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다. 그 모양과 크기가 다양하듯, 안에 담긴 이야기도 제각각이다. 본래의 피부와 색이 다르기에, 흉터는 눈에 쉽게 띄며, 될 수 있는 한 그대로 두려는 사람보다 지우려는 이들이 많다.
수술을 통해, 연고를 통해 지우고 싶은 것.
여기저기에 난 흉터 중 단연 얼굴에 있는 것이 눈에 가장 잘 띈다. 때로 우리는 상대와 이야기하며 얼굴을 마주 본다. 그런데 상대의 얼굴에 흉터가 있다면 어떨까. 입 밖으로, 말로 내지는 않더라도 속으로 아, 하고 안타까움, 궁금함 등 미묘한 감정이 얽힌 소리를 삼킬 것이다. 누군가의 얼굴에 난 흉터와 삼켜진 소리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고전 중에서 ‘흉터’를 다룬 소설을 꼽자면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가 있겠다.
타우 작가의 소설 <흉터> 역시 얼굴에 흉터를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크게 당황했다. 글쎄, 이런 우연의 일치가 있나.
내 얼굴에도 흉터가 있다
이 이야기를 조금 해도 될지 모르겠다. (별로 보고 싶지 않다면 바로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도 좋다.) 나에게도 흉터가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이라면 좋았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내 것은 꽤 남의 눈에 잘 띈다. 코와 윗입술 사이에 있는 갈라짐을 수술하다가 생긴 것이다. 나는 한 번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들어봤을 법한1 ‘구순열’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그로 인한 상처와 흉터가 남았다.
얼굴에 흉터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다. 반이 바뀌며, 학년이 바뀌며, 시간이 흐르며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자국에 대해 설명해야 하며, 그것이 생긴 과정이나 이유까지 알려달라는 짓궂은 이들에게는 조금 귀찮더라도 시간을 들여 주절주절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사실 흉터가 있다는 것 자체는, 적어도 나에겐 큰 흠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질문이 무례함이나 불쾌함을 의도하지 않은 이상 마음이 크게 상하거나 기분이 나쁜 적도 별로 없었다. 나를 가장 못살게 굴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것들이었다.
나는 내 흉터가 남이 볼 때 크게 눈에 띈다는 것을 꽤 늦게 깨달았다. 열아홉 살 때쯤, 흉터가 사고로 인한 것이 아닌 선천적인 갈라짐을 수술하는 과정에서 생겼다는 것을 알고 나는 큰 좌절에 빠졌다. 부모님이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과 함께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 들어왔다. “한해 한해 나이를 먹을수록 나는 내 얼굴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했다”. 이 흉터가 작다고 생각하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보낸 과거가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과거의 나는 그랬기에 지금의 나보다 당당했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사람들은 이렇듯 남들이 알 수 없는 큰 기분의 변화를 느낄 때가 있다. 얼마 전에 찍은 증명사진을 포토샵으로 수정하며 나는 코와 입 사이의 흉터를 지웠다. 사는 동안 얼굴을 작게 만들고 희게 하는 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 흉터로 인해 포토샵을 꽤 잘하게 되었다.
이렇게 길게 내 이야기를 하게 될 줄 몰랐다. 창피하지만 독자들이 소설 <흉터>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착한 마음에 적은, 바람직한 의도의 글은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보람 있는 일이겠지만) 글쎄, 이렇게 얼굴의 흉터를 나와 비슷한 주인공을 내세워서 진행 시킨 소설은 처음 읽어봐서일 것이다. <흉터>는 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어지는 소설이었다.
얼굴에 흉터를 가진 사람은 종종 친절하지 않다. 내성적이지도 않고, 때로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다양한 유형의 ‘흉터’와 그것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겠지만, 그들에게는 아마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흉터를 없애고 싶어 한다는 것.
아무도 흉터는 원하지 않으니까
흉터가 있다는 것은 결코 당사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 이렇게 단언할 수 있다는 게 참 슬프다. 그것은 크고 작은 습관과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이 흉터를 돈도, 시간도 쓰지 않고 없앨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적어도 나는 잡을 것 같다. 그런 것은 말 그대로 일생일대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는 어떤 ‘할머니’가 주인공에게 단 한 번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다른 특별한 일이 없었다면 주저함 없이 흉터를 지우겠지만 주인공에게는 큰 딜레마가 생긴다. 평생 미워하던 언니가 의문의 할머니를 만난 직후에 사고로 죽은 것이다. 나는 흉터가 선천적인 이유로 생겼지만 <흉터>의 주인공은 다르다. 친언니가 떨어뜨린 가위가 얼굴에 맞아 흉터가 생겼기 때문이다. 타인으로 인해 생긴 상처와 흉터는 물리적으로, 때로는 심리적으로 짙은 흔적을 남긴다.
