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리뷰는 상당히 고리타분할 예정입니다.
본인이 꼰대 성향 테스트 60점이 넘거나,
집중력이 빠르게 퇴근하는 편이라고 생각되시면
바로 뒤로가기를 누르시면 될 겁니다.
자, 지금부터 너~~~무 당연해서
하품 나오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먼저 여러분들도 잘 알고, 저도 너무 잘 알아서
이 주제로 3초 이상 떠들면 눈꺼풀이 셀프 셧다운을 하는
지극히 당연한 현실 조건 두 가지를 상정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현실 조건 1.
다잉 메시지로 범인을 잡는 건 현대수사의 기본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현실 조건 2.
추리물 리뷰에서 스포는 필수입니다.
2번 조건이 끌리니 2번 조건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2번 조건이 끌리니 2번 조건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네. 2번입니다.
과거, 우리의 입을 틀어막았던 추리 야만의 시대에는
추리물 리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스포일러라고들 했습니다.
범인과 트릭을 미리 말하면 안 됩니다.
결정적인 단서를 미리 말하면 안 됩니다.
소년탐정 김전일을 보다가
“저 사람 끝에서 죽습니다.”
“저 사람 제일 범인 아닌 것처럼 생겼죠?”
이런 말을 하면 친구가 눈에서 레이저를 쏘아 대던
정말 야만적인 시대였죠.
그런데 오늘날 세계는 어떻습니까.
그리고 그 세계를 지극히 하이퍼리얼하게 그린 이 작품에서는 어떻습니까.
스포일러는 금기가 아니라
제도입니다.
다른 식상한 추리물들이 독자를 상대로 연막을 치면서
범인이 누구인지 감출 때,
이 작품은 정직하게 보여 줍니다.
피해자가 사망 직전에 스포일러를 남깁니다.
그것도 대충 남기지 않습니다.
성실하게 남깁니다.
암호화해서 남깁니다.
해석 절차까지 요구하는 방식으로 남깁니다.
이 정도면 다잉 메시지가 아닙니다.
사망 직전 제출한 형사고발장 문서입니다.
그러니 추리물 리뷰어가 스포일러를 조심한다는 말은
이 세계에서는 매우 낡은 사고방식입니다.
피해자도 죽기 전에 스포일러를 남기는데,
멀쩡히 살아 있는 리뷰어가 아무 단서도 남기지 않는다면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
직무유기입니다.
아시겠죠?
너무도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하~~암 저도 졸려서 하품이 나오네요
자, 이제 지극히 당연한 현실 조건 1로 넘어가겠습니다.
다잉 메시지로 범인을 잡는 건 현대수사의 기본입니다.
이 작품에는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법률도 나옵니다.
다잉메시지특별관리법.
약칭 다특법입니다.
다특법 제1조 제1항은 아마 이렇게 되어 있을 겁니다.
“이 법은 사망 또는 사망에 준하는 급박한 상황에 처한 자가 범인, 범행, 동기, 수단, 장소 기타 수사상 필요한 사항을 문자, 음성, 도형, 물건의 배열, 신체의 자세, 상징적 행위 또는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경우, 그 표시의 보존·해석·관리 및 활용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사건의 신속하고 공정한 해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항 이하 중략.
별 뜻은 없습니다.
그냥 법률 문장처럼 보이기 위해 필요한 모든 단어가 들어갔습니다.
다만 취지는 분명합니다.
사람이 죽어 가며 남긴 메시지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글자든, 물건 배치든, 암호든, 말장난이든, 이상한 자세든,
도저히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를 마지막 행동이든.
피해자가 죽어 가면서까지 남긴 단서입니다.
수사기관은 마땅히 그것을 최우선으로 보존하고, 해석하고, 기록해야 합니다.
수사기관이 마땅히 지녀야 할 덕목이 뭡니까.
바로 인성입니다.
피해자가 힘들여 남겨 놓은 다잉메시지를
하나도 빠짐 없이 그리고 의도대로 해석하는…
맞습니다.
그겁니다.
바로
열정
반대로 지문 채취, 혈흔 감식, DNA 분석, CCTV 확인, 통신 기록 조회, 피의자 심문 같은 방법은
이 세계에서는 재래식 수단입니다.
옛날 수사 방식입니다.
셜록 홈즈 시대 경찰들이 하숙집 주인을 붙잡고 캐묻고, 피의자를 골라서 고문하고,
협박해서 진실은 들여다보던 전근대적 유산이었죠.
셜록 홈즈의 수사는 당시에는 혁신이었습니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접근들
우리 세상은 한동안
그게 왕도인줄 알았죠
그렇지만 그 셜록홈즈도 나오자마자 구시대 유물로 변화시킨 그것
그 게 바로 다잉메시지 였죠
어르신들은 수사반장을 보시면서
과거를 추억하시겠지만 말입니다.
어쩔수 없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죠
물론 그런 방법을 아예 금지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문제는 남용입니다.
다잉 메시지 해석이 끝나기도 전에 DNA부터 돌린다?
CCTV부터 확인한다?
피의자를 불러다 심문부터 한다?
이건 편합니다.
너무 편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편리함이 위험합니다.
과학수사의 이름으로 피해자의 마지막 의사표시를 묵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잉 메시지 해석권이 침해됩니다.
국민의 정당한 추리권이 방해됩니다.
범인이 피해자가 피로 남긴 최후의 암호가 아니고,
주차장 CCTV 같은 반칙 카드로 잡히는 불상사가 벌어집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다특법에는 반드시 처벌 조항이 있을 겁니다.
아니, 있습니다.
“수사기관 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다잉 메시지의 해석 절차를 완료하기 전에 지문, 혈흔, DNA, CCTV, 통신기록, 피의자 심문 기타 전근대적 보조수단으로 사건의 결론을 선취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추리권 정지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반전몰수형에 처한다.”
무섭습니다.
하지만 필요합니다.
이 조항이 없으면 추리문명은 무너집니다.
피해자는 죽어 가며 암호를 남길 이유를 잃고,
형사는 단서를 해석할 명분을 잃고,
독자는 페이지를 넘길 권리를 잃습니다.
그러니 이 작품의 형사들은 이상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특법에 따라 정상 근무 중인 공무원입니다.
그러니 저는 이 작품의 형사들을 비웃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웃었습니다.
그런데 비번에 근무중이 아님에도 비장하게 수사를 차근 차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읽다 보니 웃은 제가 더 이상했습니다.
이 사람들, 놀랍게도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꽤 성실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단서들을 묶고,
그 연결이 맞는지 의심하고,
그 의심 안에서 다시 허점을 찾고,
앞선 해석이 틀릴 가능성까지 따집니다.
저는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독자가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읽으며 남들이 “바카미스다!” 하고 웃을 지점에서,
저는 한참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 그렇지.
아 이게 정통파 수사물이구나.
중세의 형사가 지문과 CCTV와 통신기록을 보듯이,
이 세계의 형사는 피해자의 마지막 배치를 봅니다.
고대의 수사관이 현장을 보존하듯이,
이 세계의 수사관은 다잉 메시지를 보존합니다.
기원전의 법원이 증거능력을 따지듯이,
이 세계의 독자는 해석능력을 따집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던져 놓고 아무렇게나 웃기는 글이라고
옛날 사람들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아직 다특법 시대를 살아 보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보았습니다.
가장 현대의 수사기법을
이렇게 기본기 탄탄하게 밀어붙인
미래 추리물의 표상을.
그냥 갈 수 없어 이렇게 메시지를 남깁니다.
제 추천 메시지를 누군가 해석해 주신다면,
이 네 글자만 전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강력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