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환상의 경계 감상

대상작품: 모놀로그 (작가: 적사각, 작품정보)
리뷰어: ilooli, 7월 23일, 조회 18

읽는 내내 신경 쓰였던 게, 주인공이자 연극배우인 진주를 비롯해 감독, 매니저, 메이크업 담당자 등,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며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데, 다른 이들의 대사는 모두 큰따옴표로 처리되어 있는데 오직 주인공인 진주의 대사만 큰따옴표가 빠져 있다는 점이었다.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며 읽다가, 이 소설의 제목이 “모놀로그”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모놀로그”는 우리나라 말로 “독백”이라는 뜻이다. 즉, 소설 속에서 주인공 진주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지만, 대사는 오로지 상대에게만 허락되고, 본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모두 독백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어쩌면 말이라는 형태로 입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관념 혹은 생각의 수준에 머무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기묘한 독백 처리로 인해, 주인공 진주가 디저트 가게에 들어선 순간부터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의 쇼킹함이 더 극대화되는 듯하다. 읽다가 매우 마음에 든 문장들이 있어서 잠시 인용해 본다.

딸기 간판에 몇 걸음을 앞두고 진주는 가던 길을 멈췄다. 점점 생생해지는 정경에 어지러웠다. 에이미에게 부여한 세계가 진주가 딛고 선 세계로 침범했다. 보도블록 위에 계절에 맞지 않은 낙엽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땅에 단단히 고정했다. 진주는 정신을 차리려 여러 번 눈을 꿈뻑였다. 싱싱한 딸기가 인쇄된 간판은 그림으로 바뀌었다 사진으로 바뀌었다 반복했다. 어느 세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렸다.

다시 읽어도 너무너무 매력적인 문장들이다. 예전에 보았던 “오픈유어아이즈”, “바닐라 스카이” 같은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나 혼란 같은 것은 영상매체 쪽이 표현하기에 더 유리한 것 같은데, 활자로도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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