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 염려, 선 감상

대상작품: 매출, 양립, 시 (작가: 리음, 작품정보)
리뷰어: Meyond, 19년 11월, 조회 28

개인적으로는 최근 읽은 P. D. 제임스의 『사람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읽게 되는 이야기였다. 인간 세계 안에서 인류가 구체적으로 어떤 종말을 맞게 될 것인가, 하는 시나리오가 인구 수 혹은 그 규모를 뛰어넘는 다양한 이야기로 발전해 이젠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건 좀 재밌는 사실이다. 한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들 다수가 공유하는 속성이 하나 있는데 바로 ‘어리석은 인류 스스로 자초한 소멸’이 그것이다. 쉽게 다시 풀어보자면, (종말로 향하는) 누구의 바보짓이 더 그럴싸한 오락거리로 기능하는가? 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야기는 재난 영화의 도입부를 맡은 연기자 같은(?) 인물의 독백으로 끝나는데, 그 바깥에서 바라보는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저 ‘라인드’라는 게 어떤 로직으로 만들어져 출시된 제품인지는 몰라도 저런 게 판을 치는 세상의 끔찍한 몰골을 이미 본 것 같은 공포에 몸서리치게 되는 것이다(?). 요즘처럼 여러 매체를 통해 사방에서 최소한의 언어 꼴만 겨우 갖춘 채로 뿜어져 나오는 인간 무의식만 해도 끔찍하기 짝이 없는데, 그 최소한의 노력마저 사라져 모두가 게으르게 머릿속을 꺼내 보여주는 미래라니. 한편으로는, 이게 평화로운 인류 소멸을 위해 자발적으로 내딛는 한걸음이 될 수 있다면(?) 나 역시 군말 않고 동조하고 싶은 생각이 자조적으로 피어오르기도 한다.

지구에 종말이 찾아오면 누군가는 한 그루 사과 나무를 심는다고 했고, 앞서 언급한 『사람의 아이들』 속 인물들은, 이제 곧 명맥이 끊어질 인류라는 한 종으로서 세상에 이바지한 인류(라고 쓰고 남자라고 읽는다)의 출석을 부르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문득 든 생각은, 이 세계가 자신의 결말로 이 이야기 속 시나리오를 채택한다면, 글쎄, 마지막 남은 인간의 숨이 끊어지며 그가 정작 대지에 흩뿌리게 될 유언은 아마 말줄임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아닌 염려가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럼 무슨 생각을 하면서 죽는 거냐고? 라인드가 있는데 생각이란 걸 인류의 마지막 날까지 굳이 하며 지낼 인간이 과연 남아있을까?

또 하나 재밌는 건, 이 이야기가 허구적 설정인 마냥 그리고 있는 세계가 사실 조금만 비틀어 보면 현재 우리가 사는 모습과 대단히 다를 것도 없다는 점이다. 실재와 허구를 가르는 선이란 대단히 견고할 것도 없으며, 실제로 우리는 어쩌면 언어를 매개로 하는 능률 좋은 다중 통역기보다는 의식을 매개로 하는 라인드의 개발 및 상용화를 더 환영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미 글에서 영상으로 주요 소통 수단을 옮겨간 것처럼. 이는 단순한 개인의 선호를 뛰어넘는 흐름이고, 자신이 서서히 씨가 말라가는 ‘구 인류’ 최후의 몇 인이 됐음을 깨닫는 순간은 전생애에 비하면야 지극히 찰나일 것이다. 마지막 인간이 채소처럼 시들어가며 대지 깊숙이 처박혀 씨감자마냥 다시 새로이 생명을 잉태하고, 그것이 인류의 행복한 열린 결말이자 새로운 시작으로 그려지는 이야기가 존재한다고 해도,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래봤자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리란 예상이 고작이다. 어쩌면 이게 내가 이 장르를 통해 얻은 유일한 깨달음일지도 모르겠다. 더 뻗어나갈 새로운 설정적 그물을 찾기에는, 우리 모두는 생각보다 이 이야기에 깊숙이 연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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