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하고 넓디넓은 우주의 조그만 행성에서 600만 년 전 아프리카 유인원에서 진화한 것이
사람입니다. 나름 자기가 크다고 생각하겠지만 만물에 비하면 티끌 중의 티끌.
이 쬐끄만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나라와 사회를 이루고 문명을 만들며 생을 이어갑니다.
죽지 않고 멸망 당하지 않기 위해 정보를 모으고 대책을 마련하고 인재를 파견하지요.
이 작품의 등장 무대는 지구에서 그리 크지 않은 나라 한국이며 이 한국의 정부가 정권을
유지하고 초자연 현상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초자연력 전담부서의 말단직원 중
한 사람이 주인공인 행안부 공무원 가막돌(암호명) 씨입니다.
주인공은 고대신을 이세계에 소환할 수 있는 밀교의 아티팩트인 비취 목걸이를 비밀리에
입수하기 위해 경매에 참여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방해에 경매는 파토가 나버려 물건을 손에
넣지 못하게 됩니다.
알고 보니 방해자는 같은 초자연력 전담부서지만 비밀기관이기에 예산확보를 위해 인원을
정부 부처에 쪼개 넣어 소속이 달라져 버린 탓에 알력과 파벌이 생겨버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집안싸움을 하게 된 국토부 말단직원 한지깜지(가명) 였습니다.
엎어진 경매로 주인 돌부(닉네임) 에게 다시 돌아가게 된 목걸이를 입수하기 위해 모 단체 회원으로
위장해 만남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얼굴 두껍게 끼어든 한지깜지에게 목걸이를 도둑맞게 되지만
그의 소속 국토부가 감찰 중이라 돌려받게 되고, 목걸이의 처리를 위해 상사에게 연락하지만
부서 간 지각변동에 흥분한 부장은 일단 돌부 씨에게 돌려주고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주인공은 한지깜지에서 풍지미로 자기소개를 바꾼 동료 공무원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며 사정상
연인 행세를 하며 돌부 씨 집으로 돌아간 후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현신한 고대신 끄뚜루미투루에게
당황하면서 교류하고 친숙함을 느끼며 속박하다가 탈출해 지구를 위기에 몰아넣는 고대신을
용기와 우애, 정부의 힘과 비밀단체의 협력을 통해 퇴치하는 내용입니다.
처음 <꿈에서 깨어난 끄뚜루미투루>라는 제목을 봤을때 ‘끄뚜루미투루’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꿈에서 깨어난다니 호접몽에 가까운 이야기일까 생각했었는데 작품 소개를 읽고 초반 몇 편을
읽고 나서야
한국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로컬 스케일의 맨인블랙
이구나 알게 됐습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끄뚜루미투루는
크툴루 신화의 그 분 인데
저렇게 써놓으면 보통 모르지요. 눈치채는 사람이 신기하신 사람이죠;;
어떤 책에서 ‘제목은 작품이 다루는 내용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의도하신 제목이겠지요.
제목의 ‘꿈에서 깨어난’ 다는 호쾌한 의미이겠구나 다 읽고 나서야 눈치챘습니다.
하지만 독자를 끌어당기는 제목이 아니니 재미에 비해 읽는 사람이 적은건가 손해보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절망인 코스믹 호러를 다루는데 작품의 무대는 한국입니다.
스케일이 아담해서인지 주인공을 비롯해 동료, 상사, 고대신, 비밀단체 등장인물들이 지구의 존망을
다투는 가운데에서도 익숙하면서 세속적인 친숙함을 보여주고 있어 자잘한 재미가 있습니다.
‘감히 대적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우주 고대신’이 지역적으로 한정돼 재미있어진 결과 딱히 외국까지
오가지 않아도 뭔가를 따로 안불러도 인류의 멸망 정도는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용의 절반 정도가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패러디, 풍부한 묘사와 표현들에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중간중간 재치있게 속였구나 느끼는 부분도 있구요.
좋은 점이 많은데 글이 부족해 모두 쓰지 못하는게 아쉽네요.
진짜 정말 재밌어서 꼭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