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 입니다.”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사려고 집어 들었던 것은 그저 값싼 플라스틱 목걸이였다. 카운터로 그 반지를 들고 갔을 때 까지만 해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기념품 가게에 왔으니, 뭐라도 싼 걸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 이었을 뿐.
그러나 주인의 이 한마디가-이 가게와 이 목걸이를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단순 우연이었다. 난 원래 여행을 와서 기념품 같은 걸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야 하는 바로 그 날,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이 가게를 발견했다. 금이 간 돌로 지어진 건물 간판에는 특이하게도 기념’풍’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기념풍?’ 나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간판이 웃겨서 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기념품 가게로 들어갔다.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리고 ‘어서 오세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들려야 했다.
이 가게는 그런 게 없었다. 문에 달린 종도, ‘어서오세요’ 도.
그저 나를 향해 활짝 웃고 있는 가게 주인만이 있었다.
가게 주인은 40대 남성으로 보였다. 수염은 깔끔하게 면도를 했지만, 얼굴의 주름은 나이를 감출 수 없었다.
그러니까, 40대 아저씨가, 나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솔직히, 좀 무서웠다.
“아, 안녕하세요.” 나는 간신히 말했다.
“안녕하세요.” 굵지만 명랑한…목소리로 주인이 대답했다.
더욱 분위기가 무서워졌다. 저 아저씨는 대체 누구지?
‘빨리 나가자.’ 나는 기념품이나 빨리 하나 사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가게를 눈으로 훑었다. 물품은 그냥 평범한 기념품 가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바닷가 옆이니까 당연히 조개껍데기로 만든 기념품들이 있었고…
옆에는 또 다른 조개껍데기…
…사실, 조개껍데기 기념품 외에는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내 눈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행거에 걸쳐져 있는 목걸이였다. 색색의 플라스틱 구슬을 실로 꿰어서 만든 목걸이는 특이하게도 딱 하나 남아있었다. ‘다들 저것만 사나 보군.’ 나는 생각했다. ‘나처럼 빨리 싼 거 사야겠다는 생각에 저걸 집었겠지.’ 나는 목걸이를 집어 카운터로 가져갔다.
“이거 얼마에요?”
주인은 여전히 활짝 웃으며, 나에게 대답했다.
“100만원 입니다.”
“뭐…뭐라고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100만원입니다. 손님”
주인 아저씨는 여전히 나를 향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잠깐 동안 멍하니 있다가 곧 정신을 차렸다.
“저…저게…백..만원..”
놀라서 더듬거리고 있는 내게 주인이 더 경악할 말을 했다.
“손님은 제일 싼 기념풍을 고르셨네요”
“예?!?”
“그래요. 100만원 이라는 가격은 우리 가게에서 가장 싼 가격이지요. 그래서 인지 다들 그것만 사네요. 아쉬워라…”
주인 아저씨는 머리를 긁적이며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기념…풍? 그러면 가게 이름에 오타가 난 게 아니라 이것들이 진짜로 기념풍이란 말이에요?”
“네, 당연하죠.”
“기념풍이…뭐죠?” 나는 의심하며 물었다.
“기념풍이란 건…”
그 때, 가게로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더니, 주인 아저씨의 말을 가로막고 소리쳤다.
“아유~ 다행이다. 아직 하나 남아있었네. 이거 안 팔렸죠?”
“네. 그치만 이 손님이 먼저 와서 보고 계셨는데…”
“젊은이, 이거 살 거유?”
할머니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다시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거, 나한테 150만원에 팔지 그래요?”
갑작스럽게 시작된 경매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랬다. 현재 나에게 100만원은 수중에 없었으며, 그 정도 가격이면 기념품이든 기념풍이든 구매 할 생각은 없었다.
구매를 거의 포기한 채로 주인 아저씨의 긍정적 대답을 기다렸지만,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그건 안됩니다.”
아저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할머니는 어제도, 그저께도 와서 사가셨잖아요. 제가 분명 최소 3일 후에 다시 방문하시라 말씀 드렸죠.”
