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生은 정해져 있다 공모(감상)

대상작품: 병아리를 줍던 날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주디, 20년 8월, 조회 20

‘병아리 줍던 날’ 이라는 제목을 처음 본 순간 어린시절 초등학교에 앞에서 팔던 병아리가 떠올랐다. 도시에서는 병아리를 주울 수 없었고, 돈을 주고 사야만 내 것이 될 수 있었다.

 

<병아리 줍던 날>은 어린 시절의 동화가 아니다. 처음 인트로부터 이야기는 인간의 쳇바퀴 굴러가는 인간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아이의 시간과 다르게 아이의 부모는 갖은 시간 일을 하다가 피로에 젖은 채로 집에 돌아온다. 당연히 불면의 시간은 없다. 그저 몸을 누이는 순간 혼곤하게 잠을 청할 뿐. 시간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달려가고, 피로가 채 풀리지 않은 육신을 움직인다. 레일에 실려 가는 가전제품 처럼 인간의 삶 또한 기계처럼 쉴 새 없이 달려간다.

 

메마르지만 인간의 모습들을 가감없이 그린 글귀가 좋았다. 어김없이 임박해 오는 시곗바늘이 야속하기도 하고 때때로 어딘가 묶어 두었으면 좋았을 순간들을 떠올렸다. 지금의 나와 같은 모습이기도 한 그들의 모습은 지금의 나 이기도 하고 또다른 누군가의 모습이기도 하다.

 

인간의 이야기를 넘어 병아리의 생은 정해져 있듯 닭의 생애를 그린다고, 하면 맞는 걸까?

 

아이의 언어로 전해지는 닭의 생애의 모습이 글을 통해 읽는 순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분명 맞는 이야기인데 후두둑후두둑 쳐지는 닮의 몸체가 상상이 되기 되었다. 닭에도 등급이 존재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브랜드의 치킨이 되려면 이미 좋은 환경에서 길러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웃펐다. 안도현 시인의 시 ‘간장게장’을 읽은 후에는 한 번씩 그 글귀를 떠올리곤 했는데 이제는 손오공님이 그려놓은 장면들이 치킨을 먹을 때 마다 떠오를 것 같다.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어느 세계 속에서나 등급은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그 길을 무심코 혹은 그 길을 알면서 걸어가고 있다. 아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서 고민하고, 아이가 성장한 그 길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언제 어른이 될까 라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까?

 

처음의 이야기가 눈길을 사로 잡아서 그런지 마지막 문장까지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적인 묘사에 뜨끔하면서도 보여지는 이면 속 이야기가 날카롭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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