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이야기 장르도, 세상에는 있는 모양이에요. 대표적으로 뭐가 있을까요. 국내 작품이라면 1996년 출간 이후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오른 안도현 작가의 <연어>를 들 수 있겠죠. 최근 눈부시게 고운 클로스 장정으로 옷을 갈아입고 재출간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는 어떨까요? 장자크 상페의 수채 삽화가 곁들여진 이 작은 책도 일종의 어른을 위한 동화 장르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빠뜨리는 교양 없는 짓을 할 뻔했네요. 다분히 이색작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라이트노벨 <키노의 여행>도 있고요. <피터 래빗>도 <무민>도.
민담을 비롯한 본격 아동용 동화가 성인을 대상으로 할 때 주로 정신분석학적 독법 내지 심리치유적으로 읽히는 데 비해서 어른을 위한 동화 장르는 우화적으로 많이 읽혀요. 독자는 작품 속의 단순화된, 그리고 어린이의 심상을 모사한 자극이 덜한 세계 속에서 복잡한 현실세계의 이치를 간명하게 꿰뚫는 모식도를 발견합니다. 이 단순간명한 통찰을 얻는 자체만으로 시달린 마음을 달래는 치유효과가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소중한 독법이 있습니다. 바로 ‘순수한 세계에 대한 동경심의 충족’입니다. 한마디로, 귀엽고 예쁜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하는 거예요. 아이가 보는 동화와 어른이 읽는 동화의 결정적 시각차가 바로 여기 있다고 봅니다. 그리움. 한때 갖고 있었던(실제로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사후에 구성된 상실감)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희구. 저는 이 욕망이야말로 ‘어른을 위한 동화’를 성립하게 한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이아시하누 작가님의 세 작품을 읽었어요. <마녀 장난> <진짜 마녀의 할로윈> <커져버린 아이를 위한 네버랜드>. 그중 <마녀 장난>에 리뷰를 걸었지만 세 작품 모두 아련한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로서 감명 깊었어요. 세 작품 모두 쓸쓸하거나 약간 결여가 있는 아이가-혹은 아이에게 마술적인 ‘선물’을 받는다-혹은 준다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 중 <마녀 장난>이 특별히 마음이 갔는데요. 한순간의 꿈처럼 어딘지 덧없는 <네버랜드>나 조금 씁쓸한 <할로윈>에 비해 따스한 온도를 갖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테마는 제목처럼 ‘장난’입니다. 조금 짓궂은 장난이죠. 마녀들의 소사이어티(?) 중 가장 어린 ‘나’는 선배 마녀 ‘엘라멜’의 억지 섞인 부추김에 넘어가, 마녀들의 옷과 방에 온통 마법 반짝이를 뿌린다는 장난을 저지릅니다. 심지어 소사이어티 최고의 권위자 ‘대마녀님’에게까지 장난을 쳐요.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대마녀님은 아니나다를까 이 못된 장난을 좌시하지 않습니다. 조마조마 마음을 졸이는 ‘나’에게 대마녀님은 어떤 처분을 내릴까요?
어른을 위한 동화가 단순하고 담백한 성격을 갖고 있더라도 결코 싱거워서는 안 될 텐데, 간혹 이 장르 창작물을 보면 아 이건 너무 독자를 얕본 거 아닌가 싶을 만큼 김 빠지는 엔딩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마녀 장난>은 아니었습니다. 짧은 매수 속에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해프닝에 절로 웃음을 지으며 따라가다 보면 딱 내가 원하던 엔딩으로 마무리지어져요.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도 모르면서도 바로 그걸 원했던 엔딩으로요. 그리고 독후감은 예의 그리움입니다. 양질의 ‘어른을 위한 동화’를 읽는다는 건 그리움을 충족하는 동시에 여운으로 연장시키기도 하는 거거든요.
이아시하누 작가님이 그리는 마녀 연작의 세계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내가 돌아가고 싶은 세계를 그려줘요. 더 가타부타 할 것 없이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