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계란에 눈코입 대충 그려놓은 것 같은 강단없는 외모탓인지 자신감없어보이는 걸음걸이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종교권유를 하는 분들에게 굉장히 자주 잡히는 편입니다.
저 멀리서부터 ‘널 찍었어’ 하는 눈빛을 보내며 다가오면 여지없이 제 소매를 붙잡지요. 주위를 보면 그저 옆에 따라붙어서 말을 거는 정도인데, 저한테 유독 강한 제스쳐를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손을 잡기도 하고 어떤 분은 제가 외면하고 지나치려 하자 언성을 높이기도 하더군요.
많지 않은 에너지를 최대한 분노쪽으로는 쓰지말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긴 한데, 솔직히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단전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옵니다. 분명 겪어보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이런 이유로 저는 이 작품의 첫줄부터 그야말로 초몰입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은 인생에 다시없을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하필 사아비종교 권유인때문에 말이죠.
일자리를 구하는 데 실패하고 담배나 한 대 피우러 온 계단에서, 주인공은 우발적으로 자신에게 악다구니를 날리던 사아비 종교인을 공격하게 되는데, 그 이후로 주인공의 삶은 롤러코스터의 최고점에서 서서히 속도를 높여가며 하강하듯 바닥을 향해 질주합니다.
글의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젊은 주인공이 느끼는 좌절감과 박탈감입니다. 지금을 사는 대부분의 세대가 공감은 하지만 뭔가 행동으로 나서기는 힘든 사회적,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고시원으로 대표되는 공간적 배경또한 그렇습니다. 타인과 매우 밀착되어 있지만, 유대감따윈 존재하지 않지요.
자신보다 더 안좋은 상황에 처한 사람의 돈을 훔치고, 세상에 원망과 분노를 뿜어내기만 하는 주인공을 보면서도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한 것은 아마 공감하기 떄문일 겁니다.
살인미수에 가까운 범죄를 저지르고 난 후, 주인공은 실제인지 환각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경험들을 하면서 혼란에 빠집니다. 결국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만신의 추종자들에게서 이야기는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은 것으로 마무리가 되지만, 현실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맞닥뜨려야 할 ‘만신’들이 얼마나 더 많을지를 생각해보면 역시 세상이 소설보다 더 무서운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글에서 한번도 ‘팍팍한 젊은이들의 삶’ 을 일부러 묘사하거나 강조하지 않으셨지만, 작품을 다 읽고 난 후 가슴속에 깊이 남는 건 굳이 만신이 없었어도 점점 나락으로 빠져들어갔을 한 젊은이의 무거운 삶이었습니다.
야생의 초원에서 가장 생존이 어려운 건 종족을 불문하고 새끼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사자나 표범이라 해도 새끼들은 항상 여러 포식자들의 일차적인 표적이 되고, 생존률 또한 높지 않지요.
사람 또한 그런 걸까요? 그래도 우리는 본능에 의존하는 동물들과는 분명 다를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요즘 많이 흔들립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초원의 야생동물들처럼 보호자가 잠시만 방심하면 목덜미를 물어뜯기는 상황에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는 그렇게 자라지 않았으면서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야.’ 라는 궤변으로 아이들을 자꾸 바닥에서 바닥으로 밀어넣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작품은 글의 퀄리티와 재미요소도 훌륭하지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도 묵직한 고민거리를 얹어주시는 작가님의 메시지 전달력이 기억에 남는 멋진 글입니다.
2019년의 마지막 날을 이런 좋은 작품과 함께 해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