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서양 판타지적 세계관을 차용하면서도, 가능한 오리지널 설정을 구축하여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판타지입니다. 멸망 직전, 모든 것을 잃은 한 성기사가 여신의 권능을 빌어 과거로 회귀합니다. 기억을 가진 채 소년이 된 그는, 고향의 파멸을 막음으로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언데드로 인한 대륙 전체의 몰락을 막기 위해 수련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제국의 검이라 불리우는 라디우스 나이트가 되어, 동료들과 함께 언데드를 조사하러 떠납니다. 리뷰를 쓰게 되고 처음으로 받은 의뢰였기에, 아무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다소 지루한 부분이 있었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글에서 느낀 감상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플롯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는 플롯은 어느 정도는 튼튼합니다. 물론 언데드와의 전쟁이나, 멸망 직전에 세계의 운명을 걸고 보내는 시간 여행자라는 것은 이제는 꽤 흔한 클리셰지만, 무리나 억지스러운 부분이 느껴지지 않게 잘 짜여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쌓아올리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을 작가님의 노력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다소 치밀하지 못한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플롯이 있습니다. 하나는 언데드를 탐색해 없애는 탐색 플롯, 다른 하나는 주변인들과의 로맨스 플롯이죠. 전자는 행동 동기가 명확하고 긴장감도 잘 유지되는 편입니다. 다만 수련을 하는 2막과 3막 부분은 별다른 위기감도 없고 보조 플롯인 로맨스 부분도 허술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달리 말하면, 독자를 잡아두는 힘이 부족합니다. 뒷이야기를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게 뭐냐고 물으신다면, 저도 모릅니다. 제가 알았다면 이미 제 작품에 적용했겠죠…ㅠㅠ) 혹은, 과감하게 2-3막의 대부분을 도려내고 수련 부분은 회상 씬으로 대체해도 좋을 것입니다.
언데드 조사를 떠나는 4막부터는 다시 이야기에 탄력이 붙는 느낌이었습니다. 비슷한 장르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조금 진부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제게는 몰입하여 빠져들 수 있을 만큼 재미있는 전개였습니다. 이 부분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더 이상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겠지만, 작품의 강점이 되는 부분입니다 (문제는 독자들을 여기까지 잡아두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후자인 로맨스 플롯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엿보이나, 좀 그렇습니다. 그냥 젊은 남녀 둘이 서로 계속 귀여워하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선 아름다운 황녀들의 마음을 얻게 되는 과정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2, 3막에서 다나와 라나는 어째서 리오를 계속 찾아올까요? 작중 설명처럼 영혼의 묶임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는 부족합니다. 작중 묘사되는 것처럼 역사는 바뀌고 있고, 리오가 더 이상 자신들이 거둔 고아로서의 그가 아니게 된 만큼, 두 자매가 그를 그렇게나 챙겨줄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황제의 명을 전하러 온다고는 하나, 리오가 아무리 유명인사라도 일개 수련생에게 황제의 명을 전달하러 황녀 씩이나 보낸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하급 관료들이나 하인들은 다 어디갔죠?). 다나가 계속해서 리오를 찾아올 수 밖에 없는, 보다 타당한 접착제가 필요합니다.
왜 하필 리오인가요? 성 내에 동년배 미소년이 리오 뿐인가요? 그렇지 않다면, 두 자매는 성내의 미소년들 모두에게 그렇게 자주 찾아가는 성격인가요? 왜 하필 주인공을 그렇게나 좋아하고 자주 찾아올까요? 두 자매는 금사빠 인가요? 하지만 남녀가 서로 잠깐 호감을 느끼더라도, 만날 기회가 없어지면 쉬이 멀어지곤 하는 게 사람 마음인데요. 아래와 같은 대화를 보면, 황녀와의 로맨스가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당연히 헤베스트 경이 함께 하실 테고. 그 여정부터 제가 함께 해도 되는 거겠죠?”
