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은 선녀는 날개옷을 찾다 포기하고, 바위에 주저앉아 훌쩍훌쩍 울었어요.
그때 나무꾼은 미리 준비해온 옷을 선녀에게 건네주며 말했어요.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묵을 곳이 없다면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 동화 ‘선녀와 나무꾼’ 中 –
어린 시절의 나에게 동화 속 나무꾼이 건실한 청년이든, 지극한 효자이든, 사슴을 숨겨준 은인이든 어쨌든 간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확실하고 중요한 사실은 다음 하나뿐이었으니까.
” 선녀를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못 하게 하려고 날개옷을 훔친 도둑놈! ”
그 뒤 선녀와 혼인하여 아이를 낳고 홀어머니를 모시며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다가 결국엔 익히 아시는대로의
결말을 맞이한다. 변형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은 나무꾼이 혼자가 되어 울다 울다 끝내 수탉으로 환생하여
그 울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마무리다.
어느 날 읽게 된 한 편의 소설 속에서 동화 속 나무꾼 신세가 된 한 남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죽은 아내와 아들을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
안타까운 사고였다. 지하철에서 위험에 처한 아들을 구하려다 아내마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남자는 물론이고 가족 모두가 슬픔에 잠겼다. 남겨진 이들의 모습이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내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그 미소를 참 좋아했었다. / 죽은 날 아침에도 아내는 그렇게 웃고 있었다.
남자는 이제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을 아내의 미소를 보며 옛 기억을 잠시 떠올린다.
함께 대학을 다니던 시절 그녀의 웃는 듯 마는 듯한, 그러나 아름다운 미소에 반했더랬다.
마침내 결혼하여 함께 사는 동안에도 그녀는 항상 그런 미소를 보여주었다.
사고가 있던 날 아침도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 날 따라 참 활짝.
남겨진 이들은 따라갈 수 없다. 살아가야 한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덮어버리려 애쓰면서,
그래도 아예 잊어서는 안 될 추억은 이따금씩 꼭꼭 씹어가면서 살아가야 한다.
남자는 영원히 27살로 남을 아내의 사진을 걸어둔 채 한참이나 바라본다.
둘 사이의 추억을 떠올린다.
몇 달 후 여자친구가 울상이 되어 자취방을 찾아왔을 때 나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녀와의 피크닉, 자취방, 청혼, 결혼ㅡ… 늘 애매한 미소, 그 미소가 좋았다….
아내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매우 행복한 얼굴로 웃었다.
나는 그 미소가 묘하게 낯설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사랑같은 운명을 만나 쟁취해냈지만 영화는 영화, 남자는 스스로 철저한 리얼리스트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아내와 아이를 먹여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할 준비가 되어있는 가장. 그에 반해 아내는 늘 애매한 미소만큼이나
애매한 보폭으로 많은 일들 앞에서 주저주저하고 있다. 바짝 붙어서는 이따금씩 속을 긁어대는 맘에 안 드는
처제는 덤으로 붙은 혹이다. 남자는 삐걱삐걱대는 배의 조타륜을 잡은 항해사가 된 심정으로 가정의 중심을 잡으려
노력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는 아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남자다. 그가 좀 더 배려하고 이해하면 끝날 일이다.
아아아.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인가.
아내는 이제 없는 사람이다.
남자는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살아가려 한다.
그래. 그렇다. 세상이란 것이 그렇다.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나게 되고, 결혼을 준비하다 현실이란 벽에 부딪히고, 육아할 때는 지옥이고,
그러나 내 새끼 웃는 소리에 풀어지기도 하고, 뒤죽박죽, 좌충우돌, 그러나 데굴데굴,
그러다보면 언제 여기까지 왔지, 어디까지 가야하지, 그 시간에도 데굴데굴ㅡ….
삐걱삐걱 댈 때는 느리게, 어쩌다보면 소중한 사람도 잃게 되고,
왜 내게 이런 일이 찾아온걸까 싶은 일이 연달아 찾아오게 되고, 그러고나면 또 데구르르.
어느덧 나무꾼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직 열어보지 못한 노트 한 권을 남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약속했으나 먼저 혼자가 되어버린 남자의 눈물, 그러나 삶은 이어져야 한다.
이야기는 그런 남자의 담담하면서 한편으론 절절한 독백과 회상으로 채워져있다.
그러나 이야기를 관통하고 있는 진실은 날개옷 감추듯 철저히 감춰져 있다.
‘너를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그렇게 얘기되는 많은 장면과 사건 뒷편의
진짜 얼굴,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작품 어디에서도 그 얼굴을 또렷히 보여주지 않는다.
‘선녀를 위해서’란 이름으로 나무꾼이 날개옷을 숨겼듯이.
작품의 끝까지 남자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의 애매한 미소를 매력이라 여겼고,
그런 미소를 자주 보여주는 그녀를 늘 위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좋은 아빠였고,
마음에 안 드는 처제지만 안고 가려는 형부였고,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장인을 좋게 보는 둥글둥글한 사위였고,
그녀가 ‘아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가 사고를 당한 날’ 아침의 환한 미소까지도 또렷히 기억하는,
그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남자로 나타난다.
작가는 그런 남자의 눈과 입을 빌려 사실 그 모순을 얘기하고 있다.
삐걱삐걱대는 그 순간 순간을 독자로 하여금 눈치 채달라고 아내 대신 소리 없는 절규를 지르고 있다.
언제부터? 대학에서 그녀의 미소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가 하나, 둘, 다닥다다닥.
한 가정이 끝이 났고, 한 남자의 로맨스가 종말을 맞이했는데
왜 극 끝에서 독자인 나는 일종의 후련함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
분명 마음이 아픈데 남자를 가엾게 여길 수 없는 걸까.
남겨진 노트는 누구도 열어보지 않았는데 왜 그 내용을 극 중 인물들 모두,
그리고 독자인 나도, 어쩌면 이 리뷰를 통해 그 작품을 읽고 난 후의 당신까지도 유추할 수 있는 걸까.
남편의 울음으로부터 시작하는, 아내의 미소로부터 시작된 어떤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올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