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몇 달 전에 읽어놓고 지금에 와서야 리뷰를 쓰는 이유는 딱히 없다. 사람들마다 다 때가 다르고 일요일 오전 늦게 일어나 생각이 났을 뿐이다. 아, 리뷰를 써야지, 하고. 게다가 사실 이 글은 리뷰가 아닐 지도 모른다. 일단 내가 리뷰를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하니까. 다만, 릴리스의 아이들에 내 모습을 비추어서 저 글을 읽은 후부터 지금 이 리뷰를 쓰는 시간을 반추할 뿐이다.
얼마 전 SNS에서 이 작가의 글은 늘 비문이 너무 많고 읽기 쉽지 않다며 비웃는 트윗을 몇 개 봤다. 사실 꽤 오래 전부터 봐왔고 고학력 몇몇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은은한 조롱이 돌았던 걸 몇 번 지나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이 리뷰로 질문하고 싶다. 정말로 당신들은 이 글을 읽을 능력이 있는가? 당신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용기가 있는가? 당신은 언어의 부재를 진정으로 이해하는가?
릴리스의 아이들은 또 다른 실낙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실낙원처럼 거나하게 취해있지 않고 언어를 빌어와 명징하게 말을 건넨다.
우리는 당신을 허물 것입니다. 당신은 준비가 되어있나요?
우리는 답할 수 없다. 이 무대 위에서 우리는 말을 할 자격이 없으며 다시 우리의 것을 되찾아 올 용기도 없기에 바라만 보고 있다. 우리는 겸양을 떨며, 그래 비켜주자는 식으로 서로 떠들어댈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아닐 것이다. 당신은 당신에게 부분적으로 녹아져있는 릴리스의 육신을 발견하고 다른 이들이 알아채기 두려워 얼굴을 숨긴다.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고 당신은 셋의 영육에 속하지 않음을 증명하고자 몸을 뒤흔들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실패할 것이다. 태초에 릴리스가 있었나니.
릴리스의 아이들은 당신을 찾아올 것이고 당신은 애써 외면했던 당신의 조각을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은 당신에게 그럴 권리와 힘에 대해서 중얼거리면서 뒷걸음치겠지만 보라, 이 무대 위에서 그 모든 상징과 도식들은 허물어지고 당신과 릴리스의 육신만 남았으니 받아들일 수 밖에.
이 기나긴 축제에서 아담은 의자에 묶여진 채 무대 중앙에 있을 것이다. 그는 차라리 토마토를 던져달라고 빌고 싶을 테지. 내가 차라리 대성당의 곱추처럼 스스로 연민할 수 있게 해달라, 빌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에스메랄다는 당신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춤추지 않고 걸어가 자신의 혈육들 사이에 설 것이다.
이 글은 모욕적일지도 모른다. 작가에게나 타 독자에게나 혹은 이 글을 비웃던 사람 모두에게. 그러나 우리는 분리되어 서로 다른 벽과 하늘을 보고 있지만 같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다. 이 글은 리뷰가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모든 언어가 주어질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물론 언어가 많이 주어졌다면 당신에게 빌어먹을 축복을 빕니다.) 허벅지와 성기의 털 사이에 심어졌던 비늘에 대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물 위를 올라오면서 우리가 마녀와 이행한 계약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 배 위의 축제와 근사한 왕자를 기리면서 우리가 건네었던 것.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이브의 아들조차 당신에게 이리하는데, 당신이 무얼 할 수 있을까? 릴리스의 아이들은 경고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