 전운…
선비처럼 책을 가까이 하며 살고 싶었으나 타고난 운명은 주인공을 가만히 놔두지 않고…… 는 제 생각이었구요.
짧은 이야기지만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당장 다음 편에 나와도 뭔가 알아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겠구나
싶었답니다. 주먹보단 말빨 말빨보단 글빨이 좋을 것 같은 주인공 서문진과,
딱 서문진이 제 앞가림 할 때까지만 인수인계해주고 그 뒤엔 잠만보가 되어버린,
그러나 나서야 할 땐 앞뒤 안 가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위해 몸을 던지는 사수 반여월.
아직까진 미숙하지만 지금보다 더욱 강해져야 하는 사명을 띄고있는 듯한 거란여인 야율단까지.
단편 자체로도 흥미롭고 유쾌한 이야기지만 이를 씨앗 삼아 나무를 키워도 충분한 영양이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프롤로그 격인 이야기에서 “대충 세계가 이렇고, 주인공은 이놈인데 성격 다들 파악했지? 이제 얘가 얘네랑
같이 도서관을 꾸려갈건데 앞서 말한 구파일방 오대세가가 과연 가만히 놔둘까? 당장 1화부터 우당탕탕 소란이
벌어지는데? 어때 2화도 보고싶지?” 라는 감상을 받을 수 있었거든요.
물론 아쉽게도 2화는 없습니다ㅡ…
그러나! 기승전결과 세계관, 인물이 잘 버무려진 한 편의 유쾌한 이야기임은 분명합니다.
최강 혈통, 그러나 현실은 무림맹도서관 말단 신입 사서인 서문진의 좌충우돌 첫 근무지 이야기!
단편 <거란문자로 쓰인 책>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