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드리민입니다. 이번에 브릿G 정기 리뷰단 30기에 발탁이 되었습니다. 리뷰단에 신청한 시점부터 어떤 리뷰를 쓰면 좋을지 여러 고민 끝에, 큐레이션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큐레이션은 리뷰단 활동에 포함되지 않지만, 큐레이션도 더욱 많은 사람이 읽고 썼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시작된 제 큐레이션 시리즈, <드픽 검색어 큐레이션>입니다. 브릿G의 검색 기능을 통해 ‘작품 이름, 태그, 작품 설명’에 특정한 키워드가 들어간 작품들을 소개할 것입니다. 하나의 키워드에도 여러 관점이 얽힐 수 있고, 또 같은 관점이더라도 장르나 문체에 따라 표현되는 바가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큐레이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품 선정은 가능한 최근에 작성된 중단편 및 엽편, 현재 연재 중인 작품들을 중심으로 할 것이며, 가능한 다양한 관점으로, 양적으로 고르게 보여드릴 수 있도록 신경 쓸 예정입니다.
필요하다면 제 작품을 살짝 끼워 넣을 수도 있겠네요.
그럼, 격주로 올라올 저의 <드픽 검색어 큐레이션>을 잘 부탁드립니다.
영혼이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영혼(靈魂)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죽은 사람의 넋
2.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
3. 『가톨릭』 신령하여 불사불멸하는 정신.
4. 『불교』 육체 밖에 따로 있다고 생각되는 정신적 실체.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어대사전
이 중에서 여러분이 주로 사용하는 영혼의 뜻은 어느 쪽인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2의 의미를 주로 사용하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1과 3의 의미가 그다음으로 비슷한 비중을 갖는 것 같습니다. 사실 3은 일반적으로 ‘신’에 대한 뜻으로 더 많이 쓰지만요. 4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해 본 적이 없군요. 지난달에 있었던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 갔다 왔다면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으려나요?
이번 <드픽 검색어 큐레이션: 영혼>에서는 제가 약 2주 동안 ‘영혼’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여 읽은 중단편 소설 7편과 연재 소설 1편을 큐레이션해보려고 합니다. 위의 네 가지 사전적 의미를 참고하여, 나름대로 작품마다 “영혼은 ○○다.”라는 형식으로도 적어 볼게요. 이러한 해석은 순전히 제 개인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해당 작품들의 작가님들이나 다른 독자님들의 생각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점 먼저 명시하도록 하겠습니다.
1. “영혼은 추억이다.” <저승길을 걷는> by @author:1713 작가님
저승사자들은 죽은 영혼의 인도를 쉽게 하기 위해서 영혼이 가장 좋아하는 모습으로 보여지게 되어 있거든요.
영혼은 기본적으로 죽은 자들의 넋으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적 의미에서도 당당히 첫 번째로 적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혼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혼은 말 그대로 ‘영’과 ‘혼’, 혹은 ‘혼’과 ‘백’으로 나뉩니다. ‘영’이 신령스러운 것이자 하늘에서 온 것이고, ‘백’이 지상에서 오는 것이라면, ‘혼’은 떠도는 것입니다. 살면서 느끼고 행동하고 기억하는 모든 것의 주체는 혼입니다. 그리고 곧 윤회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저승사자들은 죽은 이들의 넋, 곧 혼을 거두어 인도하고 다음 윤회로 인도합니다. 1713 작가님의 <저승길을 걷는>은 저승사자들이 거두어야 할 혼의 기억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라는 밈에 대입을 하자면, 저승사자들은 그 혼이 오랫동안 기억하던 반려동물의 모습으로 마중 나와 이를 거둬간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런 관점에서 <저승길을 걷는>의 결말은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기억하고 추억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내놓고 있습니다. 건강한 자기애와 자아 존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성찰하게 됩니다.
2. “영혼은 외부에서 인식된 기억이다.” <영혼 증명> by @author:목단우 작가님
얼마 전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는 기계가 발명되었다.
목단우 작가님의 <영혼 증명>과 작품에 붙은 단문응원들은 영혼을 기억으로 보는 관점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이, 이는 자아상과 자아 인식에 대한 부분과도 맞닿아있습니다. 자아는 ‘나’도 아니고, ‘타인이 보는 나’도 아니며, ‘타인이 보는 나에 대한 내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외부의 인식이 필수 불가결이며, 이를 유지하기 위한 기억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남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것은 영혼의 실체가 어쩌면 우리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합니다. 영혼의 사전적 정의 중에서 첫 번째 정의, 두 번째 정의 그리고 네 번째 정의를 동시에 관통하는 셈이지요.
