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SF영화 같은 단편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효소의 작용 (작가: 한때는나도, 작품정보)
리뷰어: 양하쓰, 20년 1월, 조회 146

기발한 상상력, 분자생물학

사실 과학이나 SF는 정말 문외한이라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래서 유전자편집, 원심분리기 등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들도 더러 있었지만, 읽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이 작품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미래를 그리고 있다. 동성부부도 아이를 가질 수 있고, 무인 택시가 상용화되었고, 집안일은 편리해졌다. 생활상의 큰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무엇보다 핵심적인 기술은 유전자편집. 암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거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은 진보되어 있었다.

 

SF에 접목시킨 추리적 구성

이 작품의 핵심 아이디어는 분자생물학이라는 과학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여기에 추리적 구성을 더했기에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이 유전자편집이라는 이슈에서 교차하고 있었다. 촘촘한 구성은 물론이고 주변 인물들도 매력적이었다. 특히 정보기술을 별로 좋아라 하지 않는다는 유전자편집 회사의 사장의 무미건조하면서도 무책임한 인간성이 기술의 진보로 인해 인간이 얼마나 비인간화가 되어가는지 보여주고 있는 듯해 인상깊었다.

 

화려한 플롯, 드러나지 못한 메시지

아이디어와 구성, 인물까지 모두 좋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철학적인 주제로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진보된 기술과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들의 무책임, 그로 인한 재앙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나 그만큼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건은 있으나 의미가 결여된 느낌이었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는 있었지만, 좀 더 강렬한 묘사가 부족했다. 이런 류의 이야기라면 기술과 대비되는 인간성이나 생존 욕구, 기술에 배반당하는 인간의 처절함 등이 그려져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약했기 때문에 메시지가 덜 부각된 것 같았다. 이야기 자체는 참신하고 감각적이며 흥미로웠지만, 메시지가 약해서였을까 몰입감이나 감정이입이 조금 아쉬웠다.

또 작품만의 철학을 떠나 인간적인 매력도가 많이 떨어져 아쉬웠다. 성환을 걱정하는 강우의 모습과 시민들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한별의 갈등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둘 사이의 갈등을 심도 있게 그려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 글의 큰 사건은 유전자편집 회사의 도난 사건으로 일어난 부작용과 공격성으로 인한 폭력 사태겠지만, 그 안에서 드러나야 할 인간들 사이의 갈등과 문제, 어떻게든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투쟁이 그려지지 않았다. 사실 성환을 공격할까 봐 내심 불안해하는 강우의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이 부분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다. 그저 그가 의지로 참아냈다는 것과 성환이 강우를 그전보다 따르지 않게 되었다는 것 정도. 표현이 부족하니 작품 속의 사태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무책임한 유전자편집 회사보다도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보여줘야 하는데 참혹한 풍경은 거의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성환 세대의 아이들이 신인류가 되어가는 장면은 고요하기까지 하다. 사건의 결과가 이러하다면 여기서 오는 인간 내면의 갈등과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으면 좋았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강우나 한별은 너무도 침착한 주인공들이었다. 문제 파악이 빨랐고 결단도 빠르고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며, 심지어 한별은 자신이 강우와 성환을 내버려뒀다는 죄책감조차 가지지 않는다. 사건의 빠른 진행을 위해 생략된 것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실제 내가 강우나 한별, 성환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이 주인공들이 너무도 초인처럼 느껴져 공감하기가 힘든 부분도 많았다.

 

리뷰를 마무리하며

아쉬운 점도 많이 토로했으나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참 훌륭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그를 살리는 촘촘하고도 매력적인 구성이 좋았다. 전개가 빠른 만큼 깊이가 덜했지만, 장르소설적으로 본다면 흥미 면에서는 거의 100점 만점에 90점 정도를 주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사족이기는 하나 나는 뼛속까지 문과라서 이런 장르의 작품을 쓰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좀더 작가로서 공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의 재미와 좋은 성찰의 기회를 준 데 대하여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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