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트 챌린지]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이달의큐레이션

대상작품: <기계 인간의 삶> 외 3개 작품
큐레이터: 구주, 2월 21일, 조회 69

무언가를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자신감은 작중 인간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감정 아닐까요?

이번에는 자신의 근원에 닿아 있는 자신감들을 모아보았습니다.

 

주의

1. 작가님들의 집필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2. 작품 순서는 ‘편집부 추천 셀렉션’ 을 따릅니다.

3. 숏코드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 챌린지 규칙은 자유게시판의 ‘소트 챌린지 개최 안내’ 글 을 참고해주세요.

 


 


‘기계인간의 삶’ 과 존재하지 않는 나

사람들의 일상을 책임지던 전자 기기들이 그래왔듯이 ‘사람을 위해’ ‘한순간 의미있게’ 존재하면 그만이다.

저는 인간과 유사한 비인간에 대해 종종 생각합니다. 사람을 위한 건 뭔가요, 의미 있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한순간 의미 있게’ 존재하는 건 또 뭔가요. 왜 그렇게 존재해야 할까요. 그게 의의인 것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작품 속 인물은 계속해서 고민합니다.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로봇을 사람처럼 만드는 건 무슨 효율이 있을까?’

큐레이션의 주제를 자신의 근원으로 잡았지요. 근본과 중심이 없는 게 이 인물의 ‘자신’입니다. 당연히 자신감도 없습니다. 자신이라는 게 확립되지 않았는데 무엇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작품에서는 자신감을 가지는 가장 쉬운 방법을 안내합니다.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그게 과연 어떻게 작용할까요. 그게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자기’를 어떻게 굳히게 될까요? 그렇게 만든 자신은 과연 믿어도 되는 존재일까요?

이 답을 작품에서 찾아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흥미로운 글 즐겁게 읽었습니다.

 


‘도약’ 에서의 타인과 함께하는 나

나를 믿어요. 지우를 믿는 나를 믿어요.

연습이 결과를 보장하지 않고, 자신감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데 우리는 왜 자신감을 가져야 할까요? 주인공은 쫓기고 있습니다. 외부의 시선에 자신의 의심까지. 모든 시선이 떨어질 줄 모르고 집요하게 따라붙습니다. 이때 무엇을 믿는 것이 좋을까요. 나? 나라면 나의 기술인가요? 나의 노력인가요? 나의 성과를 믿어야 하나요?

나의 기준과 토대가 흔들릴 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자신감 가지고 자신을 믿어요’라는 문장으로 작품이 끝날 때, 우리는 지우가 무엇을 믿기로 선택했는지 알게 됩니다. 도약을 위해 무엇을 인정하고 믿어야 하는지 알게 되지요.

정석적인 자신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여운이 길죠. 작가님 작품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믿는 것이 곧 나를 설명한다면, 인간은 다른 사람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어 즐거우니 조금 과장을 해봅시다- 생명체가 될 것입니다. 소일장에 무척 잘 어울리는 글, 잘 읽었습니다.

 


‘바풍’ 과 평온을 원하는 나

바풍 안에 들어간 생명체들은 그 전보다 다들 편안해졌다고 했다.

사람과 죽음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죠. 모든 게 끝나버리면 편안해질지도 모릅니다. 어린아이의 눈에는 더더욱 그렇겠지요. 흔히 말하는 순수한 잔인함이 잘 그려진 작품입니다. 바풍을 만드는 자신이 편안하니 남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아이의 순수는 섬뜩하지만 부정할 수 없이 따뜻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왜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을지 생각해보면 저는 조금 슬퍼져요.

바풍을 만드는 아이의 자신감 (바풍을 잘 만들 수 있었던 동력)은 바로 아이의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들이 슬프고,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이요. 아이는 그런 감정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바풍들에는 어린 나이에 혼자, 외롭게 지내며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던 게 아닐까요?

그리고 큐레이션 주제와는 관계없는 내용인데, 바닥 풍선의 묘사가 생생해서 읽는 즐거움이 배가 됩니다. 저는 슬라임도 만져보지 않아서… 이 글에서 바풍을 처음 알게 됐는데 읽으면서 아! 이거! 하고 바로 이해했어요. 묘사가 정말 놀랍습니다.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라비타의 횡단’ 과 사회 속의 나

먹장은 하자가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그냥 당신들과 다를 뿐이에요.

내가 나를 믿는다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지요. 이 이야기에서 세상은 본디 새하얀 존재입니다. 그러나 먹장은 가만히 있어도 주변 공간을 물들이는 검은 존재죠. 우리 우주가 검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우주는 검은 것이 정상이지만, 이 세계에서 우주가 검은 건 정상이 아닌 상황입니다.

자신감은 내가 나를 믿는 힘, 다시 말해 신뢰에 국한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자신이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요. 나조차 믿지 못하는데 무엇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곳의 신들은 먹장의 검은 본질을 앗아가고 먹이 빠질 날을 기다립니다. 그것이 옳다는 이유만으로요.

무언가를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정말로, 신기한 일이 맞습니다. 사회와 세상에 완벽히 들어맞는 인간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데 그것을 감수하고 자신을 믿는 것이니까요. 이 작품에서는 그런 ‘사회 속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환상적이지만 날카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소소한 큐레이션을 마칩니다.

마음 같아선 다 올리고 싶었는데 그러면 큐레이션이 아니니까…

네 개에 맞춰보려고 겹치지 않는/다양한 해석을 골라봤습니다.

기회가 되면 다음 큐레이션도 한번 써보고 싶네요!

 

2월의 소일장에선 ‘자신’을 다양하게 해석하신 작가님들의 작품을 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챌린지를 열어주신 루주아 님과 소일장 주최해주신 Mik 님, 소일장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