3. “영혼은 이합집산한다.” <방문자> by 이요람 작가님
영혼이 원소에 붙는다면.
흡사 이영도 작가님의 새 시리즈에 나오는 군령자, 혹은 다수의 사람에 빙의된 누군가를 다루는 것 같은 이요람 작가님의 <방문자>는 영혼원자론이라는 표현을 통해 영혼의 성질을 다룹니다.
영혼은 죽음 이후에 영, 혼, 백이 서로 흩어집니다. 혼은 윤회하고 영과 백은 새로이 혼에 붙습니다. 영혼원자론은 이렇게 분해되고 결합하기를 반복하는 영혼의 성질을 단적으로 나타냅니다. 그러나 작품은 이것을 단순한 윤회가 아닌 산 사람에게 죽은 자의 영혼, 혹은 기억과 행동 패턴이 들러붙은 형태로 보여줍니다. 더불어 방문자, 까치를 불길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주인공은 이러한 형태의 이합집산이 긍정적인 것이 아님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서 주인공 ‘우상미’는 끝내 그러한 이합집산에 속하게 됩니다. 그건 일종의 구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내 안에 내가 없다고 생각했던 우상미는 나를 아는 자들의 영혼으로 채워짐으로써 동면이 아닌 수면을 취하게 되었으니까요.
4. “영혼은 뒤틀린 기억이다.” <적월: 일곱번째 달> by @author:짜리몽땅연필 작가님
야심한 밤, 달의 영혼을 부르는 강령술.
하지만 기억이라는 것이 꼭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짜리몽땅연필 작가님의 <적월: 일곱번째 달>은 이를 분명히 합니다.
혼에 부정한 감정과 탁기가 쌓이면 원혼이 됩니다. 혹은 다른 악령의 먹잇감이 된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부정적인 기억과 그에 대한 집착은 스스로를 저주하는 행위입니다. 끝내 이는 자신을 파멸시키고, 주변 사람들마저도 파멸시키지요. 이를 끊어낸 결과물이 ‘모두에게서 잊힌다’는 점은 넋이란 곧 기억이며, 진정한 죽음은 모두에게서 잊히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야기의 구성은 미스터리하고 그 분위기를 제대로 구성하고 있지만, 등장인물의 이름이 지나치게 해설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직접적이라고 하기에는 작가의 말을 들어야만 이해가 된다는 점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되고요. 차라리 흔한 이름을 사용하여 일상적인 기억이 뒤틀려가며 자신과 주변을 파멸로 유혹하는 걸 표현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5. “영혼은 원한이다.” <우릴 잊은 너희에게> by @author:파란바람 작가님
이렇게 곪아버린 세상에 영웅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치유와 보상, 합당한 죗값, 지연된 정의로나마 사람들의 천불 나는 속을 달래주고, 떠도는 영혼에 위안을 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 필요하죠.
<적월: 일곱번째 달>에 이어 이야기하자면, 죽은 사람의 넋이 지상에 남아있는 건 대체로 좋은 일이 아닙니다. 혼과 백은 죽음을 통해 흩어지고 다시 뭉쳐서 태어나길 반복해야 하는데, 이를 거부하고 지상에 남아있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강한 사념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념이란 대체로 원한이지요.
파란바람 작가님의 <우릴 잊은 너희에게>는 이렇게 차마 떠나지 못할 정도로 원한이 깊은 영혼들을 대신해서 가해자들에게 대신 벌을 내려줍니다. 지상의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지상의 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원한을 위해서 말이지요. 물론 여기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영혼의 진실함이 필요하지만요.
초반부터 등장인물이 다소 많은 느낌이지만, 각각의 능력과 맡은 바가 다르기 때문에 크게 헷갈리지 않습니다. 달리 생각해 보면, 하나의 원한을 달래기 위해서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많은 사람이 붙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에 온 마을이 필요하다지요. 그 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사각에 놓인 아이들이 많은 시대입니다. 태어난 아이들도 그러한데,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원한들이 방치되고 있을까요. 씁쓸한 현실입니다.