“아, 네… 네에!?”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답했다가 다나의 말뜻을 깨닫고 리오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 반면에 다나는 뭘 그리 놀라나는 식으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리오는 무도회에서 황녀에게 여정을 함께 해달라고 간청했고, 다나는 수락했습니다. 그렇다면 리오는 그녀와의 여정을 항상 기억하고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좋아하는 아가씨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수락을 받았는데, 그것을 잊고 있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황녀의 팔목을 감히 붙잡으면서까지 (이 세계관에서는 그것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지라도) 여정을 간청할 정도라면 분명 리오는 다나를 마음에 두고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다나를 볼 때마다 언젠가 함께 여정을 떠날 거라는 설렘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 장면의 리오는 그냥 나무토막 같습니다. 제국 황녀가 대체 어째서 이런 남자에게 마음을 준 건지 모르겠어요. 이러한 감정적 세심함의 부재가 로맨스 플롯의 몰입성을 떨어뜨리는 것 같습니다.
이후 전개에서도 다나와 라나 모두 리오에게 거리낌없이, 지속적으로 호감을 표현하고 있고, 리오는 자매 모두에게 마음을 열고 있습니다. 즉, 양다리입니다. 두 자매 사이에서 양쪽 모두에게 어중간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도덕적 관점에서 영 껄끄럽기도 합니다. 둘 중 한 쪽만 사랑이고 한 쪽은 우정이라고 해도, 자매 중에서 취사선택하는 느낌이 아무래도 거슬립니다.
근본적으로, 황녀 쯤 되는 여자 캐릭터 두 명이 주인공만 오매불망 바라보고 있으니, 로맨스가 영 재미가 없습니다. 위기가 필요합니다. 엄청 매력적인 사람이 나타나서, 다나를 그에게 뻇길지도 몰라 애타하는 리오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소한 오해로 인해 시작되는 다툼도 필요하구요. 그래야 보다 현실적이고 읽는 재미도 있을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플롯이라기 보다는 연출적인 측면인데요, 자이큐르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 타이밍이 다소 작위적이었습니다. 개념이 처음 소개되고 바로 다음 화에 나오다 보니, 우연이라기엔 좀 과한 느낌입니다. 미리 복선을 깔아뒀으면 좋았겠네요.
-설정
작품의 독특한 설정들에 대한 감상입니다. 힘을 잃어감에 따라 날개의 수가 줄어드는 신 등 독특한 볼거리는 분명 매력 포인트입니다. 다만 라디우스 나이트, 신성력, 라히넨 등의 소재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주긴 합니다. 스타워즈의 ‘제다이’가 전 세계 팬들을 열광시킨 이래 (어쩌면 그 전부터), 신비한 능력을 지닌 무력집단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재생산되고 소비되어 왔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이에 더해서, 라디우스 나이트 개개인의 개성 설정에 공들인 것이 분명 느껴집니다만, 관련 에피소드가 적고 일회성으로 지나가다 보니 스승 펠런 외에는 딱히 캐릭터들이 기억에 남지는 않았습니다.
한편, 축제 때 펠런이 정장을 입고 나왔다는 묘사에서 저는 이 작품의 세계상이 중세인지 현대인지 혼란스러워 졌습니다. 중세 기사들의 시대에서 정장이라. 이 장면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작품 속의 패션 트렌드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산업 구조 상 정장의 생산이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아놔’, ‘슈밤’, ’팩트 폭력’ 같은 인터넷 용어 같은 대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이 정도는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부분이겠죠.
또한 루디스 제국의 신자들은 성호를 긋습니다. 엄격하게 말한다면, 주신 루디스가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면 그럴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설명
작품 전반적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설명에 의존한 진행이 아쉽습니다. 물론 리오가 수련을 하는 부분처럼 호흡이 늘어지는 장은 빠른 진행을 위해 설명으로 적당히 넘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하지만 초반에 나오는 전쟁 묘사 등에서는 심혈을 기울였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커다란 방패를 든 보병들이 화살을 막아냈고 사다리를 통해 올라오려는 왕국군을 밀어 떨어뜨렸다. 그 뒤에 2차, 3차로 선 병사들이 창이나 다른 장병기들로 올라오려는 왕국군들을 공격하며 도왔다.
