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예감하고도 달려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욕망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누마의 여름 (작가: honora, 작품정보)
리뷰어: 이브나, 19년 12월, 조회 101

1. 제목의 의미

누마의 여름이라는 제목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죠. 주인공인 누마의 꿈에 나오는 배경이 여름이라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을 불태울 듯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절- 바로 누마가 여해와 사랑하는 시절이라는 것. 여름의 햇살은 찬란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 뜨거워 작물들이 모두 타버리는 혹독한 여름이 되는 걸까요…

 

2. 비극, 타락, 파멸로 달려가는 두 사람, 그리고 다가올 가을과 겨울.

작중에서는 구체적으로 서술하지는 않지만, 누마가 여해와의 사랑에 빠져 타락하고, 신의 뜻마저도 왜곡하여 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하죠. 누마는 눈이 가려진 말처럼 달려가 절벽에 도달하고 말 자신의 미래를 예감하고 있을 거에요. 겨울을 갓 지난 새봄처럼 평온하고 잔잔했던 누마의 신녀 시절, 그리고 여해를 만나고 맞이해버린 여름.

다가올 가을과 겨울은 혹독할까요. 너무 혹독하지 않으면 좋겠는데요… 그러면서도 파멸할 거면 제대로 파멸하기를 모순적인 마음으로 기대하게 되네요.

 

3. 신이 준 꿈과, 인간인 누마의 운명에 대하여

누마는 여해에 대한 꿈을 꾸고부터 여해를 의식하고, 그 뒤로 여해와 얽히기 시작하죠. 사건도, 감정도. 그러나 이 둘이 꿈이라는 계기가 없다고 연이 닿지 않았을까요? 꿈을 꾸지 않았어도, 이 둘은 언젠간 마주치고 서로에게 이끌리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굳이 꿈을 통해서 여해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와의 연을 더 빨리 맺어준 신은 좀 심술궂다는 생각도 들어요.

누마가 암시된 타락을 하게 되는 원인, 어쩌면 신의 뜻을 왜곡하기도 하는 원인은 어쨌든 신이 보여준 꿈이 계기인 거죠. 사실은 “왜” 하필 신녀로 누마를 택했는지는 모를 신의 선택으로 인해 상승하고, 신에 대한 맹종과 순종을 포기하고 인간을 택함으로써 하강하게 되는 “신녀” 누마.

하지만 누마는 미래가 예견된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멈출 수도, 멈출 생각도 없다는 점이 참으로 인간적이고, 비극적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이해가 된다는 점까지도 말이에요. 그리스 비극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인간의 욕망이란 뭘까요…? 지성을 가졌어도 여전히 생물인 인간이 스스로 평온을 버리고, 파멸을 택하게 만드는 감정이라니. 하지만 누마는 여해로 인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끼겠죠… 사실은 단지 파멸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욕망을 억누르고 정해진 길만 가는 건 너무 비인간적인 생이니까요. 누마는 누구보다도 인간적으로 살다 간 신녀가 되겠네요.

이 작품이 좀 더 길어서 그 모든 불꽃같은 여름과 타락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과, 누마의 미래를 암시하는 방식의 깔끔함이 마음에 든다는 생각이 충돌합니다. 하지만 역시, 작가님 부디 다음 편을…이라고 요청하고 싶어요.

 

4. 공들인 세계관(어휘, 용어 등)

창작 (동양) 판타지 세계를 좋아하기 때문에, 국통이라거나 총사, 건모라, 화주 등의 용어라거나 그 단어들이 내포하고 있는 설정들이 참 좋았습니다. 역시 이렇게 공들인 세계가 중편 하나로 닫히는 건 너무 아깝고… 역시 장편화하거나, 시리즈로 활용하는 게 이 세계관 설정에 대한 예우가 아닐지…

 

5. 동양풍 소설의 예스러운 말투, 그리고 현대어.

사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잘 몰입하다가 중간 중간 몰입이 깨지고 자신을 다시 몰입시켜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건 현대풍 욕설들이 튀어나올 때였습니다(…) 분위기는 참 예스럽고 사용하는 어휘와 세계 분위기조차 동양 고전풍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딱 맞는데, 주인공인 누마가 쓰는 어휘는 때로 현대인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처음에는 고귀한 위치의 여성인물이 욕을 해서 낯선가…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 치고는 그럴만한 여성인물이 욕을 하면 또 납득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역시 전반적인 글의 분위기나 등장인물들이 평소 사용하는 어휘가 고전적이기 때문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런 분위기의 작품이라면 등장인물이 욕을 해도 흐름에 맞게, 고풍스럽게 하기를 기대하게 되니까요… 분위기를 보니 작중 배경이 아주 옛날은 아닌 거 같지만, 동양풍은 참 다루기 어렵네요… 역시 만능치트키 현대인 여주 빙의는 그래서 쓰는 걸까요?

 

아무튼 무척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둘의 연애 감정선도 납득가고, 짧은 행복을 쥐기 위해 비극적인 미래를 예견하면서도 달려가는 인간상이 무척 흥미롭고 좋았어요. 인간은 단순히 현명하지 못해서, 평소 이성적이지 못하고 비도덕적이기 때문에 사랑으로 인해 일을 망치는 게 아니라- 단순히 그 열정 자체가 사람을 과거와 다르게 변화시킬 수도 있는 거죠. 혹은, 평소 온유하고 도덕적이던 개인이 사랑으로 인해 다른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는 것일 수도 있구요.

이 글을 리뷰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가볍게 감상문을 쓰자는 생각으로 써서 올려 봅니다. 언제나 호노라 님의 창작 세계관의 멋진 판타지물(동양풍이건 서양풍이건요!) 재미있고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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