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매우 많습니다
주인공은 환빠다. 그러나 주인공은 자신의 역사학을 의심한다. 나는 이 구성에서 꽤나 큰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오늘 하루의 마감을 잠시 미루고 리뷰를 쓰는 것은 이 때문이다. 되도록 응모가 올라온 – 그러니까 리뷰를 원하는 – 작품들 중에서 고르고 싶었고,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의 구성은 확실히 흥미가 있었다.
일단 제목을 보자. >어떤 환빠가 우연히 과거로 가버렸을 때<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솔직히 ‘환빠가 과거로 갔다가, 과거의 사실들이 자신의 인식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는 것인가?’라는 선입견이 생겼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작가의 낚시다.
애시당초 작품에 ‘환빠’라는 단어가 제목으로 채택되었다는 것 자체가 환단고기를 맹신하는 인식이 어두운 이들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 채택한 조롱의 방식은 탁월하다. 사실 자신의 역사관에 대한 가장 큰 모독은 스스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심하게 될 때 느끼게 될 것이다. 일종의 자기부정인 셈이다.
주인공은 스스로의 사학을 의심하고, 자신이 매국사학이라고 생각하는 사학관의 입장에서 다시금 역사를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사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다(!). 이 맹신과 의심이 뒤섞인 아스트랄한 정신세계에서 그 주인공은 독자였던 내가 도저히 생각조차 못했던 – 제목을 보고도 예상하지 못했던 – 방식의 발상을 해버리고야 마는데, 과거로 돌아가서 역사를 바꿔버리겠다는 것이다.
이후의 전개에 대해서는 사실 약간의 의문이 든다. 솔직히 말해서 사건 구성이 조금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로 인한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라던가, 그런 부분에서. 오래된 그림에서 자동차의 형상이 나온다는 것은, 초고대문명설의 유구한 – 그리고 깨져버린 – 떡밥인 점토판 위의 비행기와 잠수함, 헬리콥터를 빗댄 것인가 싶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옛 민화나 고화에서의 사람, 혹은 사물 그림은 비록 평면화되기는 했을지언정 그 세부 묘사가 굉장히 세밀하다. 자동차가 그것에 드러났다면 학계는 ‘마차를 잘못그렸다.’라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연성이라는 면모에서 사실 그 부분이 조금 몰입감을 해쳤다고 할 수 있겠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차라리 ‘선조들 중 미래의 마차에 대해 고찰했던 학자가 있었다.’라고 하는 편이 낫지 않았나 한다.
그러한 결말 부분의 조금 아쉬운 개연성과는 달리, 다시 차를 나무에 박고 그제서야 급사해버리는 전개는 여전히 작가의 참신함을 돋보이게 한다. 다만 그 참신함이 보다 나은 개연성이라는 연마를 통해 좀 더 확실하게 빛을 보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