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새로 깔아졌다가 다시 뒤엎어버리고, 다시 블럭을 까는 일은 지난한 일인 동시에 손에 익히기만 하면 쉬운 기술이다. 주인공은 하루에도 수십 번 같은 패턴의 동작을 반복하고, 땀을 흘리며 길을 만들어 낸다. 매년마다 괜찮은 길을 교체하기 위해 통행을 금지 시키고 가는 길목에서는 사람들의 툴툴거리는 소리가 마치 나의 목소리 마냥 지나가고 주인공인 ‘나’는 작업장의 인부로서 보도블럭을 교체 하는 작업에 몰두 한다. 그러다 듣게 된 중년의 50대 남자가 인도에서 살해된 소식을 접한다.
아버지의 부재는 늘 누군가의 실종과 사고 소식으로 그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든다. 대학을 가지 않기로 진로를 정했지만 수능 하루 전날 그의 아버지는 일하던 중간 갑자기 사라졌다. 아무런 언질 없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고,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백방으로 찾아 다녔지만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레고를 떠올리게 되고, 매장을 찾지만 이미 다녀갔다는 이야기로 그를 향한 발걸음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그저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치부되는 모형 조각을 나의 아버지는 그토록 그 세계를 열망했다. 어린 아이가 갖고 놀기에는 값이 제법 나가기에 어른들의 취미로 부각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런 쓸모 없는 블럭이란 그저 쓰레기 같은 것이라고 아들을 치부 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롯하게 자신의 세계를 열어가며 한 조각 한조각 맞춰가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그 세계를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처럼 그의 아버지도 찰스 스트릭랜드와 같이 자신의 이상향을 향해 떠났을까? 갑자기 없어진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레고 매장을 온종일 돌아다닌다. 그의 아버지가 찾는 레고 모델인 15023…브릭 수 3540개의 단층 아파트… 40만원에 준하는 가격. 그는 끝내 아버지의 발걸음을 따라 걷다가 이내 그의 비현실적인 이상향 모습에 펑 터지고 만다.
여러 표정과 복장들의 피규어들이 발판에 꼭 달라 붙어있었다. 그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가족이자 친구, 연인, 이웃이었다. 실재(實在)하지 않는 모형의 세계였다. 그래서 나로서는 도통 이해 할 수 없었다. 한낱 플라스틱 블록들로 이루어진 이 모형 세계에 아버지가 집착한 이유를. 나는 노란랙 벽돌을 얹은 별장 한 채를 눈앞으로 들어올렸다. 연못과 나무들이 있는 정원이 딸린 집이었다. 글을 쓰는 듯한 남자와 경찰복을 입은 여자가 울타리 앞에 서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누군가가 집에서 헐레벌떡 뛰어나오고 있었다. 딸로 보이는 교복차림의 피규어였다. 나는 레고를 눈가로 좀 더 당겼다. 그들은 하나 같이 웃고 있었다. 누가 레고 피규어를 만들어 냈는지는 몰라도, 사람하고 닮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아버지와 마주보던 몇 안되는 기억이 피규어의 활짝 핀 미소에 겹쳐졌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 블럭을 까는 나의 모습은 그의 아버지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레고의 모형을 축소해 낸 모습 속에 담겨져 있는 것 같다. 동시대 사람이지만 주인공인 나와 나의 아버지의 세계는 너무도 다르게 표현된다. 이질적인 두 사람의 모습.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실종자가 된 그의 기억들을 말끔하게 지워내기란 쉽지 않다. 피로 맺어진 혈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인지 작품에서는 불분명하게 그의 복잡한 심경을 그려낸다.
지구대에서 확인했음에도 그는 인도에서 살해된 50대 남자가 자꾸만 떠오른다. 누군가가 나를 밀어뜨려 번진 통증으로 인해 비명을 지르듯 그가 만들어 낸 길 속에서 영원히 한 남자의 잔상은 남아있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상. 김성호 작가는 블록의 중의적인 세계를 아들과 아버지의 세계로 차용하여 그들의 이상향, 현실과 모형의 세계를 손에 잡힐듯 그려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꿈꾸는 이상향의 세계. 아버지와 아들의 간극은 두 사람이 꿈꾸는 이상향의 세계 만큼이나 넓고, 좁히지 못한 무엇이 늘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글을 화자인 ‘나’의 생각과 행동,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로 하여금 선명한 그림을 그려내지만 바람같이 사라져 버린 아버지는 안개처럼 희미한 잔상만을 표현함으로서 왜 그가 갑자기 사라졌는가에 대한 물음과 흔적들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폴 고갱과 같은 삶을 지향한 아버지의 비정한 선택이 집안의 가장 큰 울타리로 지탱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울컥 다가오다가도, 사회적인 시스템을 감내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버린 한 인간의 모습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아버지의 삶도, 아들의 삶도 모두 읽히는 동시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에 그 누구의 손을 들어 줄 수가 없다. 일독을 한 후에 다시 읽어보니 처음 읽었던 의미 이상으로 사라진 한 남자의 여백에 자꾸만 글을 덧대어 이야기를 만들게 된다. 그 어떤 작품보다 짙은 여운과 두 세계의 접점이 좋았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