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도 너무 어두운 다크 판타지 비평

대상작품: 사슬 위를 걷는 자들 (작가: 단추,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1시간 전, 조회 17

* 3-3부까지 읽은 시점에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줄거리]

평범한 농가의 여인 래헨에게는 사랑하는 아들 사미엔이 있었다. 아이가 실종된 지 엿새째 되던 날, 남편 데어무트는 검을 들고 뛰쳐나갔고,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무사히 돌아온 아들뿐이었다. “겉모습”만은.

돌아온 사미엔은 텅 빈 눈으로 어머니에게 “기분이 어때요?”라고 묻더니, 아버지의 잘린 머리를 던지며 “복수란 무엇인지 알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마왕을 무찌른 ‘용사’ 데어무트의 아내였던 래헨은, 죽은 마왕의 영혼이 아들의 몸에 깃들어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과 함께 홀로 살아남는다.

1년 후, 래헨은 더 이상 예전의 농가 여인이 아니다. 마수 사냥꾼 레오기스에게 거둬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원류’ 다루는 법—화현(花現)—을 배우고, 자기 몸에 흐르는 인간과 마수의 원류를 함께 써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 몰살당한 마을에서 세 개의 얼굴을 가진 ‘이름 있는’ 마수 드레이콥과 사투를 벌이며, 그녀는 아들이었던 ‘그것’이 남긴 잔향을 쫓아 남쪽으로 향한다.

그 여정의 어딘가에서, 인간이길 원하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 노이만—세상 무엇이든 이뤄줄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매번 사람들에게 버림받아 온 만능자—과 마주치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축을 얻는다.

 

[용사의 승리, 그 이후의 이야기]

“용사는 마왕을 물리쳤다.”

판타지 장르에서 이 문장은 곧 ‘해피엔딩’을 의미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 승리 이후를 말한다. 용사 데어무트의 아들 ‘사미엔’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아이는 무사해 보이지만 눈빛은 텅 비어 있고, 손에는 방금까지 아버지였던 것의 머리가 들려 있다. 마왕의 영혼이 아들의 몸에 남아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아이의 얼굴을 한 존재는 어머니 래헨에게 낯설도록 다정한 말투로 “복수란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 말하고는 그대로 사라진다.

이야기는 이 참극 이후, 마수도 사람도 아닌 정체불명의 존재 ‘이름 없는 남자(노이만)’가 피투성이로 마수와 싸우던 래헨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시점으로 넘어간다. 세상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정작 ‘평범한 관계’만은 가질 수 없었던 노이만과, 아들이자 원수인 무언가를 쫓는 래헨의 여정이 이렇게 얽히기 시작한다.

 

[충격적인 프롤로그]

가장 강렬한 장면은 단연 프롤로그다. 래헨이 눈을 뜨는 순간부터 시작해, 그녀가 코끝에 스치는 냄새를 ‘비’라고 믿다가 서서히 그것이 피라는 것을 깨닫는 흐름은 독자를 그녀와 정확히 같은 속도로 공포에 잠식시킨다. 이 소설의 장르가 실은 호러가 아닌가 싶어지는 지점이다. 래헨이 돌아온 아들의 얼굴만을 필사적으로 바라보며 “시선을 돌려선 안 돼”라고 되뇌는 동안, 독자는 이미 그녀가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지 짐작하게 된다.

무엇보다 소름 끼치는 것은 사미엔’이었던 것’의 태도다. 아이가 텅 빈 눈동자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정신에 새겨지는 고통은 얼마나 오래가는지 궁금하다”고 묻는 그 다정한 말투는, 순수해야 할 존재가 완전히 낯선 무언가로 뒤바뀌었다는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어 “그래서 엄마가 내게 복수하길 바라”라는 말과 함께 손에 든 것을 보여주는 순간—그리고 그것이 남편의 얼굴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찰나—은 이 소설이 앞으로 어떤 온도로 흘러갈지를 단 한 장면으로 각인시킨다.