주인 아저씨의 단호한 말에 할머니는 몇 차례 더 구시렁거리다 혀를 차고는 가게 밖으로 나갔다. 창문 밖으로 어슬렁 거리는 할머니의 그림자가 맴돌았다.
일반적인 플라스틱 구슬 목걸이가 아닌가? 100만 원을 주고라도 사고 싶은 이유가 뭘까?
“손님, 구매하시겠습니까? 원하신다면 무이자 할부도 됩니다. 전 손님이 이 기념풍의 주인이라고 확신하거든요.”
주인 아저씨가 능글맞게 웃으면 말했다.
마음이 동요했다. 저 플라스틱 목걸이가 진짜로 100만원 이상의 물건이란 말인가?
아니지, 좀 더 의심해야 한다.저 할머니와 주인이 짜고 치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러면 낭패다.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질문했다.
“기념풍이라는 이 물건의 기능을, 정확하게 알려주세요.”
주인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바람입니다.”
“예?”
“말 그대로, 바람입니다. 그래서 기념풍이라고 불리죠. 기념풍에, 바람 풍을 합해서…”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더 당황스러웠다.
“기능이 뭔지 정확하게 알려주셔야죠! ‘바람’이 기능이라고 하면 어떻게 압니까?”
주인의 표정은 한결 같았다.
“말 그대로에요. 이 기념풍들은…바람입니다.”
“당신이 바람을 원하지 않았나요. 당신이 원하는 바람이 여기 있습니다. 다른 말로는 변화라고도 하지요. 바람을 원하는 사람들은 많아요. 더 이상 망설인다면 이 기념풍도 남의 손에 들어가겠지요.”
주인은 창문에 비치는 검은 그림자를 보고 말했다. 그림자는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문과 창문을 연기처럼 오고 갔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분명 나의 이성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속 무언가가-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는 계속해서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 바라고 있었다.
“사겠…습니다.”
나는 가까스로 내뱉었다.
“그 기념풍, 살게요.”
주인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카운터에 올려진 프라스틱 목걸이를 다시 보는 순간. 구슬 한알 한알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과 다른 목걸이가 아닌가 의심도 들었다. 꼭 손에 넣어야했다.
나는 호기롭게 신용카드를 꺼내 주인에게 건넸다.
“3개월 무이자로 해주세요.”
주인은 카드를 가져가며 나를 흘깃 보았다. 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작은 구슬알들을 만지며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건 뭐지?”
검은 그림자들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화가 난 것 같았다.
‘내거야. 내거라고.’
바람 소리처럼 낮은 음의 음성이 귀에 들였다.
“손님, 손님. 영수증을 확인하세요.”
주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네.”
카드와 영수증을 받으면서도 검은 그림자에 신경이 쓰였다. 뇌가 비워진 것처럼 창으로 눈이 향했다.
“그럼, 조심해서 가십시오.”
조심해서 가라니. 무슨 의미야. 나는 창에서 눈을 떼고 가게 주인을 봤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사악하게 웃는 주인의 뒤로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나는 기념품 가게에서 조금 걸어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목걸이를 만지작 거리다가 목에 걸어보았다.
그러자…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으아아아악!”
내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발이 땅에서 떨어져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뭐지? 이건 대체…?”
나는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바로 풀어버렸다. 그러자,
“으악!”
…당연하다는 듯이 떨어져 버렸다.
“아야야…” 나는 손에 들고 있는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목걸이를 쥐고 있는 손에서, 신기한 촉각이 느껴졌다…
목걸이가 몸의 일부분처럼 느껴졌다.
“뭐야. 이게. 이게 무슨 변화라는 거야.”
나는 가게 주인이 사기를 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몸이 두둥실 떠오른다고 현실이 바뀔리가 없었다.
“내 100만원.”
몸이 떠오르는 기묘한 경험보다 돈이 아까워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렇다고 이미 몸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목걸이를 버릴 수도 없었다.
누워서 눈을 껍벅껌벅 뜨고 감기를 반복했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야! 이 개 사기꾼아!”
속상한 마음에 크게 소리쳤다.
“누가? 누가?”
