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책장에 ‘여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책들이 하나 둘 꽂히기 시작했다.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시원한 수박을 먹듯 시원한 맛과 어김없이 쏟아져 내리는 차가운 빗방울과 무더운 여름을 연상시키는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한 해 두해 시간이 지나다 보니 ‘여름’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파블로프의 개마냥 그저 반가울 수 밖에. 그렇게 빗물님의 <여름 이후>를 읽게 되었다.
여름이 주는 의미는 다양하다. 봄과 같으면서도 다른 청량함이 느껴진다. 윤재와 소은은 학교를 다니면서 잠시 잠깐 시간을 보냈던 친구 사이다. 절친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아예 모르는 이라고 하기에는 몇 번 만나 숙제를 하고, 함께 수다를 떨던 사이였다. 그러던 그들이 시간이 지나 우연히 소은이 일하던 카페에서 조우를 한다. 가장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메뉴가 아니라 여러번 손이 가야하는 메뉴를 시키는 윤재. 비싼 메뉴임에도 그녀는 매번 스무디를 시키며 소은과 만남을 이어나간다. 학생 때와는 다른 분위기로 소은을 만나던 윤재의 모습에 소은은 때때로 이질감을 느낀다.
카페에서 조우한 이후 그들은 자주 만나 밥을 먹기도 하고, 윤재의 원룸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의 이야기는 열일곱의 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친한친구를 만난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으나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겉으로 도는 트랙처럼 이야기는 어딘가에서 맴돌았다. 소은이 윤재가 아닌 다른 친구들과 조우하며 윤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는 미묘하다. 한 걸음 다가갔다 싶으면 한 걸음 멀어져 있고, 멀어졌다 싶으면 상대방이 어느 덧 한 걸음 나에게 다가온다. 말하지 못한 두 사람의 관계와 비어져 버린 시간 사이의 공간을 나중에야 털어놓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공감이 가면서도 아프게 느껴졌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저마다의 공간에서 일을 하고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시간 이후로 자라지 못한 아이들의 마음이 거기에 머물고 있었다. 누군가 치유하지 못한 아픔이 있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말하지 못한 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마음이 얼마나 사소하고 가벼운지를 소은이 친구들을 만나고 온 이후의 장면들을 보면 느낄 수 있었다. 잔잔하지만 이야기 사이사이 복선이 깔려있고, 세밀한 묘사가 재밌던 단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