1-1화의 드레이콥 전투 역시 만만치 않다. 세 개의 머리 중 하나가 사미엔의 목소리로 “가르쳐줘, 복수란 무엇인지”를 되풀이할 때, 래헨이 감정보다 먼저 검을 움직이는 대목은 이 주인공이 어떤 방식으로 버텨 나가는 사람인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아쉬운 시간선 교차와 넘치는 정보]

다만 1-1화로 넘어가면서 걸리는 지점이 있다. 프롤로그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레오기스’라는 이름이, 마치 독자도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툭 던져진다. “레오기스는 그것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레오기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는 식으로 그의 가르침이 계속 인용되지만, 이 인물이 스승인지 동료인지, 심지어 실존 인물인지조차 이 시점의 독자는 확신할 수 없다.

이 정보는 결국 1-2화 중반, 마을이 몰살당한 후 피난민 행렬에서 만난 마수 사냥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정리된다. “저주를 하거나, 죽여 달라고 기도하거나”라는 건조한 첫마디로 각인되는 인물이라는 것도 그제서야 드러난다. 1-2화를 읽고 1-1화를 되짚어보면 조각이 맞아떨어지지만, 최초 독자 경험으로서는 순서가 뒤바뀐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설명 없이 사건 한복판에 독자를 던져놓고 “대체 이 여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라는 궁금증으로 다음 화를 끌고 가는 것은 나름의 계산된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이 ‘설레는 미스터리’보다는 ‘설명 부족에서 오는 혼란’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레오기스라는 이름 앞에 “한때 스승이었던 사냥꾼의 목소리” 정도의 짧은 암시 한 줄만 있었어도 균형이 훨씬 나았을 것 같다. 아니면 어차피 1-1과 1-2 두 회차밖에 없는 1부에서 래헨과 ‘원류’, ‘화현(花現)’, ‘이름 있는 것(=네임드 몹)’ 등의 설정을 설명하고자 함이었다면 그냥 순차 설명을 해도 되지 않았을까 한다.

또한 뒤에서 콰무스, 라스문드, 교단, 카펠, 그리고 소년 사미엔과 동행하는 노인까지—군상극 구조 자체는 매력적이지만, 아직 분량이 많지 않은 시점에 생소한 이름과 지역명, 사건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탓에 ‘이건 또 누구지’ 하고 이해하며 읽어야 해서 숨이 차는 편이다. 한마디로, ‘텔링’이 좀 더 필요하다.

 

[세계관의 실마리]

“왕을 도와주는 인간들이 있다. 왕을 쫓으면 반드시 인간들과 싸우게 돼.”

“왕이 왜 인간 껍데기를 뒤집어썼을까.”

구흐메트(네임드 마수)의 이 말들에서, 마왕이 하필 ‘사미엔’이라는 인간의 형상을 필요로 하는 데에는 따로 이유가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이 복선이 앞으로 어떻게 풀릴지가 이 작품을 계속 읽게 만드는 큰 동력이다.

전체적으로는 전지적 시점이며 래헨의 입장에서 묘사되지만, “2-3 완전한 평화”, “2-6 행복한 우리 집”에서는 돌연 시점이 ‘사미엔’ 쪽으로 넘어간다. 아이에게 “빙의”된 마왕의 내면이 어떻게 그려질지, 그리고 대체 무슨 속셈인지가 기대되는 구성이다.

 

 

초반부터 명확한 설명과 친절한 세계관 안내를 원하는 독자라면 1부에서 다소 혼란이나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프롤로그 하나만으로 다크판타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새로 가질 만큼의 임팩트는 확실하다.

정석적인 판타지의 ‘해피엔딩 이후’를 정면으로 파고드는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 다소 불친절한 정보 배치를 감수하고서라도, 촘촘한 떡밥과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 정통 판타지적 군상극과 피튀기는 전투신을 좋아하는 사람, 연약해 보이고 지극히 평범했으나 점차 강해질 수 밖에 없는 여성 영웅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접해볼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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