귓가에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검은 그림자들이 긴 손을 뻗고 있었다. 나는 두려운 마음에 목걸이를 다시 목에 걸었다. 몸이 떠올랐다.
“돌려줘…”
방금도 들었던 음산한 목소리가 말했다. 희미하지만, 확실한 음성이었다.
“내 바람…돌려줘어어어어!”
갑자기 작았던 목소리가 귀가 찢어질 정도로 커졌다. 나는 귀를 틀어 막고 반대로 외쳤다.
“뭘 어쩌라는 거야!!!!”
귓가에는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검은 그림자들이 내 주변을 감쌌다.
‘어쩌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검은 그림자들은 공중에 떠 있는 발목을 잡고 놓지 않았다. 나는 그림자를 뿌리치기 위해 버둥거렸다.
“놔. 놓으라고, 목걸이는 내 거야!”
목걸이가 내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맞아, 목걸이는 내 거야. 내 거라고.
“떨어져. 아무도 목걸이를 가져 갈 수는 없을 거야.”
나는 발끝으로 검은 그림자를 찍어 눌렀다
다시는 누구도 내 것을 가져 가게 둘 수는 없었다. 나는 빼앗기지 않게 옷 안으로 목걸이를 넣었다.
“내 바람이 먼저야. 돌려줘.”
“아니야. 내가 먼저야.”
검은 그림자들이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싸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딱 맞게 강한 바람이 불었다. 나는 바람에 몸을 맞기고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서툴렀다. 바람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싸울 요량도 있었지만. 곧 깨달았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만화에 나오는 히어로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 기분이었어야 했을 터이다.
그러나 지금 나의 상황은 히어로 보단 도망자에 가까웠다. 심장이 빠르게 쿵쾅거리며 나의 위기를 알렸다.
따돌렸다고 생각하고 뒤를 보는 순간, 그 심장 마저 얼어 붙는 줄 알았다. 검은 손들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던 그 순간,
“잠깐!”
누군가가 소리침과 동시에 나는 눈을 떴다.
눈 앞에 있던 검은 물체들이 서서히 내 몸에서 물러가기 시작했다. 어리둥절해진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믿기지 않는 장면을 목격했다.
긴 머리의 한 여성이 나처럼 하늘을 날고 있었다. 또한 그녀의 손에서 하얀 가루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 그 가루들은 검은 물체들에게 들어가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들은 가루를 받더니 하나 둘 씩 사라졌다. 그림자들이 전부 사라지자 그 여성은 나를 돌아보았다.
침묵이 잠깐 감돌았다.
“드디어 잡았다.”
“에?”
정신을 차린 순간 내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바람 도둑.”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전 이걸 백만원이나 주고 산거라고요. 그런데, 누구세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뭘…샀다고?” 여성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딜 시치미를 때! 너가 지금 바람을 빼가는 바람에 큰일이 생긴 거를 알기나 하는 거야? 자, 당장 가자.” 그러더니 여성은 내 팔목에 채워진 수갑을 잡아 당기려고 손을 뻗었다.
“자자자…잠깐! 자, 보세요. 바람 도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전 원래 이렇게 날아다니지 못해요! 이, 이 목걸이를 차고 있어서 그런거에요!”
나는 수갑이 채워져 움직이기 힘든 손으로 목걸이를 겨우 풀었다. 그러자,
“아, 잠깐.”
생각해 보니 여긴 50m상공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악!”
나는 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바보같이 죽기는 싫어어어어!’
눈을 감았다 뜬 순간, 저승…에 있지는 않았다.
다행히,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아까 그 여성에게 옷자락이 붙들린 채로 여전히 공중에 떠 있었다.
“너…진짜로 바람 능력자가 아니였던 거야?”
“바람 능력자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렇다고요.”
나는 정말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여성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내려놨다.
“일단…좀 걸으면서 얘기 해줘.” 여성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지? 그 목걸이는, 어떻게 구한 거야?”
나는 그녀에게 내가 겪은 일들을 모두 말했다.
내가 기념’풍’이라는 것을 구입한 일과, 그걸 목에 차자 날아다닐 수 있게 된 일.
