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아포칼립스!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북조선좀비공화국 (작가: 리사 심슨, 작품정보)
리뷰어: 탁문배, 19년 12월, 조회 111

좀비는 호러작가들을 위한 공공의 자산으로서 이제는 제조업계의 석유에 가까운 지위를 차지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좀비 호러는 당연지사고 좀비 서스펜스, 좀비 코미디, 좀비 로맨스까지 튀어나오는 와중에 다른 장르와의 콜라보레이션도 많이 이뤄졌지요.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이건 대체 뭐냐 싶었던 것이 나치 좀비물이었는데, 어떤 분석에 따르면 아무리 씹뜯맛즐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어려운 집단인 나치에 어차피 시체이므로 마찬가지로 무슨 방법으로 도륙하든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좀비를 비벼서 편안한 마음으로 폭력의 카타르시스를 즐길 수 있는 스까듭밥 같은 소재가 나치 좀비라더군요. 덤으로 하도 지랄염병을 많이 해놔서 뭔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집단인 나치라면 좀비 바이러스 정도는 만들지 않았겠느냐는 묘한 신빙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21세기에도 서울에서 200Km만 올라가면 비슷한 집단이 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가 중공군처럼 몰려올 예정입니다. 어림도 없다, !

 


 

세부적인 면은 뒤에 이야기하고, 먼저 작품의 소재 선정이 아주 좋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견문이 짧아 북한과 좀비를 엮은 다른 작품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든 자원이 부족한 폐쇄국가에서 판데믹이 발발하고, 이를 다양한 계층의 인민들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겪어내는 내용이 아주 신선했습니다.

또한 주인공으로서 미국인이면서 한국인이기도 한 사람을 배치시키고, 구호단체의 일원으로 이야기에 끼워 넣는 방식도 흥미로웠습니다. 여기서 주인공 제임스는 이방인이기도 하고 또한 아니기도 한 셈이지요. 또한 재포 할아버지나 김성의 에피소드 등, 각 인물들의 과거가 적절한 부분에서 제시되어 단순한 조력자나 악역이 아닌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진 점도 좋았습니다. 비록 사망플래그는 피하지 못했지만요.

보통 좀비 사태가 발발할 경우,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같은 생존자 무리의 누군가가 되기 쉽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사실 본격적으로 좀비가 나타나기 전부터 이런 역할을 맡는 악역이 있는데, 바로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 그 자체입니다. 좀비고 뭐고 지진이 나서 뭐라도 어떻게 해야 할 상황이지만 조선로동당은 그 와중에 응급구호에 계층을 우선하고, 구호물자를 착복하는 등 매우 북한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이 좀비 사태의 현실과 마주하는 계기도 이런 무능하고 부패한 체제를 뛰어넘어 제대로 된 구호활동을 펼치기 위함이었지요. 사실상 좀비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부터 아포칼립스 상태가 펼쳐져 있었던 셈입니다.

매우 개인적인 희망으로는 이런 막장상황에 이골이 난 북한 주민들이 뭔가 평범한 좀비물에서는 보여주기 어려운 신묘한 생존방식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본 작품에서 좀비의 스펙이 너무 뛰어나다 보니 별로 그럴 기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주인공의 고난은 미국인들이 어떻게든 해결하고, 마지막엔 제법 시니컬한 결말을 맞습니다.

좋은 소재에도 불구하고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하자면, 가장 큰 부분으로 능청스러움이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북한에 대해 평소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알기 어려운 소재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꽃제비들의 행태나 출신성분에 따른 차별 등등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자세히 표현하기 애매한 부분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묘사를 아끼다 보니 북한이라는 멀고도 가까운 장소라는 매력이 충분히 살지 못했다고 느껴집니다. 이를테면 주인공은 국제병원, 경혜네 집, 비밀실험실 등등 여러 장소를 이동하는데, 이곳이 북한의 어디쯤인지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대화속에 나타나는 장마당이나 항구의 구체적인 규모나 모습이 와닿기 어렵습니다. 또한 이야기의 규모에 비해 등장인물들도 필요한 최소한도로 절제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김성 동무의 경우 국제 구호단체와 직접 접촉이 허가되고 구호품 밀반출이라는 중책을 맡을 정도면 제법 조직 내의 상위에 위치해야 할 것 같지만 취급되는 모습은 잘 봐줘야 대대장 정도입니다.

구체적으로 묘사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하다거나 쓸데없이 전개가 늘어질 가능성이 있으면 애매한 부분은 그냥 넘어가는 것이 나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이 제시된 상황에서는 이후의 탈출극 등을 고려할 때 도시명은 가공의 것을 쓰더라도 최소한 이곳이 서해안인지 동해안인지, 국경인 두만강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는 제시되는 편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야기에서 김성이라는 인물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물론 그의 과거에 대한 에피소드가 제시되기는 하였으나 그의 보위부 조직 내 입지나 그가 집에서 비밀통화를 한 인물 등에 관한 내용이 생략된 점이 아쉬웠습니다.

반면 묘사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가장 미묘한 부분이 북한 정권에 대한 것입니다. 일단 이 양반들은 감시와 통제 능력이 좀 오락가락하는데, 구호단체 인원에 대한 통제가 안 되는 것은 물론 비밀연구소에서 대놓고 도망간 트럭 하나 잡아오지 못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입니다. 쫓아갈 차가 없는 것도 아니건만. 그리고 자기들도 통제를 못해서 민간에 마구 퍼져나가고 있는 바이러스를 생물학 무기로 사용하겠다는 패기를 보이는데,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작중에서 좀 더 설명이 되었어야 할 부분이었다고 봅니다. 그건 그렇고 미국 본토에 미사일을 날리다니, 평양은 더 이상 좀비 문제로 고민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 외에 이 작품이 딱히 밀리터리 소설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디테일이 꼭 필요한지는 생각해 볼 문제지만, 그래도 읽는 동안 심히 마음에 걸렸던 것 두 가지만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1. 허리춤에서 꺼내는 총은 소총이 아니라 권총일 것입니다.
  2. 제가 적지에서 특수작전중이라면 본명으로 무전을 하진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북한 정권이 상당히 야만적이고 사악하게 묘사되는 부분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을 가질 독자들도 일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런 취급을 받는 게 억울하다면 로켓맨께서는 먼저 국가 경영을 좀 대국적으로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니꼬우면 개방을 하든가.

정리하자면 세부묘사에서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흥미로운 소재와 속도감 있는 전개가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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