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한 스푼, 흥미로운 인물 한 스푼, 재미 다섯 스푼, 엇, 금융 용어를 쏟아버렸네!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많은 사람의 죄 (작가: 양진, 작품정보)
리뷰어: 비연, 19년 11월, 조회 83

양진, 많은 사람의 죄

 

분명 리뷰도 단문 응원도 없을 때부터 이 작품을 읽으며 리뷰를 작성하기 시작했었는데, 어느새 (양진 작가님의 답변을 포함하여) 단문 응원 28개에 리뷰 2개가 올라와 있다. 어우, 잘 써야 하는데…….

 

많은 설명을 제쳐두고, 우선 ‘재미있다’라는 것이 가장 먼저 말하고 싶다. 재미있다. 양진 작가는 리뷰 공모를 진행하면서 리뷰어들에게 세 가지의 질문을 남겼다. 첫째, 재미있는가? 둘째, 금융 내용이 어렵다는 등 좀 걸리는 부분이 있지는 않은가? 셋째, 전반적인 논조와 폭력성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는가? 둘째와 셋째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이야기하겠지만, 첫째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재미있다. 브릿G의 작품은 역시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가장 많이 읽게 된다. 책을 들고 있기에는 부담스럽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지루한 시간. 문제는 몇 번의 환승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건 곧 집중할 시간이 짧다는 말이기도 하다. 빨리 집중해서 빨리 읽고 다른 호선으로 갈아타고 또 빨리 집중해서 빨리 읽고……. 그러다 보니 호흡이 긴 작품을 시작하기가 점점 어려웠다. 겨우겨우 시작해도 끝까지 읽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작품을 끝까지 다 읽어냈다는 것은 이 작품의 재미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혜양의 눈가에 머쓱한 웃음이 떠올랐다. 금정은 답하는 대신 고개를 숙이고는 탁자 위에 높인 플레이트를 내려다보았다. 쓰이다 만 논문 초록이 일종의 해설서처럼 금정의 과거를 들추고 있었다. <모노 시냅스의 손상된 기억과 EERTREE 구조를 활용한 복원 가능성>… 그에게 남은 가장 오래된 기억은 종전 직후의 것이었다. 그 이전을 짐작하려면 판결문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관북연방국에서 정보사 대위로 복무했으며 그 과정에서 카르나타카의 자산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유죄!

아니, 내가 그랬다고요? 내가요?

법정은 온 우주에서 끌려온 전범으로 득시글거렸고 일개 기술장교가 할 수 있는 반항은 그뿐이었다. 외마디 질문을 던진 뒤 판결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임시 구치소의 8인실에서 몇 달을 지낸 다음에는 갱생 노역을 위해 우주 저편으로 보내졌다. 노역이 끝아 관북으로 돌아온 지금조차 상황은 비슷했다. 평일에는 회계사로 일했고 주말에는 대학원생의 연구주제가 되어야 했다. 갚을 빚이 아직도 많았다.

 

 

그러나 재미있다는 것과 매끄럽게 술술 읽힌다는 것은 좀 다른 문제이기는 하다. 우주를 아우르는 큰 규모의 세계관에 주요한 배경은 질병으로 인해 봉쇄된 행성이고, 기계 인간이 등장하며, 온갖 금융 용어들이 쉼 없이 쏟아진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도 많다. 자연히 이 많은 설정과 인물,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도 길어진다. 특히 금융 용어가 머리를 아프게 하기도 한다. 잘 모르는 분야가 등장하면 무조건 소설에서의 설명을 수용하면서 읽는 편인데도 이게 무슨 말인지 상당히 공을 들여 읽어야 했다. 인물의 이름이나 배경도 익숙하지 않은데 일상적이지 않은 금융 용어까지 혼재되면서 발생하는 피로가 있다. 게다가 ‘빚’이라는 문제는 금정이 카르나타카로 향하게 된 가장 주요한 원인이었으니 패스하며 읽다가 중요한 내용을 놓치지 않을까 부담도 되었던 탓에 다소 머리 아픈 읽기가 되었던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겠다. 아마도 이게 이 작품의 진입장벽을 한껏 높이고 있으리라. 리뷰어들에게 남긴 질문에 금융 내용이 어렵다거나 해서 걸리는 부분이 있지는 않았냐는 질문이 포함된 것을 보면, 작가 역시 이 부분을 고민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금융과 관련한 내용이 이 작품의 정체성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요한 기둥이기도 하고. 독자가 작품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쉬운 언어로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하는 편이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금정은 그녀가 어깨에 매달리자마자 옆구리에다 레이저건을 쑤셔 박았다. 실리콘이 이빨에 뜯겨나가기 직전이었다. 방아쇠를 당기자 여자의 몸에 힘이 풀렸다. 그 틈을 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머리를 떼어냈다. 이마네 두 발을 연달아 갈긴 뒤에야 그는 통각 센서를 조정했다.

(중략)

금정이 주춤거리자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남자는 막대를 내던지고는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살이 뜯길 판이었지만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는 방아쇠를 끝까지 당긴 상태에서 총열로 놈의 턱을 올려쳤다. 과열 표지가 소등하면서 남자의 미간에 검을 점이 뚫린 건 그 순간이었다. 턱과 입천장과 이마를 직선으로 잇는 구멍이었다.

방아쇠를 한 차례 더 당기자 후끈한 열기가 손으로까지 역류해왔다. 이번에는 뇌를 관통한 듯 남자는 잠깐 뒷걸음질을 치더니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손등으로 이마를 훔친 금정은 곧바로 자목련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레이저건을 놓친 채 어깨가 뜯기고 있었다. 바닥에 엉켜 있는 탓에 둘 중 하나만 조준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어깨 부분을 비볐다. 둘이 동시에 울부짖었지만 남자의 목소리가 더 컸다.

“시끄럽기는.”

금정은 남자의 옆구리를 걷어찬 뒤 옷깃을 잡아 끌어내렸고, 허벅지를 잘라내 제압을 마쳤다.

 

폭력성에 관해서는 판단하기가 조금 모호하다. 폭력적이라고 말하기엔 그 행동들이 충분히 이해된다. 좀비 영화에서 총으로 뇌를 터트린다거나 사극에서 칼로 심장을 찌르는 장면을 보면서 너무 폭력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 것과 같다. 다만 표현이 폭력적이다. 똑같은 장면도 연출에 따라 잔인하게 느껴지는 정도가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이 작품의 직설적인 표현과 묘사는 충분히 이해되는 장면도 다소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이 불쾌했다는 말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받아들였을 수 있으나 불필요하게 잔인했다기보다는 표현에 거침이 없던 탓이라고 보인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이 거침없는 문체 또한 작품의 특징이기에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자목련의 쓰임새였다. 상당한 비중을 가질 것으로 예상했던 인물이 너무 쉽게 소비되어 버린 것 같다는, 너무 평면적인 캐릭터에 머무른 것 같다는 아쉬움이다. 인물이나 상황에 대한 설명이 더 구체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설명의 공백을 상상으로 채워 넣는 것이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그 공백이 너무 넓으면 상상을 포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공백이 넓은 소설은 다시 읽었을 때 더 흥미로운 소설이 되기도 하니 언젠가 다시 읽을 소설을 찾아 두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다시 읽었을 때는 이 작품의 밀도가 어떻게 느껴질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때 다시 리뷰를 쓸 수 있다면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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