그리고 그림자들이 나를 쫒아 왔다는 것 까지 전부.
“음…그렇게 된 거로군.” 그녀는 뭔가를 알고 있는 듯 한 눈치였다.
“지금부터 너의 궁금증을 풀어줄께. 당신은 바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지?” 그녀가 대뜸 나에게 물었다.
“바람은…뭐…공기의 순환?”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대답을 해 버렸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그렇지.” 여성은 한숨을 쉬더니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바람에는 중요한 역할이 하나 있어. 그건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야.”
“바람은 전 세계 곳곳으로 ‘변화’를 몰고 다니지. 바람이 지나간 곳은 변화가 생겨. 뭐…아주 간단한 예시를 들어볼까? 민들레 씨앗이 바람을 만나 땅으로 떨어져 꽃이 피는, 뭐 그런 일 말이야.”
“아니, 그건 민들레 꽃에만 해당하는 일이죠.” 나는 반박을 제시했다.
“내가 말했잖아. 연상을 쉽게 하기 위한 예시라고. 전세계 모든 사람들, 사물들이 민들레 씨앗이라고 생각해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말도 안되는 일…”
“보통의 상식 선에서는 그렇다고! 하지만 바람은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어! 변화를 전달해 주지. 으아…역시 일반인에게 설명하긴 힘들군.”
“그래서 바람이 변화를 촉진한다는 것과 이번 일과 무슨 관련이 있죠?”
“음, 방금 본 검정색 그림자 같은 생명체들이, 바로 바람을 빼앗긴 존재들이야.”
“바람을 빼앗겼다…?”
“변화가 있어야 할 시기에 바람을 받지 못해 변화가 정체되어 버린 생명체들이지. 존재는 다양해. 동물, 식물…인간까지.”
그럼 방금 그 그림자중 인간도 있었단 말인가.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거죠?”
“바람 도둑.”
“네?”
“바람을 선천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몇 명 있어. 당신 눈앞에도 한 명 있고. 그런 사람들 중 바람을 빼돌려 사리사욕에 사용하는 사람들을 나는 바람 도둑이라고 불러.”
“그럼 그 기념품 가게 주인이…바람 도둑이었군요!”
“그렇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어떻게든 납득이 갔다.
그 바람의 기적을 몸소 체험해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좋아~그럼 안내해줘.” 여성이 갑자기 말했다.
“안…내요? 어디로요?”
“어디긴 어디야. 그 기념품 가게지.”
“꼭 가야해요?”
“당연하지. 아니면 니가 대신 감옥에 가던지.”
여성의 말에 곡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안 가면 안 돼요. 거기 사장도 이상하고 이상한 그림자들도 바글거리고…”
여성의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갔다. 누가 봐도 비웃는 웃음이었다.
“어쩌나. 꼭 가야겠는데. ”
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그 기념품 가게로 갔다.
하지만 간판이 싹 바뀌어 있었다.
‘훌랄라 주짓수 클럽’
나는 한 번 더 망연자실했다.
어째서 기념품 가게가 무술 도장으로 바뀐단 말인가?
아니다. 그럴 수 있겠지.
“어쩌죠?”
여성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말투가 달라졌다.
고개를 돌려보고 나는 깨달았다.
그녀가 방금 말한 상대는 다른 사람이란 것을.
“으, 으악!” 나는 고개를 돌려 목격한 대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 당신은 또 누구죠?”
하늘 위에, 무언가가 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쩌긴, 계속 찾아 봐야지.”
토끼였다. 토끼 한 마리가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사람의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할 말을 잃고 입을 쩍 벌리고 있자, 토끼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아, 자네가 이번 사건의 목격자인가? 왜 그러고 있어? 말하는 토끼 처음 보나?”
‘당연히 처음 보지!’ 라는 말은 속에서만 나왔다.
토끼는 공중에 떠 있는 채로 날 계속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 소개가 늦었군. 쉽게 말해…너를 여기로 데려온 이 여성의 상관이지.”
