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인 ‘나’와 ‘지우’는 동일인물인 것으로 보이는 근거가 많지만, 걸림돌이 되는 곳이 있었다.
그때 교실을 내려온 애들과 눈이 마주쳤다.
“뭐야. 화장실 간다더니 쟤량 있었냐.”
이 두 문장은 제 3자의 눈에 실제로 2명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판단되서 다 읽고 난 뒤에도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카톡에서 숫자 “1”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는 부분도 만만치 않게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지우가 일어난 자리에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일어난 자리에만 사람이 앉아 눌린 자국과 함께 조금 따뜻했다.”
..
“하지만, 나는 섹스를 할 수 없었다.”
..
“이 짐 그 어디에도 지우의 흔적이 없다. 늘 혼자였던 사람처럼.”
이런 부분들은 애써 ‘지우’가 실존하지 않는 캐릭터임을 드러내려고 한다고 느껴졌다. 마지막 졸업 사진 장면에서 가장 명백하게 ‘나’와 ‘지우’는 동일인물임을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앞에 언급했던 의심스러운 혼란들은 무시하고 리뷰를 적어본다.
‘지우’의 설정은 자연스럽게 브래드피트와 에드워드 노튼의 “파이트클럽”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와 다른 점은 두 자의식이 계속 공존한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그런 상태를 꽤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만족해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낯을 아주 많이 가리지만 친화력 좋은 사람이라는 오묘한 존재라고 인식하는지도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의식의 흐름대로 서술했기에 오해한 부분이 있을지 몰라서 스토리를 간략하게 정리해둔다.
주인공 ‘나’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다가 9년간 서울의 좋은 학군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내려온 것으로 추측된다. 서울에서는 왕따를 당했을 것 같고, 그런 과거를 청산하려는 듯 시골로 내려왔을 때 활달한 ‘지우’라는 인격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후로는 활달한 ‘지우’의 위로를 받으며 학창시절을 버텨냈고, 무사히 성인이 됐다.
활달한 ‘지우’는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주인공을 찾아온다. 외로울 때나 사랑을 하고 싶은 때에.. 외로움이 느껴져서 활달한 ‘지우’가 찾아오는 건지, 활달한 ‘지우’가 찾아와야 고독하게 지내고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는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주인공에게는 담담한 일상이 된 것 같다.
성장담은 아닌 한 성인 여성의 고백록쯤으로 보인다. 공감하는 사람들을 찾고 같이 위로받으려는 듯한 단편인 것 같아 괜한 리뷰로 참견한 것이 아닌가 싶다.
리뷰받고 싶어하는 이들은 다양한 시선을 원할 것이라는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라 몇 자 적어봤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