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남의 이야기 의뢰(감상)

대상작품: 양치기 소년을 위한 변론 (작가: 아침은삼겹살, 작품정보)
리뷰어: DALI, 4시간 전, 조회 7

제한된 분량 안에 필요한 정보를 욱여넣는 데에 도가 튼 실무자의 문장력이 돋보이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유려한 문장은 대체로 효율이 높은 문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 글에 쓰인 문장들이 바로 그런 사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코로나 시국의 긴급재난문자 담당부서의 업무는 문장 효율을 높이는 연습을 하기에 꽤나 적합한 유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이 글을 읽으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생소한 경험은 아니었어요. 사실 전 공공 영역의 기계적인 실무가 문장 훈련에 꽤나 도움이 된다고 믿는 편이라서요.

다만 제가 보기에 이 글은 잘 훈련된 촘촘한 문장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지는 못한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한국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실무자의 고충을 사실적으로 풀어낸 흥미로운 썰들이 자주 올라오고, 거기엔 나름의 관습적인 규칙이 존재합니다. 만약 이 글이 그쪽 규칙을 충실히 따랐다면 어쩌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꽤 진지한 톤의 소설로 쓰였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그 바닥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석되어야겠죠. 그 점에서 전 이 소설이 미완성이라고 생각해요.

‘양치기 소년을 위한 변론’이라는 제목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이 글은 사회적 편견이나 오해로 인해 불리한 입장에 놓인 누군가를 대변하기 위해 쓰인 짧은 소설로 읽히게 됩니다.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가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뜻이지요. 이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소설의 완성도는 작가의 의도가 어느 정도로 노출되었는가로만 판가름날 수 없으니까요. 다만 그렇게 전면에 드러난 메시지가 일반으로의 확장성을 거의 갖지 못한다는 건 지적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소설은 코로나 시국에 운 나쁘게 고강도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사람들의 고충을 토로하는 데에 치중할 뿐, 그들의 고통을 더 넓은 범주의 고통과 맞닿게 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독자 입장에서 감정적으로 가까이 다가서기가 쉽지 않은 이야기예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어떤 분야의 고통을 드러내어 알리는 것은 중요하지만, 소설에서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고통을 ‘독자 자신의 이야기’로 끌어오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선 서술자의 고충을 내 것으로 끌어올 만한 여지가 별로 없어요. 그건 서술자가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이야기가 독자를 현장의 실상을 모르는 타자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독자가 재난문자 업무팀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속속들이 알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이 작품의 전제가 전적으로 그르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이 소설이 그려내는 세계는 제게 조금은 협소하게 느껴집니다. 독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사유할 만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전 이 소설이 훨씬 더 길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이야기가 더 덩치 큰 이야기의 도입부였다면, 전 이어질 내용을 궁금해했을 거예요. 결말도 다른 에피소드가 충분히 들어설 수 있을 만큼 여백 있게 쓰였고요. 이전에 상상도 못 했던 ‘진짜 재난’이 지금부터 펼쳐진다고 해도 장르적으로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흥미로운 이야기를 쓰셨으니 아무쪼록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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