‘대체 무슨 조직이 토끼 상사가 있을까…’ 나는 더 이상 깊은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여성이 토끼에게 물었다.
“음…글쎄…” 토끼가 눈을 감고 고민하고 있었다.
“좋아, 범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볼까?”
“범인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그래. 점포를 정리한 범인은…어디로 갔을까?”
범인이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건 쫒고자 하는 의지와 내 단단한 두발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었다. 정신이 맑아졌다. 마치 에너지 드링크를 5잔이나 마신 것처럼. 그리고 문득 어느 책에 있는 구절을 떠올렸다.
‘도둑은 언제나 흔적을 남긴다.’
그렇다! 어딘가에 흔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바로 반대편을 돌아보았다.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골목이 있었다. 나는 바로 그 쪽으로 달려갔다.
골목 끝에서 나는 이정표를 보았다.
그것은 대리석으로 만들었고 눈부셨다.
나는 모퉁이를 돌아 미친 듯이 달렸다.
그리고 보라색 승합차를 조우했다.
“저 사람은…!” 승합차 운전석에, 아주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기념품 가게 주인이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놀라서 차에 시동을 걸려고 시도했다.
나는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승합차로 달려가 문 손잡이를 잡고 힘껏 당겼다.
드륵-
승합차 문이 열렸고 나는 보았다.
지금껏 상상조차 못한 놀라운 것을.
나는 숨이 찼다.
호흡을 정돈하고 승합차로 들어섰다.
그리고 의식이 까맣게 암전됐다.
눈을 떴을 땐, 어느 새하얀 방에 누워 있었다.
“여긴…어디지?”
분명 기억나는 거라곤 정신없이 승합차로 들어간 것 까지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정신이 드나?”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토끼였다.
토끼는 손, 아니 앞 발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이것을 아느냐?”
그것을 내밀며 토끼는 말했다.
“기념…풍…”
이제는 기념풍이라는 말도 안 되는 단어가 익숙해져버린 나의 앞에서, 토끼는 그 물건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것도 10개나.
“잘 알고 말고.”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토끼는 씨익 웃었다.
“아까 그 승합차에서 떨어져 나온것들이네. 자네 덕분에 범인을 찾았어.”
드디어 범인을 찾았단 말인가.
“그럼 제 100만원도 돌려 받을 수 있나요? 아니, 이럴때가 아니지. 빨리 그 개자식…아니, 범인을 만나게 해주세요.”
토끼는 계속해서 웃고만 있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자, 떠나자. 시간이 됐어.”
토끼는 돌아서서 방문을 열었다.
방문 밖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난 그 광경에 숨이 멎을 뻔했다.
내 눈 앞에는 사극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옛날 조선 시대의 기와집같이 생긴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한복 같이 생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곳이 밤이었다는 것이다. 그곳의 밤하늘에는 내가 평상시에 보던 달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보름달이 떠 있었다.
“많이 놀랐나?” 옆에서 토끼가 물어왔다. 나는 너무 놀랐는지라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토끼가 문 밖으로 나가며 따라오라고 재촉했다. “빨리 가세나. 지금 시간도 별로 없으니까” , “어…어디를 가는데요?” 내가 어버버하게 물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거든” 토끼가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앞으로 뛰어가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나도 엉겁결에 토끼를 따라 뛰어가면서 물었다
“누구를요?”
“거 참, 자네 질문이 참 많구먼” 토끼가 귀찮은 듯이 말했다.
‘아니 이 상황에서 질문이 안 나올 수가 있겠냐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한참을 달리고 어느덧 토끼가 멈춘 곳은 매우 커다란 기와집이었다.
‘아파트 10층 높이는 되겠네…’
기와집의 크기에 압도당한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토끼는 태극 무늬가 그려진 대문짝만한 문으로 가더니 그 문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에게로 가서 뭐라고 말했다. 그러자 문지기는 그 말을 듣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토끼가 안으로 따라들어오라고 나에게 턱짓했다. 나는 주춤거리면서 천천히 안으로 따라들어갔다. 뒤에서 찰칵,소리가 들렸다. 나는 집 내부의 으리으리 함에 한 번 더 놀랐다.