6. “영혼은 사람이 부여하는 것이다.” <선풍기 키우기> by @author:김성호 작가님
‘재우’의 영혼은 전기에서 나온다.
육체라는 것이 꼭 인간, 혹은 생명체에 국한될 필요는 없죠. 게다가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장치도, 사람이 그것에 마음을 들인다면 곧 영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작품 내에서도 꾸준히 거론되는 ‘도깨비’가 기본적으로 오랫동안 사람이 아낀 물건에 영혼이 생겨 만들어지는 존재임을 생각하면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이 작품에서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나’가 짝사랑한 재우의 자리를, 재우가 판매한 인공지능 선풍기인 ‘재우’가 대체합니다. 작품 내에서 거론되듯 동성을 사랑하는 것이든 선풍기를 사랑하는 것이나 세간의 시선에서는 이상한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의 사랑은 점차 마음을 들킬까 노심초사해야 하는 재우가 아니라, 집에서 자신에게 바람을 쐬어주는 ‘재우’에게로 쏠립니다.
결말부의 사건은 필연적인, ‘나’가 ‘재우’에게 부여했던 영혼이 부정당한 결과입니다. 재우와 ‘재우’ 둘 다 잃은 ‘나’는 더위에 시달립니다. 누구도 그 더위를 식혀주지 못합니다. 이는 ‘재우’의 영혼이 부정당하면서 ‘나’의 영혼 역시 부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산산이 부서진 영혼의 더위를 달랠 시원함, 혹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구원은 요원해 보입니다.
7. “영혼은 착취의 대상이다.” <가난한 나라의 전기영혼 자전거> by @author:박길형제KJTJ 작가님
“여러분! 이것은 ‘전기영혼 자전거’랍니다. 페달만 밟으면 전기도 나오고, 음식도 하고, 따뜻한 집도 가질 수 있지요. 원하는 사람 있습니까?”
<가난한 나라의 전기영혼 자전거>는 위의 <선풍기 키우기>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다루는 우화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전기를 소모하는 선풍기에게 사람이 영혼을 주는 이야기가 아닌, 전기를 생산하는 자전거로 사람의 영혼을 착취하는 이야기지요.
‘전기영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제시되지는 않지만, 이야기 전체 흐름에서 우리는 이것이 ‘전기를 생산하는 영혼’, 즉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 사람들 그 자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의 노동력, 목숨, 그리고 영혼까지도 돈으로 치환됩니다. 마음의 작용을 일으키고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영혼이라면, 자본주의 사회는 영혼을 착취해 마음을 지우고 생명을 앗아감으로써 영속되는 시스템입니다.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은 유르겐의 자전거를 빼앗아 오면 ‘신형 전기영혼 자전거’를 주겠다는 리타의 꼬드김에 사람들이 앞다투어 달려 나가는 대목이겠지요. 우리는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영혼과 마음을 잃은 대가로 돈을 받는 게 아닐까 하는 씁쓸한 이야기였습니다.
8. “영혼은 만인평등, 천부인권이다.” <영혼에 세금을 매기는 법, 그리고…> by @author:라쿤_덱스터 작가님
왕후장상이든 노예든 영혼은 1명에 1명.
착취당하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제 혁명하는 이야기가 나와야 우주의 균형이 맞겠지요.
그 출신이 얼마나 귀중하고 비천한가와 상관없이 모든 생명은 단 하나의 영혼을 갖습니다. 이는 그 영혼과 함께 부여된 생명의 길이와도 무관한 절대적인 명제입니다. 이 명제 아래에서 만인은 평등합니다. ‘짐이 곧 국가다’로 표방되는 전제왕정을 무너뜨린, 바로 그 논리인 ‘천부인권’이 여기서 등장합니다.
영혼에 세금을 매기고, 죽음의 신에게서 생명을 받아내 영생을 누릴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이는 결국 허황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왕국의 멸망이었죠.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을지언정, 그것들도 결국 하찮은 영혼 하나일 뿐. ‘영혼은 1명에 1명’이라는 죽음의 신이 내린 선언과 사과는 착취당한 영혼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봄을 가져오겠지요.
지금까지 총 여덟 편의 ‘영혼’을 다룬 이야기를 통해 그에 대한 인식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서로 비슷한듯하면서도 관점의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도 있고, 어떤 거대한 흐름 안에서 이어지는 듯한 부분도 있네요. 앞으로도 이렇게 하나의 키워드에서 다양한 관점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