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시스라 하지요. 슬픈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한바탕 쏟거나, 정신을 쏙 빼놓는 액션 영화나 무서운 공포영화를 보며 속으로 비명을 몇 번 삼키고 나면 왠지 속이 후련하면서 상쾌한 기분까지 듭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을 만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고 걸러내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다보니 어떤 때는 감정이 메마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감정과잉상태가 되기도 하지요.
가끔 저는 조금 절제된 감동(?)이 주는 카타르시스에 매료될 때가 있습니다. 한 시간동안 눈물을 쏟아야 하는 최루성 멜로보다는 엔딩스크롤이 올라갈 때 비로소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는 영화가 더 기억에 남기도 하구요.
이 작품 ‘버드나무’는 분명 공포물이 맞습니다만, 다 읽고 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감동이 있는 단편소설입니다.
그렇다고 장르를 혼동할 정도로 샛길로 멀리 가지도 않습니다. 뭔가 뒷맛이 찝찝하고 예고없이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얼얼함만을 찾아다니던 제게 이런 카타르시스를 남겨주는 이 글의 힘은 ‘스토리텔링’입니다.
오늘날의 급한 독자들을 자신의 세계에 잡아두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작가님들이 고민을 거듭하고 계시는데, 이 분은 그 방법을 잘 알고계시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일단 서두에서부터 꾸준히 독자의 눈을 잡아끌고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흡인력이 강력합니다.
초반에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지도 않고, 최후의 반전을 위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준비해놓지도 않았습니다.
중간중간의 에피소드는 재미있으면서도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비무장지대로 가던 영남이 만난 할아버지의 사연은 이후에 나올 삼촌의 이야기와 오버랩되면서 ‘지난날의 행동에 대한 후회’라는 소설의 중요한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해주더군요.
이 이야기에 이런 뜻이 있었구나 하는 걸 소설을 읽고나서 되짚어볼수 있다는 건 독서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공포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 작품의 분위기는 그렇게 어둡지 않고 공포를 조성하는 장치가 있긴 하지만 그 강도가 세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가님도 ‘가벼운 공포물’ 이라고 소개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영남의 삼촌이 어셔가의 미쳐가는 상속자나 샤이닝의 잭처럼 변해가는 건 아닌가 설마설마하면서 읽었습니다만, 만약에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작가님이라면 글의 완성도를 떨어뜨리지 않은 채 멋지게 마무리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무리가 한국 전통설화의 흔한 결말처럼 느껴졌음에도 실망감이 들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겁니다.
어떤 장르의 글을 써도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 작가님의 훌륭한 글솜씨가 빛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네요.
요즘들어 자주 느끼는 건데 정말 이젠 작가님들도 많고 작품도 많습니다.
솜씨가 뛰어난 작가님이라 해도 번뜩이는 소재와 여러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는 강렬한 무언가를 찾게 되는 건 당연한 시류라 생각합니다.
그런 와중에 송곳처럼 뇌리를 찌르는 것보다는 머리를 어루만져주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같은 따뜻한 공포물을 접하고나니 결국 중요한 건 글의 완성도라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버드나무’는 기본적으로 재미와 읽은 후의 잔잔한 여운을 갖춘 멋진 단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연스럽게 사건에서 사건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이 너무 좋았습니다.
국내외로 불안, 공포가 전염되듯 확산되는 이 때에 잠시 머리를 식혀주는 향이 좋은 차와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