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딩동댕 문이 열립니다 (작가: 오메르타, 작품정보)
리뷰어: 잭와일드, 20년 8월, 조회 71

오메르타 작가의 <딩동댕 문이 열립니다>는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연상시키는 인상적인 이야기다. 한 명의 여성이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두 소설을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피로, 당황, 놀람,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

이는 <82년생 김지영>의 뒷 표지에 쓰여있는 문장이다. 소설은 82년생 여성 중 가장 흔한 이름을 가진 주인공 ‘김지영씨’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3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법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 ‘김지영’이 아닌 ‘김지영씨’인 이유는 ‘김지영씨’가 한국의 에코세대 여성들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지극히 평범한 “김지영씨”의 평균적인 삶을 각종 기사와 통계자료를 통해 객관적으로 재현해냄으로서 독자들이 이를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보편적 체험이자 삶이었음을 비로소 인식할 수 있게 한다. 그럼으로서 그 보편적인 일상이 얼마나 차별적이고 불합리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해준다. 이 소설이 화제가 되고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주위에 보편적인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아픔과 상처를 겪었던, 또 겪고 있는 수많은 ‘김지영’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피로, 당황, 놀람,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라고 한다면, 오메르타 작가의 <딩동댕 문이 열립니다>는 ”감았던 눈을 뜨면, 닫혔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 난데 없이 펼쳐지는 흙탕물과 수렁 속에서 예고 없이 등장하는 괴물들을 견디고 버텨내면서 한 여자가 삶을 살아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남자들은 남편과 교제를 시작한 나에게 왜인지 배신감을 표출했다. 청첩장을 돌리고 나서는 투명인간 취급을 했고, 임신 사실이 알려지자 나는 악성 재고가 되었다.”

“집과는 달리 직장에서는 나의 임신이 전혀 환영받지 못했다. 결국은 이렇게 되고야 말았다. 라는 느낌이었다. 그러게 남자를 뽑아야 된다. 라든가 여자는 애 낳으면 커리어 끝이지 뭐. 같은 소리들을 내가 듣는 앞에서 해댔다. 곧 힘들어질텐데 언제까지 나올꺼야? 동료들 피해 주지 말고 다른 사람 뽑게 빨리 그만두지 그래?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10년 전 당시에는 출산휴가니 육아휴직이니 하는 건 바다 건너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자궁 적출이라뇨? 그건 안됩니다. 선생님. 남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남의 집 대 끊을 일 있어요? 첫 애가 아들이었으면 몰라도 지금은 안됩니다.”

“아니, 어머님, 산모분 건강이…”

“괜찮아요. 괜찮아! 우리 땐 다 이래도 애 쑴풍쑴풍 낳고 잘 살았어. 제왕절개도 안돼요! 어디 우리 장손 낳을 배에 칼을 대? 너도 요란 떨지 말고 그냥 적당히 낳아라.”

우리 주변의 수많은 ‘김지영들’과 ‘김미옥들’은 일상의 부조리 앞에서 눈을 감고 입을 닫고 살아야 했다. 기득권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를 잃을까 전전긍긍할 때 피해자인 여성들은 삶의 전부를 잃을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로와 보복, 무력감 속에서 괴로워해야했기 때문이다.

또한, ‘김지영’의 삶은 이 시대를 살아온, 또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하는 삶일 수 있다. 왜냐하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느 누구에게는 결코 경험하지 못한 또 공감하지 못하는 삶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의 역사와 세계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혜택을 받아온 대부분의 남성들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젠더이슈를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이슈 해결에 동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가시화되고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과 삶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삶에 말을 걸고 삶의 사소한 부분부터 변화에 대한 의지를 불어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작은 순간들이 누적되어 한 사람의 일생을 구성하듯 세상의 변화도 생각보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착취와 억압 없이 삶 그 자체가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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