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내가 나이들고 조금 더 현명해져 세상을 깨달을때면,
(And oh when I’m old and wise.)
나에게 던져졌던 무거운 말들은
(Heavy words that tossed and blew me.)
가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거야.
(Like Autumn winds that will blow right through me.)
내가 늙고 조금 더 현명해져 세상을 깨달을 때가 오면…”
(Oh when I’m Old and wise.)
학창시절 Alan Parsons Project의 음악을 좋아했다. 시대를 앞선 감각과 독특한 사운드 메이킹으로 빚어낸 그의 수많은 명곡들 중에서 나는 “Old and wise”가 가장 좋았다. 삶을 관조하는 듯한 가사와 청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온기를 머금은 호소력 있는 목소리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Old and wise”라는 곡의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노래를 들을때면 세월이 흘러 경험과 지식이 쌓여 삶이 던지는 질문에 여유롭게 대처해나가는 먼 훗날의 나를 상상할 수 있었다. 아직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들이 많았던 시절이었지만, 작은 어깨에 짊어진 고민과 풀지 못한 숙제들 속에서 Alan Parsons Project의 “Old and wise”는 내게 위로이자 동시에 희망이었다.
하지만 삶에 대해, 또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삶을 살아가면서 몇번의 일렁임과 부침을 겪으면서 학창시절 가졌던 미래에 대한 확신과 설레임은 차츰 빛을 잃어갔다. 은헌 작가의 <그리핀도로의 후예>를 읽으며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을 했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겪는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이다. 이 세상에 완전한 어른은 없다는 말처럼 우리는 자신의 시대에 존재하는 일렁임을 경험하고 극복하면서 서서히 어른이되어가는 것 아닐까? <그리핀도르의 후예>의 상현과 정우처럼 말이다.
삶을 구성하는 부분들 중에서 인간이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저마다의 의지로 삶을 살아가지만 우리의 삶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로 흔들리고 어긋난다. 작가가 <그리핀도르의 후예>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에 떠밀리지 말고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