그 보다 떨어진 지점에서 왕국군들처럼 백작령의 병사들도 다수의 궁사들이 화살을 날렸다. 곳곳 지점에 있는 발리스타나 투석기 같은 장거리 투사 병기들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 외에 성벽에 구비된 각종 방어 도구들이 움직였다. 커다란 바위를 굴려 내릴 수 있는 홈이라던가 끓는 물이 담긴 커다란 솥이라던가 온갖 수단들이 동원되어 올라오는 왕국군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도왔다’, ‘움직였다’, ‘막아내고 있었다’… 극의 초반,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할 장면에서 설명이 꾸역꾸역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이 부분은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이 ‘보여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화살이 보병들의 커다란 방패에 막히며 쇳소리를 냈다. 성벽에 정렬한 전열 병사들의 커다란 방패들 사이로 후열 병사들의 창이 번쩍일 때마다, 추락하는 왕국군들의 비명소리가 성벽 아래로 멀어져 갔다. 발사를 명하는 백작령 지휘관의 외침에 따라 화살들이 성벽 너머로 날았다. 성벽 위를 오가는 화살들로 푸른 하늘이 검게 물들었다 밝아졌다를 반복했다. 홈을 따라 커다란 바위가 굴러 내려가고, 커다란 솥에서 끓는 물이 쏟아져 내릴 때마다 저들의 단말마가 하늘을 찔렀다.
-문장
작품 전반적으로, 가독성에 영향을 주는 문장들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반적으로 문장을 손보는 탈고 작업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이 곳 브릿G에는 워낙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분들이 많아, 평범한 수준의 문장으로는 독자를 사로잡기가 쉽지 않거든요… (저도 그런 재능이 없어 노력하고 있는 1인입니다 ㅜ)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문장은 너무 길어서 잘 읽히지 않습니다.
리오는 그 때문에 어안이 벙벙했는데 아예 쥬반트의 두 눈이 얼음처럼 차가운 빛을 뿌리는데다가 그의 검신에서 또한 차가운 빛의 검날이 주욱 늘어나며 구제척인 형상을 만들어가는 것을 보고서 리오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아래와 같이 내용이 중복되기도 합니다. 탈고 때 가장 먼저 쳐내야 할 부분이 불필요한 내용, 그 중에서도 중복되는 문장입니다. 안 그래도 수많은 글자를 읽어야 하는 독자의 눈을 피곤하게 하거든요.
“그 호의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지금으로서는 방금 말 한 대로 호의에 감사를 표하는 일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런 부분은 아래와 같이 고치면 어떨까요.
”그 호의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예시입니다. 두번째 문장은 그냥 삭제해도 전개에 지장이 없습니다.
’역시 마음에 안 들어.’
역시 마음에 안 드는 스승임을 리오에게 알려주는 펠런 이었다.
비문도 있습니다. 오타일 수도 있지만… 몇 개 짚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아래 문장들만 고치면 된다는 것이 아니고, 작품 전반적으로 꼼꼼히 탈고를 하셔서 더욱 깔끔한 작품으로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토록 신뢰의 말이 어디에 있을까?’
‘매일 이를 상대해 주는 팰런이 가장 몸으로 깨닫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리오의 뒷모습을 다나는 어딘지 착잡해진 시선을 보내게 되었다.’
‘순전히 루디스가 물러간 것은 리오가 신성력으로 자신의 내면을 보호해서 정신이 읽히지 않았고 반면에 리오가 선한 의지로서 이번 일을 생각하고 있음을 루디스가 읽었기 때문이었다.’
‘다나라고 알 수 없는 노릇이기에 고개를 젓는 수밖에 없었다.’
‘팰런은 오히려 자신이 그를 보자 리오보다 더 험하게 다를 기색이 엿보였다.’
‘뭔가 모험심이 넘치는 걸 좋아하던 이 사람을 잠시 일이 뜸해진 틈에 제국을 통해 이곳 동부 미개척지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 비약적이거나 모호한 표현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렵네요… 작품을 읽다 보면, 대충 보면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디테일하게 생각하면 다소 비약적이라 감정 이입이 깨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퇴고를 통해 이런 부분들을 깔끔하게 잡아주지 않으면 그대로 옥의 티가 되어 버립니다. 저라면 아래와 같은 부분들은 퇴고 과정에서 수정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제니아를 처음 만난 리오는 아래와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차분해 보이는 갈색의 두 눈에서 리오는 차갑고 이지적인 느낌을 받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어머니를 보는 느낌? 제대로 입을 연다면 어떤 상대라도 팩트 폭력을 가해서 무너뜨릴 지모의 소유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소녀는 지금 교양과 품위를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눈동자만 보고 저러한 내면의 성격까지 알아내는 것은 거의 초능력에 가깝습니다. 물론 이 작품이 추리물은 아닙니다만, 이 부분을 좀 더 현실적으로 묘사해 보셨으면 좋겠네요. 리오는 소녀의 어떤 부분을 보고 저런 인상을 받았나요? 작가님은 실생활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사람들에게서 지적이라는 인상을 받나요? 그 점을 명확하게 표현해 주시면, 작품이 더욱 현실적으로 살아납니다. 아래는 예시입니다.
