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는 과학이다. 사랑은 과학일까?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바나나파티를 위하여 (작가: 심소하, 작품정보)
리뷰어: 휴락, 20년 1월, 조회 132

첫문장의 강렬함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소설입니다. 곧장 변명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첫인상이라는 게 그리 쉽게 어찌 되는 건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건, 누구의 표현처럼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지만 다가가면 재밌는’ 주인공과 닮아있는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첫인상과 제목은 미뤄놓고 이 소설은 작가 공인 ‘청춘’, ‘성장’ 소설입니다. 그래서인지, 초반의 분위기나 요령 없지만 담담한, 여자와는 거리가 멀었던 주인공, 그리고 명문대 등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가 많이 떠오릅니다. 뭐, 산시로는 문과대학생이고. 이 소설의 주인공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한 초식남이니 좀 다릅니다만.

그래도 헌팅을 나가 빈번히 헛물을 켜고 욕을 들어먹는 모습에서, 함께 밤을 보내게 된 여자에게 ‘참 배짱이 없는 사람’이란 소리나 듣게 된 산시로가 겹쳐보이더군요.

그러다보니, ‘산시로’를 일본 근현대 청년상의 단면이라고 한다면, 이 소설은 현대 한국 청년상의 단면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감정보다는 호르몬 활동에 가까운 개념이라고 합니다(아주 호르몬 활동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말인즉, 대충 배고픔이나 목마름과 동일한 선상에 있는 것이죠.

이 사랑이란 것을 발생시키는 호르몬은 바로 페닐에틸아민, 아드레날린, 도파민, 엔돌핀, 옥시토신, 세로토닌 등입니다. 이들은 모두 각성제류에 속하는 호르몬들인데, ‘사랑은 마약이다’라는 표현은 은유가 아닌 설명이 되는 셈입니다.

이 호르몬들은 주로 포도주, 초콜릿, 콩, 새우 등 고단백 식품에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주인공이 ‘사랑’을 느낀 때, 그들은 와인과 햄을 먹었네요? 나름 의미심장한 부분이죠.

그리고 주인공의 전공은 화학공학입니다. 우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감정이 무디고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이성적으로 관찰하고 사유하는 주인공에게 어울립니다.

아무튼, 그 무딘 주인공은 주변 환경의 자극 탓에 강렬한 ‘성욕 해소’의 욕구를, ‘장기적’으로 해결하고픈 욕구를 느끼게 됩니다. 이과놈인 주인공답게 함축적이면서 동시에 빙 돌아가는 방식인데요, 쉽게 말해 그냥 외로워진 겁니다. 본인도 나중에 가선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을 대하는 요령이 없는 우리의 주인공은 친구 따라 헌팅도 해보고, 과 행사에 참여도 해봅니다. 하지만 이제껏 잿빛 세계에서 살아온 그에게는 녹록치가 않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주욱 관조하던 입장이던 그가 빠르게 현실에 소속되게 되는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에게 찾아온 성욕의 악마 ‘바르바가’는 일찌감치 ‘덤’이라고 표현되며 딱히 큰 비중을 갖지는 않습니다. 또, 그런 것치곤 또 나름 소설 속에서 중요한 축을 차지합니다. 어찌보면 작가의 편의주의적인 장치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맥거핀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어찌됐건 바르바가는 주인공에게 ‘능력’을 줬고, 가끔은 이런저런 조언도 해줍니다. 악마치고 참 친절합니다. 한편으로는 그의 능력과 조언 덕에 주인공이 변화하고 움직이며, 다른 세계로 끌려가게 되었다는 점에서 악마적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그 이과적인 주인공이 점점 미술을 공부하는가 하면, 감정적이게 되는 모습들이 두드러집니다. 게다가 그 꼬여있던 관계는 지극히 악마적이었죠.

모든 일이 지나간 후, 그러니까 1부 시점에 국한되어 생각하면 주인공은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상태입니다. ‘산시로’ 식으로는 길 잃은 양이 된 셈이죠. 결국 악마의 승리인 걸까요? 주인공은 나락에 떨어져 폐인이 되고 마는 걸까요?

하지만 또 더 먼 미래의 시점에서의 주인공은 이때를 편히 회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넘어진 경험을 딛고 일어날 수 있게 된 거겠죠. 1부와 이 미래 사이의 ‘미싱링크’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건 2부에서 이야기될 부분이니까요.


1부만을 놓고 보자면, 성장 소설의 궤를 잘 따라갑니다. 미숙한 인물, 사건, 부러지는 경험, 성장의 암시. 비록 ‘1부’라는 한계로서 그 완결성이 흐릿해집니다만, 연재가 이어지며 해결되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모로 많이 무딘 주인공이 얼마나 또 험한 연마 끝에야 미래의 그 모습이 될 수 있을지가 조금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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