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이라는 단어는 사회적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암묵적인 규범을 의미한다.
법과는 달리 명문화되어 전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대마다 사회상을 반영하여 다양한 기준으로 이어져 왔다.
자연 법칙과는 달리 그 실체와 기준이 분명하지 않은 개념이기 때문에, 매 시대마다 철학자들은 도덕의 기준을 정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그 결과가 누적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행동양식에도 보편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도덕이 실체 없이 지속적으로 변하는 것이라면, 우리 시대의 도덕 기준은 누가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일까.
나는 이 소설을 그런 질문의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1. 주제 작품은 끊임없이 기존의 도덕관념에 질문을 던진다. 과연 절대적인 진리는 있는 것인가. 도덕 규범은 그 자체로도 완벽한 것인가. 커다란 맥락에서 사랑과 도덕의 관계를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별 에피소드 마다 현실 사회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각각의 구체적인 충돌 지점들을 조명하고 있으며 작가 나름의 관점으로 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각각의 목차에서 이러한 지점을 더욱 선명하게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법은 독자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향후 작가만의 트레이드 마크로 사용될 수 있는 일종의 시그니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만으로도 작가가 어느 정도의 안목과 철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소설에 담아내려 노력했는지 충분하게 느껴지며 작가가 제시한 해법이 독자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독자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문제들을 생각해 보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러한 개별 주제 들이 너무 많은 문제를 다루려고 하지는 않았는 지, 조금 더 절제되고 정돈 되면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커다란 주제와 좀 더 상호작용을 하며 펼쳐졌다면 어땠을 지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2. 구성 2-1. 인물 이 소설은 크게 네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전통적인 의미의 도덕 규범을 지켜오는 평범한 일반인 선. 그러한 규범과 충돌을 일으키며 사건을 일으키는 승훈. 그리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세나와 진로교사. 분명한 캐릭터를 가진 네 사람의 존재는 갈등을 통해 작품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튼튼한 뼈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이 들을 통해 작품은 마지막 순간까지 갈등 구조를 유지하며 작품을 지탱하는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 낸다. 다만 이 네 사람 외에 부차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다양한 주변 인물들의 쓰임이 아쉽게 다가온다. 모두들 일회성 에피소드의 소재로 사용 되고 버려질 뿐, 조금 더 유기적으로 밀도있는 갈등을 형성 하지는 못한다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주인공 네 사람의 갈등 구조를 통해 작품의 주제를 선명하게 유지하며 이어오는 과정을 통해 작가의 역량이 충분히 느껴지며, 다른 인물들의 사용법에 대해 조금 더 연구한다면 더욱 깊이있고 풍요로운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 해본다. 2-2. 사건 이 소설의 사건들은 기존의 학원물과는 다르게 사건의 중심에 선생님들이 있다는 점이 사건을 독특하게 만들어준다. 이러한 창의적인 에피소드 들은 사건에 몰입하게 하며, 학생 위주의 작품들에서 표현되던 단편적인 형태의 사건 구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전개되는 사건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또한 여러가지 사건들이 나름의 복선과 변주를 통해 결말로 치닫는 지점들이 굉장히 흥미롭게 전개되며. 사건을 통한 인물의 변화에 있어서도 세심하게 담아내는 등 사건들에 작가가 쏟은 애정과 관심이 넉넉하게 느껴진다. 다만 결말로 갈수록 결국 남녀의 삼각관계 그리고 과거가 있는 여성의 스토리가 진부하게 그려진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흔히 한국의 전문직 장르는 전문직 종사자 들이 일이 아닌 “연애하는”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지적들이 있는데, 이 소설은 선생님이라는 전문직의 업무에 대해 초반에는 자세히 다루고 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결국 “연애”의 요소로 함몰되지 않았나 싶다. 2-3 배경 도덕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 학교를 배경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가장 적절한 배경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도덕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인물들인 학생과, 성인이지만 끊임 없이 도덕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그렇지만 학생들에겐 도덕적인 모범을 보여야 하는 선생님이라는 인물의 특성은 더욱 입체감과 주제에 대한 몰입감을 주는 요소로 작동한다. 또한 누구나 학창시절을 경험하기 때문에 학교라는 배경은 특별한 부연 설명 없이도 독자들의 머릿속에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오르게 만들어 준다. 소설은 영상물이 아니기 때문에 독자의 머릿속에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 작품은 영리 한 배경 선택으로 인해 그런 부분의 접근성을 한층 높였다는 점에서 훌륭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고민 들이 디테일 하게 녹아 들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더욱 큰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는 부분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3. 문체 소설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적잖이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바로 이 소설의 문체이다. 1인칭의 관점으로 진행하는가 싶다가 3인칭으로 전환되는 시점도 그러니와 복문의 사용이나 주부와 술부의 호응이 어긋나는 부분도 여럿 눈에 띄게 된다. 그러나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갖게 된 생각은 문체 또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긋나거나 비뚤어진 표현을 통해 인물의 성격과 심리의 진폭이 느껴지며, 자유자재로 전환되는 시점은 마치 카메라 워킹을 통해 작품을 읽는 듯한 입체감을 준다. 이는 추후 작가의 다른 작품을 통해 어떻게 더욱 변화하고 진화할 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이 소설을 모두 다 읽고 나서도 우리 시대의 도덕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해답을 얻었다 고는 얘기할 수 없다.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 세상이 변해가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그 가운데 어디쯤에 서 있는지 고민거리를 던져 준다는 점에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소설이며,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권유해보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소설과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일종의 훌륭한 고민 상담을 받은 느낌을 갖게 하는데,
작가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독자에게 훌륭한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작가가 우리에게 던져 줄 또 다른 고민들을 벌써부터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