“우와, 신기한 물건들이 엄청 많네요?! 이건 뭐에….엇?!”
나는 토끼에게 물어보려고 뒤를 돌아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토끼가 있던 자리에 토끼는 온데간데없고 한복을 입은 하얀 머리의 여자가 서 있었다.
그 하얀 머리의 여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하네, 내 소개가 늦었지? 나는 달토끼라고 하네.” , “잠깐 대체 이게 무슨…” 내가 더듬거리면서 말하려고 하자 하얀 머리 여자,아니 토끼가 말을 가로막았다. “설명은 나중에,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 시간이 별로 없어. 그리고 이제 오실 떄가 됐는데…” 달토끼가 초조한 듯이 말했다.
“누가…만나러 와요?”
나는 조금 이상해졌다. 무언가가 이상했다.
“그래, 곧 만나러 올…”
“이상하네요. 누군가가 만나러 오는데…” 나는 이 말을 하며 문쪽으로 걸어가 문고리를 잡아 당겼다.
“왜 문을 잠궈놨죠?”
그러자 달토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렇다. 들어올때 들렸던 찰칵 소리는…문을 잠그는 소리였다.
이 달토끼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거짓말은 안 통하겠네.” 달토끼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진실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아. 너가 잡은 범인이 그러니까…내 상관이었어.”
“뭐시라?” 어이가 없었다.
“그럼 지금까지 짜고 치는 거 였어?” 분노는 내 말투를 반말로 바꿔놓고도 남았다.
“아니, 바람의 물건을 밀매한 건 상관의 독단적인 범죄였어. 난 아무 관련이 없어. 그런데…일이 좀 복잡해지겠더라고. 이 일을 다루려면 조직 전체를 뒤엎어야 될 정도로…”
이 무슨 막장 조직이란 말인가. 나는 점점 두려워졌다.
“그래서, 제안을 하고자 해. 너만 입 다물면 이 사건은 묻어버릴 수 있거든? 우리,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고. 배상도 다 해주고 할테니. 이 이야기를 절대 다른 누구에게 발설하면 안 돼. 알았지?”
달토끼가 나에게 점점 다가오며 말했다.
커다란 망치를 들고.
“안 그러면 떡으로 만들어 줄테니. 자, 어떻게 할래?”
“다, 당연히 함구해야죠.” 나는 다시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좋아! 항상 널 주시하고 있다는 걸 기억하고, 그럼 이만…” 달토끼는 망치를 뒤로 매고 다시 저쪽으로 걸어갔다.
“아, 그 바람이 들어간 목걸이는 기념으로 가져. 바람은 빼놨어. 너의 기억을 지우는 것 까지는 불가능하니, 그 목걸이를 기념품처럼 간직하는 것도 좋겠네. 그럼!”
달토끼가 박수를 탁탁쳤다. 갑자기 수많은 토끼들이 나타나 나를 뒤덮었다.
“아니, 이게 무슨…!”
수많은 하얀 토끼들에 뒤덮여가며 나는 정신을 잃었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모든일이 일어난 바닷가에 내팽겨쳐져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소지품도 그대로 다 있었고 몸도 멀쩡했다.
아니,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손에 쥐여져 있는 싸구려 목걸이 하나일까.
나는 달토끼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손에 들려있는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기억을 지우는 것 까지는 불가능하니…’
그렇다. 잠깐이지만 나는 놀라운 체험을 했고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늙어 기억력이 형편없어지더라도, 이 목걸이 하나만 보면 기억이 다 살아날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한 기억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목걸이는 확실히 100만원 어치의 기념품이었다. 아니, 기념’풍’이었다.
“엄청난 체험을 했어…”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100만원은 다 돌려받을테니, 사실상 공짜로 엄청난 일들을 겪게 된 것 아닌가.
그리고 다음날, 내 통장 계좌에 돈이 들어왔다.
수신인은 달토끼. 성이 달이고 이름이 토끼로 되어 있었다.
금액은 50만원.
나는 통장을 집어던지며 소리질렀다.
“이런 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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