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족족 어떤 만화, 어떤 영화들이 떠오르는 웹소설이다. 작가는 분명 서브컬쳐에 굉장히 조예가 깊은 사람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왕도소년물에 가장 빠삭할 것이다. 더 나아가자면 왕도소년물 중에서도 아마 원피스가 최애작품일 것이다. 작가는 소년만화 클리셰의 정석을 매우 잘 꿰고 있고, 그것을 정직하게 따라가고 있다. 불의를 못 참지만 좀 멍청한 리더, 그런 리더를 채근하는 똑소리나는 동료, 신비롭고 간지나는 할아브 캐릭터, 운명의 순간을 맞아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주인공 일행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유명한 작품들의 유명한 장면만 그대로 떼어다 얼기설기 엮어놓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정석을 따라가는 와중에도 그 속에는 작가의 서브컬쳐스러운 취향과 독특한 상상력이 확고하게 반영되어 있다. 주인공 일행에게서는 원피스가 연상되고 황무지의 첫 악당과 살인레이스에서는 매드맥스의 기름때 냄새가 난다. 폴리스와 같은 세계관 설정에서는 sf스러운 무언가가 느껴진다. 이렇게 뭔가 서로 엮이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을 작가는 절묘하게 이어붙여 어엿한 스테이지를 만들었다. 스테이지의 배우들은 그저 철저히 정석에 기반한 왕도소년물의 시나리오를 충실히 연기할 뿐이다. 이러한 정석적인 시나리오에 작가가 직접 설계한 독특한 스테이지 세팅이 더해지면서 가장 정석적인 것마저 탈정석적인 것으로 재해석되는 것이다.
아직 연재분량이 많지 않아 앞으로 그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작가가 또 어떤 서브컬쳐 요소를 버무려낼 지 기대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관 설정상 폴리스마다, 정착지마다 서로 다른 세계 수준의 문화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이러한 시도는 앞으로 더욱 본격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어떤 대목에서 어떤 서브컬쳐 요소를 오마주한 것인지 찾아보는 재미 역시 점점 더해 갈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