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추운 계절에 찾아온 따스한 – 겨울비 공모(비평)

대상작품: 겨울비 (작가: 전혜진, 작품정보)
리뷰어: dorothy, 17년 4월, 조회 88

. 작품 감상이 주가 된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시린 바람이 불어대는 와중에도 그나마 온기가 느껴지는 날은 있다. 미처 얼지 못한 물방울들은 겨울비가 된다. 빗방울은 코끝을 간질이는 달큰한 체취와 함께 화자의 마음 깊은 곳까지 내려앉는다. 이 작품은 한반도의 가장 아린 날들인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다.

갑오 개혁때 공식적으로 신분제를 철폐하였다고는 하나, 사람의 인식은 그리 쉬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대대로 양반으로 살았던 이들은 일제 강점기가 다 되어서도 대를 잇고 가문을 일으켜 세울, 사회에서 출세할 인물을 배출하는 것에 급급하여 개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무시하는-사실 알고 싶지도 않아하는- 행태를 보인다. 이 작품에서는 화자와 화자의 나어린 숙부인 윤창 아재가 그러한 분위기의 피해자가 된다.

화자는 양반 가문의 종손이다. 화자보다도 다섯 살이나 어린 윤창아재는 아버지와 자신에게 쏟아지는 집안 어른들의 눈총을 피해보려 안간힘을 쓴다. 어딜 가든 1등에, 장학금을 받고 제국대학까지 들어간 그에게는 이전과는 다른 관심이 쏟아진다. 동리의 자랑, 집안을 일으킬 인물! 바로 양반 집안이 그토록 원하던 인물상인 것이다. 윤창 아재보다 다섯 살 많은 종손은 윤창 아재를 미워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집안 어른들의 태세전환에 쓴 웃음을 삼킨다.

가문에 해를 끼칠 자라면 그대로 끊어내버리는 양반 가문의 방식이, 일제 치하에서 일하는 자들의 비아냥이, 또 이런 풍경을 만들어 낸 일제 강점기의 모습이 가슴시리다. 윤창 아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핏 유약해 보이는 화자의 숙부는 모든 걸 감수하고 시린 계절을 끝내기 위해 떠난 것이겠지.

가장 추운 계절에 찾아온 따뜻한 날에 내린, 미처 눈이 되지 못한 빗방울은 끝까지 그들의 삶을 적실 것인지. 화자와 단발머리 소녀의 이후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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