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편집부의 추천이 있었던 장편 연재작으로, 전부터 한 번 보고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크게 후회했죠.
이 작품을 이제야 읽다니…!!
장편을 쓰고싶은 작가지망생 중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은 장편을 재미있게 쓰기 위해 참고할만 한 것들이 잔뜩 담긴 지침서와도 같았습니다. 반나절도 안 되서 연재분을 다 읽어냈으니 글의 재미는 두말할 것도 없겠지요.
언제부터인가 이런 배경의 글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꺼내게 되는 잣대가 있었습니다.
‘이 글은 판타지적인 요소가 잘 녹아들어있다.’ ‘이 글은 판타지 요소가 약하다.’
이유도 모르고 집어든 그 잣대의 정체는 지금 생각해보니 ‘서양의 판타지’였던 것 같습니다.
사전에 쓰여있는 판타지소설의 정의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주제로 한 소설.- 이더군요. 그것이 꼭 D&D나 톨킨 선생의 세계관에 맞추어져야 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는데 저도 모르게 단위가 다른 도구로 어설프게 작가님들의 작품을 재고 있었던 거지요.
‘호귀’는 정통판타지 소설입니다. 화승총이 등장하니 배경은 조선의 어느 시기인 것 같은데, 우리 땅을 지키던 여러 신령한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서양판타지에서 주로 인간의 적으로 등장하는 몬스터와는 다릅니다. 또한 아름다운 외모와 멋진 활솜씨를 자랑하는 엘프나 사대원소를 형성화한 정령과도 다르지요.
신수(神獸)라 불리우는 이 동물들은 적 아니면 아군으로 구분되는 서양의 것들과는 성격을 약간 달리 하는데 , 이 작품에서 특히 좋았던 부분도 작가님이 이 신수들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천년을 산 여우는 사람이 되기위해 사람의 간을 먹지도 않았고, 세상에 끼어들어 화복을 내리려 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거둔 작은 짐승들을 키우며 산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가 흔히 알던 산신령의 모습과 닮아있어서 더 정감이 가는 것 같습니다. 저승의 아귀에게 잡혀 마수가 된 산군 또한 원래는 신령이었지요.
우리에게 산신령이란 어떤 캐릭터입니까. 정직한 나무꾼에게 상을 주고 산속에서 헤매는 사람에게 길을 알려주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존재의 성격이 강하지요.
천년호를 보면 거기에 새끼들을 보살피는 ‘어미’라는 이미지가 부각되어 더욱 정감이 갑니다. 어려서 어미를 잃은 산짐승들을 거두어서 내 새끼처럼 보살피는 그녀의 모습에서 저는 서양과는 다른 동양의 모성애를 느꼈습니다.
서양에서 부모의 역할은 ‘protect’ -외부의 위협에서 지킨다는 의미가 강하지요. 어디 부모 마음이 서양이라고 다르곘습니까만은 우리가 여러 매체에서 받아들이게 되는 이미지는 분명 그렇습니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천년호와 표견, 박수의 아비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한’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부분이 이 작품을 더욱 몰입하게 하고 작중 캐릭터에게 공감하게 하는 부분이라고 보여집니다.
이 작품은 말투나 배경에서 고증이 잘 되어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작가님께서 그러려고 하신 것 같지도 않구요.
이 글은 판타지, 환상문학이니까요. 대신 우리의 것, 우리나라의 판타지 요소들을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매력넘치게 해석해놓으셨습니다. 그저 우리 신화에 등장하는 동물의 이름만 빌린 ‘드래곤 같은 청룡’ 이 아니라 우리 땅의 신수 중 가장 어른인 청룡이 등장합니다. 무엇보다도 강하고 오래 산 ‘어르신’이지만, 피도 안 마른 어린 것에게 역정을 내기도 하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악귀 앞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청룡 말고도 이 글의 신수들은 어느하나 마음이 가지않는 어르신들이 없습니다.
‘호귀’에는 판타지하면 으레 등장해야 할 것 같은 검과 마법이 없습니다. 대신 한국적인 정서인 한과 자신의 사나운 팔자에 맞서 싸우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작품에서 몇 안 되는 악역인 착호군 대장이나 한양에서 온 박수를 보면서도 아주 밉지만은 않은 것이 작가님이 인물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워낙 잘 만들어놓으신 이유일 겁니다.
그들에게도 뭔가 그들만의 한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거든요. 그런 사람들과 신령한 동물들이 모여 한 편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아직 연재중인데 오래오래 써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당연히 존재하는 표현처럼 써왔던(저만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형 판타지’라는 단어는 이제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귀’는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끝내주게 재미있고 완성도도 높은 장편소설… 이 될 겁니다.
아직 완결이 되지 않은 상태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시는 작가님의 능력을 보았을 때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은 0.00001%도 없다고 감히 자신합니다.
그런 이유로 많은 독자님들이 이 글을 보시고 제가 느꼈던 감동을 함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