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문화를 담은 환상문학의 재해석. 호귀(虎鬼)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호귀(虎鬼) (작가: 테라리엄, 작품정보)
리뷰어: 베르메르, 20년 1월, 조회 374

브릿G의 호귀(虎鬼)

안녕하세요. 브릿G 사이트에서 한국풍 판타지 소설, 호귀를 읽고 감상문을 적게 되었습니다.

브릿G에서 연재하는 <호귀>는 작가, 테라리엄이 쓴 소설이고 조선시대에 살았던 연암 박지원이 쓴 호질전을 모티프로 한 동양판타지 소설입니다.

조선을 위협하는 호랑이 아귀의 출현

연암 박지원의 아들박출은 어릴 적 병을 앓은 후 무당 팔자가 되어 집 밖으로 내쫓긴다. 자라서 박수가 된 박출은 기근이 심한 조선을 떠돌며 사람을 돕는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어 더는 산군을 신당에 모시기 어려워진 마을호산촌으로 가는 길에 박출은 호랑이 목구멍에 숨어 있던 아귀와 호랑이보다 위험한 사람천기후를 만난다. 박출은 탐욕스러운 천기후가 착호군 우두머리의 딸산영을 해하지 못하도록 돕고, 산영은 박출에게 산군을 도와달라며 그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조선을 배경으로 산신령산군에 든 아귀가 벌인 사건을 그린 『호귀』는 탄탄한 구성과 매끄러운 필력이 빛나는 동양 판타지다. 각기 성격이 뚜렷하고 매력이 있는 캐릭터가 장르와 시대적 배경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사건의 기반을 다지며 나아가는 전개가 흥미를 더한다. 박지원과 그의 아들 박출, 그리고 산영과 산군의 이야기가 조선 시대와 어떻게 맞물려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저는 동양 판타지소설_특히 옛날 한국을 토대로 한 전통신앙, 요괴와 귀신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고 싶었으며 이 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갈수록 , 이게 보물이구나.’ 생각했고 브릿G 사이트에 묻혀있었던 진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제가 호귀를 읽으면서 떠오른 소설과 만화가 있었는데 이영도 작가님이 쓴 눈물을 마시는 새, 윤현승 작가님이 쓴 뫼신사냥꾼과 웹툰 호랑이형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호귀에서 등장하는 산군, 황요, 표견과 박이 호랑이형님에 나오는 모티프 (산군, 황요, 착호갑사, 표견과 박)와 비슷했지만 테라리엄 작가가 호질전에 나오는 소재를 가지고 작가만의 재해석을 내놓아서 놀랐습니다.

이영도 작가님이 쓴 눈물을 마시는 새는 진정한 한국적 판타지 소설의 예시로 드는데 이영도 작가님은 삼국시대와 중세 국어 (아라짓 어)와 도깨비의 모티프를 따왔지만 눈마새의 세계관과 망탈리테는 삼국시대~조선시대의 이미지와 거리감이 있어서 한국적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윤현승 작가님의 뫼신사냥꾼은 조선, 일본과 중국 대신 동혜, 옥류, 신월과 한나라를 설정하고 한국적 모티프 (뫼신, 귀신, 산지킴이와 요괴)를 넣고 잘 버무린 것은 좋았으나 간간이 보이는 무협적 느낌과 현대 한국인의 사고관과 풍습이 조선시대의 탈을 쓴 채 드문드문 드러나서 글을 읽는 데 이질감이 들어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윤현승 작가님이 쓴 뫼신사냥꾼과 비슷하게 호귀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뫼신사냥꾼의 동혜는 가상의 나라였다면 호귀는 조선 후기, 영조정조의 시대에 해당합니다.

이에 반해 호귀 소설은 우리에게 익숙한 배경을 바탕으로 해서 환상소설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실제 인물과 허구의 등장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니 뫼신사냥꾼에서 느껴졌던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고, 글을 읽으면서 빠져들었습니다.

이 소설의 장점은 우리에게 익숙한 호랑이, 여우귀신, 창귀와 한국 괴물과 한국신화를 배경으로 해서 부담 없이 페이지을 넘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호귀의 장점. 자연스러운 인물의 묘사>

호귀의 주인공, 박출은 스물 두 살의 남자 무당 (박수)이며 여자 사냥꾼, 산영과 조선에 숨겨진 괴이한 사건을 푸는 역할을 맡습니다. 소설 안에서 박출은 박수로 불려지며 그 자신이 가진 귀신 보는 능력을 가지고 고을에 있는 사건을 해결합니다. 저는 박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뫼신 사냥꾼의 박수무당, 버들()이 떠올랐는데 버들과 다르게 박출에게 감정 이입했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윤현승 작가님이 캐릭터를 등장시킬 때 개성을 드러나겠다는 욕심에 설정을 과하게 부여했습니다. 박수무당, 버들이 나올 때 윤현승 작가님은 버들의 성격, 입담과 말투를 캐리커쳐로 표현하듯이, 인물의 특징을 강하게 잡아 그리니까 뫼신을 읽으면서 자연스러운 얼굴이 그려지는 게 아니라 약간 일본만화 같은 느낌이 났습니다.