다음 말을 찾아 달싹거리는 그녀의 입술 모양에 눈길이 닿았을 때, 리오는 그 입매가 어머니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상대라도 팩트 폭력을 가해 무너뜨렸던 지모의 소유자를.
한편, 약혼자와 황태자를 오빠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제니아는 리오에게 말합니다.
“다 그란베르 후작님의 교육 덕택이죠. 아무리 귀족가의 여식이라고 해도 알 건 알아야 한다. 단지 자신을 치장하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사람의 머리가 아닐 거라는 것이 후작님의 지론이죠.”
정작 가족인 아버지는 후작님이라고 부르는 점에서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제니아는 아버지와의 사이가 영 좋지 않은 건가요? 그런데 평소 모습을 보면 딱히 그런 느낌도 들지 않습니다. 워낙 비밀스러운 아가씨라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요.
한편, 유엘에 대해 리오와 다나는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눕니다.
길고 검은 머리칼에 동일한 빛의 눈동자를 지닌 그녀는 정말 신관의 표상이라 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리오로서는 조금 거리감을 느낄 법하기도 했다.
“으, 뭐랄까 그 분은 너무 신관 같은 분이네요.”
“유엘 언니가 그렇긴 하죠? 하지만 세상에 비슷한 사람만 있을 순 없잖아요?”
전지적 화자와 리오, 다나 사이에는 ‘신관 같다’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신관 같다’는 점에 왜 거리감을 느껴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신관 같은 게 뭐죠? 고지식한 것? 보수적인 것? 하지만 루디스는 분명 자유방임의 여신인데요.
한편, 마을에 들어간 다음 날 일행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서술됩니다.
리오 일행은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시기에 식사를 하게 되었다. 펠런은 리오 때문에 이런 꼴이 났다며 계속 투덜거렸고 베론은 그런 펠런을 다독이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말았다. 리오는 자신이 한 일이 있는지라 별 다른 대응을 하진 않았다.
펠런이 말한 ‘이런 꼴’이 뭔가요?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시기에 식사를 하는 것이 투덜거릴 일인가요?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중세의 세계를 탐험할 때에는 끼니를 굶지만 않아도 다행입니다. 그리고 리오는 뭘 잘못한 건가요? 급히 마을로 들어선 것이 잘못된 것일지… 그 당시에는 그냥 그 자리에서 야영하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었던 것 같은데요.
리오가 중간중간 고민하는 부분은, 왜 고민을 하는 건지 잘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제가 제대로 읽지 못할 것일 수도 있는데, 자신을 회귀시킨 루디스와 현재의 루디스가 다르다고 해서 현재의 루디스에게 꺼림칙함을 느끼는 것 같은데요. 그것이 타당한 이유인지 모르겠어요. 실제 서술도 ‘뭔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애매모호하게 흘러가더라구요. 내적 갈등의 묘사는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리오가 대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 건지 구체적으로 던져주어야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한편, 신성력으로 엘린그라드의 하늘을 함께 날아다니는 것을 리오는 ‘불경을 저지르자’고 묘사하는데요. 이것이 왜 불경인지 모르겠습니다. 루디스는 힘은 사용해야 의미가 있다며 신자들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신 아니었나요? 심지어 다나에 의하면 남녀의 사랑을 장려하는 것처럼 서술됩니다. 게다가 이후에도 이 ‘광익’ 능력을 쓸 수 있다는 걸 숨기려 드는데, 구체적으로 뭘 염려해서 그러는 건지 그 이유가 명쾌하게 와닿지가 않습니다.