시간을 되돌리면, 흉터가 사라지지만 죽어버린 언니도 살아난다. 흉터로 인해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 또한 가지고 있었을 주인공은 언니를 되살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한 가해는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흉터는 몸의 외관에만 남지 않는다. 마음에도, 때로는 영혼까지 새겨지는 흉터가 있다. 그러니 우리는 저마다 흉터를 가지고 있다. 가해와 피해, 칼날과 흉터는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것이다. 몸의 흉터가 마음의 상처를 낳기도 하고 마음의 흉터가 몸의 상처를 낳기도 한다. 소설의 초반, 작은 상처를 입고도 흉터가 남을까 걱정하는 짝을 보고 주인공이 헛웃음을 지은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 순간, 그녀의 마음에 새로운 상처가 새겨졌을 것이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흉터가 없어진다고 가해와 피해의 관계가 원상으로 복귀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두 살이던 때로 시간을 되돌리자마자 언니를 죽이려 했다.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
‘회귀’는 인간의 욕망을 건드리는 가장 적절한 장치다. 욕망은 ‘잘못된’ 어떤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생각과 연결된다. ‘바로잡는’ 것에 기준은 없다. 그저, 시간을 돌리는 이가 결말을 선택할 뿐이다. 이는 조금 무서운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누가 시간을 돌리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시간을 되돌리고 두 살의 자신이 누워 있는 방에 도착한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다섯 살의 언니에게 겨누었던 칼은 빗나가지만, 이 장면은 독자들에게 충분히 공포감을 선사한다. 다섯 살 아이의 입장으로 상상하자면 몸이 떨릴 정도의 공포가 느껴진다.
시간여행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온 주인공은 자신의 뺨에 있던 상처가 없어진 것을 알고 크게 기뻐한다. 그리고, 언니에게 죽임을 당한다. 참으로 소름돋고 아이러니한 결말이다.
시간회귀물에는 보통 ‘결말’을 바꾸기 위해 시간여행을 떠나는 인물이 나온다. 대부분의 시간회귀물은 과거의 작은 변화로 인해 미래의 큰 변화가 초래되는 상황들을 다루지만, <흉터>에서는 ‘변화’를 넘어선 인과의 역전이 드러난다. 동생이 과거로 가서 언니를 죽이려 했고 조준의 실패로 상대의 얼굴에 흉터를 남긴다. 그에 앙심을 품은 언니가 동생을 살해하는 결말은 독자들에게 충격을 준다. 소설의 방향을 예상과 다른 쪽으로 완전히 틀어버리는 역전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소설의 매력을 알게 한다.
왜인지 얼굴에 흉터가 있는 사람으로서도 굉장히 마음에 드는 결말이었다. 소설을 처음 읽을 때부터 주인공에게 이입했고 동시에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을 느꼈지만, 왠지 흉터가 지워지는 것이 이 작품의 끝이 아니었으면 했다. (그리고 작가님은 그렇게 결말을 맺지 않으실 것 같았다.)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의 의미가 그렇게 단편적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읽어갈수록 강하게 들었다. 흉터가 매끈해진다고, 이야기마저 매끈해진다면 싱겁지 않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의 맺음부에서 드러난 반전으로 인해 ‘가해’와 ‘피해’의 구조가 모호해진다. 그리고 이로 인해 진행에 강약과 입체감이 생긴다. 흉터를 낸 사람과 흉터를 가진 사람의 경계가 무너진다. 이 ‘무너짐’의 감정은 소설의 마지막에 방점과 여운으로 남는다.
우리 모두는 주인공과 언니 모두의 입장에 설 수 있다. 살아가는 한, 사람들은 흉터를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남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깊이 낸다. 시간을 되돌려 살더라도 이런 구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복수는 또다른 상처를 낳고 그 상처는 흉터로 남는다. 그 흉터는 한 사람의 인생을 때로 바꾸기도 하고 살아있는 누군가를 죽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한 사람의 인생을 축약해 둔 것과 같다.
흉터 없는 사람은 없으므로.
흉터를 가진 이들에 대하여
말하자면 이 작품은 모두의 이야기다. 상처로 인해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고. 실제로 몸과 마음으로 죽이기도 하는 사람들의 눈동자다. 때로 극단적인 감정과 고통, 분노로 얼룩져 마땅한 도구만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의 목소리다. 그러나 이 흉터가 사라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찝찝함으로 남아야 한다. 우리는 몹시 서로의 흉터에 찝찝해야 한다. ‘그 흉터’를 누가 냈는지, 어디서 생긴 것인지 궁금하겠지만 조금만 참자. 상대의 마음에 평생 남을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고.
나와 같은 이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작품이 모두의 삶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고 이 작품이 더 좋아졌다. 결말을 읽으며,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것에 실망하지 말자. 이 소설은 자신이 가진 흉터에 대한 한 사람의 선택에 대한 결말을 담은 글일 뿐이다.
우리의 결말은 우리의 색으로 만들어가면 되지 않겠는가. 마음에 흉터가 있는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마음에 흉터가 있을 상대에게는 어떤 형태의 손을 내밀어야 할까.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이 불쑥 시간을 되돌리는 약을 건넸을 때, 무엇이라고 답할지만 생각해두자.
오늘도 상처 입은 이야기가 수십억 개의 빛으로 갈라지는 이곳에서, 우리가 무엇을 써 내려갈 수 있을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