버들 도령과 다르게 테라리엄 작가님은 박출을 묘사할 때 담백한 필체로 전체적 성격과 행동을 잡아나가면서 묘사하니 인공적인 느낌이 나지 않고 자연스러운 연필소묘 초상화를 보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윤현승 작가님이 보여줬던 구구절절한 사연 묘사와 뒷배경과 과거 회상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윤 작가님에게는 미안하지만 뫼신사냥꾼을 읽으면서 앞서 말했던 세 가지 기법 때문에 스토리의 시점이 끊겨서 소설을 읽는 게 어려웠습니다.

호귀의 또 다른 주인공, 산영은 사냥꾼이면서 착호군, 홍대수의 딸인데 산영은 박수처럼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보통 판타지 소설에서는 남자 주연은 능동적으로 나오고 여자 주연은 수동적으로 나오지만 여기서는 산영이 활동적인 캐릭터로 나오고, 박수는 그녀를 도와주면서 생각해주는 박수 캐릭터로 나옵니다. 이 캐릭터의 관계를 비유하면 원령공주에 나오는 산과 아시타카의 이미지를 떠오르면 됩니다.

호귀의 특별한 점은 테라리엄 작가가 박수 출신인 주인공을 등장시켜서 불교와 무속신앙에 나오는 신장, 저승사자와 아귀, 동자신과 잡귀를 부리는 선무당과 굿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한국풍 판타지 소설에서는 박수, 무당과 도사들이 도력을 써서 요괴/잡귀를 물리치는 장면이 나오지, 불교와 무속신앙이 등장하는 건 거의 안 나왔습니다.

<호귀의 장점. 웅장한 풍경의 묘사와 신령들>

호귀의 캐릭터와 다르게 배경묘사와 신령스러운 영물의 묘사는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이것을 애니메이션으로 비유하면 호귀 소설 속 캐릭터는 일본의 호소다 마모루 감독님의 자연스러우면서도 꾸밈없는 캐릭터와 비슷하고, 호귀의 배경과 액션 장면은 지브리의 원령공주에 나오는 풍경을 연상케 했습니다.

신령스러운 동물, 천년호, 멧돼지와 표견, 대호와 산군이 거니는 묘향산, 두류산과 백두산 천지는 앨버트 비어슈타트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풍경화같이 눈에 그려졌습니다. 덕범전에서도 태주의 거대한 설산과 대비되는 작은 마을의 묘사도 좋았는데 이 분위기를 호귀를 읽으면서 다시 느꼈습니다.

Lander’s Peak 비어슈타트 작품

웹툰 호랑이형님에 등장하는 산군과 호귀(虎鬼)에 나오는 산군은 조선을 지키는 영물이란 점이 비슷하지만 호랑이 형님의 산군은 용맹한 호국산신에 가깝다면 호귀의 산군은 해동조선을 지켜보는 신령한 영물에 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호귀의 산군의 이미지는 조아라에서 연재했던 덕범전에 나오는 호랑이, 백피산왕과 비슷합니다.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를 지켜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여우 영물인 천년호도 나오는데 그녀는 뫼신사냥꾼으로 치면 뫼신과 비슷합니다. 천년호는 산군처럼 위엄 넘치지 않지만 구미호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잘 살렸습니다. 그녀가 데리고 다니는 다람쥐들은 딱딱해지기 쉬운 분위기를 밝게 환기시켜주는 조연을 맡습니다. 그리고 지옥의 묘사, 무당이 섬기는 귀신과 고통에 잠식된 산군의 묘사는 불안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잘 살렸습니다.

, 그러고 보니 호귀의 분위기가 어떤지 빼먹었습니다. 뫼신사냥꾼은 약육강식이 펼쳐지는 아비규환같은 다크 판타지 소설에 가깝다면 호귀는 신비로우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와 어둑어둑한 밤안개같은 다크판타지의 분위기가 납니다

<호귀의 아쉬운 점. 평면적인 캐릭터들>

호귀의 장점을 늘어놓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아쉽게 느껴지는 게 있었습니다. 테라리엄 작가님은 만연체보다 간결체를 쓰니 건조한 문체의 흐름이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고, 칼로 무를 자르듯이 딱딱 끊어지니까 생동감이 덜했습니다.

그리고 윤현승 작가님은 뫼신사냥꾼에서 액션과 심리묘사를 묘사할 때 독백이나 속마음을 독자한테 드러나게 하셔서 소설의 활력과 생동감이 느껴졌는데, 호귀에서는 주조연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드러나지 않아서 약간 뻣뻣하고 평면적인 느낌이었습니다. 뫼신사냥꾼에서는 세희와 소소리가 활발하게 뛰고, 달리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동적인 캐릭터라면 박출과 산영, 산군과 천년호의 이미지는 잔잔한 정적인 느낌이 드는 캐릭터들입니다.

앞서 말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호귀 소설은 제 마음에 들었는데 그 이유는 한국문화에 나오는 전통신앙, 호랑이 신앙과 불교와 무속신앙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소설이었습니다.

테라리엄 작가님이 소설을 꾸준히 쓰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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