Search & Attack 의 장에서는, 마인드 크래셔라 불리는 환각을 처리한 후 대뜸 다나에게 맹세를 합니다. ‘검의 맹세’라는 것이 어떤 마법적 효력이 있는지는 아직 나오지 않아 그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언제 적이 또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너무 안일하게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회귀 전에는 다나에게도, 라나에게도 맹세를 했었다는 기술을 보면 맹세가 그렇게 거룩한 것인지조차 의심이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하에서 조우한 쉐이드 나이트와 리오가 싸울 때, 펠런은 다나의 개입을 막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대사는 저녁 메뉴를 선택할 때나 나올 법한 말입니다. 제자의 목숨이 달린 일에, 그것도 적진 한가운데서,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애매한 마음가짐으로 행동을 결정하는 스승이 있을까요. 기사의 긍지든 뭐든, 펠런이 그런 결정을 내렸을 때는 굳은 확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대사 때문에, 제 마음 속에서 펠런은 순식간에 찌질이가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정인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도울 수 있는데도 돕지 않은 다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문제는, 그녀의 심정이 아래와 같이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 도왔다가는 뭔가 겆잡을 수 없게 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한 가지 제안 드리자면, ‘뭔가’ 라는 글자는 화자의 서술 부분에서 전부 지우고 해당 문장들을 다듬어야 합니다. 화자조차 명확하게 묘사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들 독자는 없습니다. 사실, 이런 표현이 반복되다 보니, 독자 입장에서 ‘뭔가’라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는 귀찮아’라는 작가의 목소리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오비완 케노비가 스승 콰이곤 진을 잃을 때, 그는 레이저 방어막이라는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스승을 돕지 못했습니다. 위 상황에서도, 이러한 것과 동급의 장애물이 필요합니다.
아래는 제니아가 언데드를 조사한 결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며 하는 말입니다.
”보통 언데드화 된 사체라면 내부의 조직이나 표면에 그 흔적이 있죠. 오래되고 삭은 흔적이나 손상된 흔적이 있겠죠. 하지만 이건 완연히 생체에요.”
제니아가 언데드를 조사한 결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며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언데드 사체가 생체라고 표현하다니,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무언가의 오타인 것 같습니다.
아래는 적들을 찾아내기 위한 계획을 짜는 대화의 일부입니다.
리오가 생각해도 그 우선순위를 정해서 시간이 들더라도 확실하게 조사를 하는 것이 위험을 방지할 것 같았다.
“여기부터입니다.”
하지만 뒤이어 제니아가 한 말은 리오의 의도를 산산히 부수고 말았다. 그녀가 가리킨 지점은 바로 하건의 일행이 캠프를 차렸던, 원인 지점이었기 떄문이다.
어… 리오의 생각대로 우선순위를 정한 것 뿐인데, 이것이 왜 리오의 의도를 산산히 부순 것인가요? 혹시 원래 의도가, ‘시간이 들더라도 원인 지점의 외곽부터 찬찬히 조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였나요? 그렇다면 문장을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니아가 시체 조각을 조사해보니 인위적인 거라면서? 그러면 아마 우리 존재도 어떻게든 알고서 움직인다는 결론이 나와.”
펠런의 말입니다.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오지요? 논리적으로 중간에 무언가가 빠져 있어 보완이 필요합니다.
또한 적국의 왕자가 리오의 파티에 먼저 다가오는 건 동기가 무엇인가요? 단순한 호기심으로 처음 보는 사람들의, 그것도 적국 사제의 의상을 입은 사람들의 파티에 선뜻 들어서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이를 실제로 수행하려면 그 이상의 확신이 필요한데, 하룻밤을 함께 노래하며 보냈다는 이유로 그를 찾아오는 것으로는 조금 부족합니다.
-마치며
여기까지가 제가 작품을 읽으며 느낀 바를 정리한 것입니다. 아쉬운 부분을 많이 지적드린 것 같은데, 부디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리뷰는 어디까지나 일개 독자의 의견일 뿐이고, 이를 수용할지 말지 여부는 전적으로 작가님의 자유입니다. 제가 가장 받고 싶은 리뷰는 바로 제 작품의 단점을 짚어주는 리뷰이기에, 저 또한 작가님께 진심 어린 피드백을 드려 보았습니다.
함께 성장해가는 브릿G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진심으로 바라며, 작가님을 응원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