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차별의 희생자를 기리는 마음으로 -3초간 묵념 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나를 낳았어요 (작가: 정엘2, 작품정보)
리뷰어: Meyond, 20년 10월, 조회 507

이 단편을 읽고 왠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떠올랐다. 내 편파적인 독서 경험에 따르면 남자가 나오는 SF는 좀 섬세한 맛이나 재미가 없다. 그들은 보통 분위기를 망치거나 위기를 몰고오는 장치로 쓰일 때가 많다(혹은 자신이 위기 그 자체일 때도 많다). 특히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야만’의 의인화 같은 인물들이다. 아니면 ‘현실’의 의인화 버전일지도? 그래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작품은 읽고 나면 좀 힘들고 감정 소모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나를 낳았어요>를 읽고 그 이름이 떠올랐는지 영 모를 일이다.

이 작품은 남자가 주인공인 SF지만 재밌고 유쾌하다. 아름답게 만발한 꽃밭이 절로 그려진다. ‘머릿속이 꽃밭’이라는 말을 의인화한다면 혹시 은우가 저 먼 차원에서 다시 이 세상으로 살아 돌아올 수 있게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다분히 ‘평범한’ 삶을 꿈꾸는 은우의 어머니 캐릭터가 뱉는 대사도 실감나는 재미가 있었다.

트위터를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는데 #낙태죄_전면폐지_2000자_엽편_릴레이 같이 멋진 해시태그의 존재를 조금 전에야 알게 되어, 이 리뷰에 채울 말들을 궁리하면서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 단편을 탄생케 한 해시태그를 제안한 게 《280일: 누가 임신을 아름답다 했던가》의 저자, 전혜진 작가인 것도 재밌고 신묘한 우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이 나온 김에 이 책도 함께 추천해 본다.

다만 ‘남의 염병이 제 고뿔만 못하다’는 옛말도 있으니, 너무 외로워서 누나 하나만 낳아달라 했다가 그만 차원의 틈에 영영 갇히고 만 은우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보탠다. 그리고 스티븐 윌리엄 호킹의 《시간의 역사》에 따르면 과거로 차원을 거스르려면 음의 곡률을 따지는 단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허수 i를 제곱하면 (-1)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니 다른 차원에서 다른 한국 남자들과 한가로운 나날을 즐기고 있을 은우를 기리며, 우리 다함께 (-3)초간 묵념의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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