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자원이 떨어진 상태에서 읽은 로맨틱 수사물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달빛수사 (작가: 연여름, 작품정보)
리뷰어: 그린레보, 20년 4월, 조회 150

저는 대체로 멍청한데 주기적으로 더욱 멍청해지는 상태가 찾아옵니다. 갠적으로는 ‘인지자원이 떨어진’ 상태라고 부르는데 그 대표적 증상 중 하나가 극단적인 ‘한글 텍스트 난독’입니다. 어째서인지 도저히 한글에 집중을 못 해서 오히려 외국어가 잘 읽히는 상태가 되어버려요.

다만 이런 상태에도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웹소설류(브릿G에 올라오는 작품이라기보다는 판타지나 로판 같은 작품들)가 그래요. 정말 신기하게 술술 읽힙니다. 물론 광화소 피로도 때문에 오래는 못 읽지만…

이 작품 <달빛수사>의 경우 실은 묘하게 잘 읽히는 타입에 속했어요. 자게에 남긴 글을 보고 읽으러 오면서도 아 끝까지 못 읽으면 어쩌지 싶었는데 의외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임상적으로 가독성이 확보된 문장이 아닐까요? 이런 면은 웹소설 시대에 상당한 이점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독성과 관련해서 두 가지의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1) 수사물인데도 ‘휙 읽을’ 정도로 단순한 설계

인지자원 떨어진 상태에서는 만화조차 제대로 못 봐요. 만화 의외로 정보량이 엄청 많아서요. 제가 미스터리물 엄청 좋아하긴 하는데 이때는 추리물도 기피합니다. 머리 아프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주의를 기울여서 집중해야 하는 정보가 등장인물의 이름과 관계성 정도밖에 없어서(이런 건 메모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음) 상대적으로 읽기 쉬웠다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갖고 가벼운 의외성과 반전을 만드는 건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사건 자체의 흐름과 인물 동선이 단순하다는 건 독서의 풍부함 면에서 아쉬웠어요.

2) 그런데도 주의 집중을 깨는 미스

초보작가님들 작품을 둘러보다 보면 상당히 높은 빈도로 만나는 문제점, 바로 시점 운영 미스입니다. 제한된 삼인칭 전지 시점은 진짜 어떤 인물에게도 집중하지 않고 극도로 객관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이상 일반적으로 ‘한 장면에 한 인물’의 시점을 경유할 수밖에 없어요. 삼인칭이라도, 한 장면에서 희우의 시각과 내면-재은의 시각과 내면 하는 식으로 왔다 갔다 하는 건 금물입니다(물론 어디에나 예외는 있다고 합니다). 이건 제 의견이 아니라 작법서들 읽다 보면 짜고 썼나 싶을 정도로 빈번하게 되풀이되는 조언이에요.

한 장면에서 복수 인물의 시점이 왔다 갔다 한다는 건 비유하자면 한창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 타고 있는 차를 버리고 갑자기 옆의 차로 갈아타는 거나 같은 거예요. 완전 깨는 일입니다. 무난하게 문장을 읽어나가던 주의력이 단숨에 내동댕이쳐지는 셈이에요. 이 점만 유의하셔도 작품이 훨씬 반짝거릴 거라고 생각해요.

그밖에 시간대 이동이 잦은데 별도의 주의환기가 없는 것도 아쉬웠어요. 이게 읽으면서 얼른 과거 일인지 현재 일인지 파악이 안 되어서 혼란이 벌어지거든요.

강점이 확실하니까 조금만 더 다듬어도 놀랄 만큼 멋진 작품이 될 거 같아요.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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