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사막으로
사막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우주로 향한다. 여러 갈래로 나뉜 듯 보였던 이야기는 외로움을 만나 하나의 흐름을 타기 시작한다. 별이 우리에게 빛으로 닿을 때까지 우주를 가로지른 길고 긴 시간의 고독과 몇 번의 생을 넘기며 아내의 죽음을 상상하며 한국으로 향했던 아버지의 고독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 내가 나의 고통을 이해하고 인정하기까지 필요했던 시간과 별이 빼곡한 사막의 밤하늘을 기억한다고 답한 엄마의 시간은 또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
욕망들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동시에 끌어안을 수 없고, 그래서 그 틈으로 외로움이 쌓이는 것 같아.
경연 프로그램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내가 응원하는 참가자 혹은 참가팀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볼 때의 희열은 잊을 수가 없다. 천선란 작가를 볼 때 그 희열을 느낀다. 물론 천선란 작가는 등장부터가 슈퍼 히어로 같기는 했지만, 그 후 계속해서 성장하고 인정받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희열을 느끼지 않기가 더 어려울 듯하다. 그러면서도 이 작가에게 종종 질투를 느낀다는 것이 부끄러운 부분이기는 하다. 사실 ‘종종’보다는 ‘매번’에 가깝다. 이 문장을 훔치고 싶고, 이 발상을 훔치고 싶고, 때로는 이 인생까지고 빼앗고 싶다는 아주 유치한 상상을 한다. 스스로 졸렬해서 참을 수가 없을 때까지 질투하다가, 어떤 성과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다가, 또 응원하다가, 문장 도난을 꿈꾸다가…….
그렇자면 네 간격에도 외로움이 생겼겠네.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인데, 나에게 있어 캘리그라피로 옮기기 좋은 문장과 좋아하는 글귀는 좀 다르다. 나는 그것을 무게의 차이라고 이야기한다. 문장이라는 게 손으로 만지거나 쥘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문장에도 무게가 있다. 마음의 드는 문장의 무게를 80이라고 한다면, 캘리그라피로 옮기기에 좋은 것은 무게 90의 문장이다. 내가 캘리그라피로 5를 더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이들이 개인적 경험과 생각 5를 더하면서 최종적으로 그 문장이 100의 무게를 가지도록 하는 과정을 나는 사랑한다.
그러니 이렇게 90으로 가득 찬 글을 쓰는 작가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 문장을 다 훔치고 싶지 않을 수가 있을까. 가본 적 없는 사막을 보는 것처럼, 겪어본 적 없는 별의 시간을 느끼는 것처럼, 존재한 적 없던 천선란 작가의 세계를 사랑하는 경험을 잊을 수 있을까.
당신은 여전히 사막을 꿈꿀까.
이 작품의 소개 글로 리뷰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다. 에어아포칼립스와 외계생명 따위의 많은 단어가 나오지만, 이 이야기는 그냥 한 사람의 중얼거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