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꽃잎이 떨어지는 나무 아래에서 한참 동안 생각했다. 출산 후에는 이런 일이 잦았다. 혼이 나갈 정도로 정신없이 일과를 보내다가 갑자기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오면 얼음처럼 멈춰있다. 그럴 때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다. 이럴 줄 몰랐어. 이럴 줄 몰랐어. 요즘 내가 제일 많이 되뇌는 말이다. 이제는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아무리 열심히 생각해도 상상력만으로 다가올 시간의 공백을 촘촘히 메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지금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지금의 시간이다. 오늘은 꼭 시체를 찾고 싶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남편과 함께 깡촌으로 이주한 ‘나’는 쌍둥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독박육아 중입니다. 초보 엄마라 쩔쩔 맬 일이 많은데 동네 박씨 아줌마가 히어로처럼 나타나 도움을 주고요. 그러다 박씨 아줌마가 사라지고 ‘나’는 아줌마가 살해당했을 거라 짐작하며 시체를 찾아 다닙니다.
읽는데 지인이 한 말이 생각나더군요. 지방 소도시에서 돌이 안 된 아이를 키우는 지인의 친구가 동네에 자기 미친*이라고 소문났을 것 같다고. 왜 그런가 했더니, 밤마다 우는 아이를 달래기 힘드니까, 아랫집에서 항의들어올까도 걱정되고, 또 답답하고, 해서 포대기로 애를 업고 밤 10시든 새벽 1시든 2시든 나가서 애가 잠들 때까지 그 컴컴한 길을 계속 걷는다는 설명이었어요. 왜인지 읽으면서 저 이야기가 생각나더라고요.
정보가 제한된 낯선 곳에서 살게 된 주인공이 살인사건을 짐작하지만 증거도 없고 믿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주인공은 독박육아 중인데 탐정 역할을 하는데 제일 걸림돌이 되는게 독박육아 중인 상황입니다. 주인공인 ‘나’가 사건 해결에 매달릴 수 있는 시간은 아이들이 낮잠 자는 오후의 2시간 정도 밖에 안 돼요. 치즈셀러 작가님의 [앞뜰과 뒷동산에]의 주인공은 이 제한된 조건 내에서 범인을 찾아야 하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
결과는 아주 훌륭한 것 같습니다. 소설의 리듬감이 정말 좋고요, 배경도 생생하고, 캐릭터들도 굉장히 생생해요. 단락 구분 없이 지나치게 빡빡한 글(꼭 이 글뿐만이 아니라 브릿G의 많은 글들이 마찬가지인데, 폰이나 탭으로 열었을때 엔터가 없어서 화면을 꼭 채우는 텍스트의 양이 독자에게 읽기도 전에 얼마나 부담감을 주는지 고민을 좀 해보셨음 좋겠습니다. 문맥상 엔터로 나눌 필요가 없어서 그렇다고 짐작은 합니다만, 폰이나 탭으로 읽는데 있어 좋지 않아요)이 압박감으로 다가오기는 합니다만, 이 외에는 아주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작 소설 형태로 계속 이어졌음 하는 소망이 생기더라고요, 다 읽고 나니. 굉장히 가능성이 많은 한국형 코지 미스터리 단편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대로 단편으로 끝난다면 너무 아깝네요. 물론 이 단편 자체만으로도 좋기는 하지만요, 장편이나 연작소설로 가면 더 반갑겠다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