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하나를 읽고 흥미가 생기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려고 해요. 단편마다 기복이 있을 순 있지만 저에겐 없는 그만의 장점을 배울 수 있고. 또 그 작가에 대해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단편들을 읽다보면 한 작가의 숨겨진 정체성과 세계가 드러나기 마련이니까요.
MiK 작가의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다 읽지는 못했고(이 많은 작품들이라니!) 작가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만 읽었어요. 해서 이 글은 단편적이고 부족한 개인적 인상비평(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인상감상 정도)이에요.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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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들을 읽으며 받은 첫인상은, 글쓰기에 대한 애정과 ‘이야기’에 열정이 느껴지는 작가라는 거였어요. 안정적인 필력과 고유의 감성을 바탕으로, 개성있고 재기발랄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지요. 자기 색깔만을 밀고가기 보다는 장르별로 이런저런 시도를 하시는 것 같아요. 또 자극보다는 공감할 수 있는 정서로 결말을 드러내는 것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요. 무엇보다 꾸준히, 평균 이상의 작품을 쓰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요.
반면 분명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아직 단점들도 보이는 것 같아요…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두 개. 칭찬만 늘어놓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까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장르의 이해
(이곳은 장르소설 플랫폼이니) 장르라는 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정의된 암묵적 규칙이죠.
작가가 자기 작품을 ‘어떤 장르’로 규정하면 독자는 ‘그 장르’를 기대하며 읽어요. 누구도 그 장르의 의미를 제대로 정의할 수는 없어도, 관습적으로 모두 그것을 알지요. 해서 작가가 “내 작품은 추리/스릴러야”하고 규정했는데. 독자가 보기에 “이게 어떻게 추리/스릴러니?”라고 생각되면 배신감을 느끼곤 다시는 그 작가의 서재에는 들어가지 않게 돼요.
많은 작가들이(저를 포함해서) 그것을 간과하는 것 같아요. 특히 이제 작품쓰기를 시작하시는 분들이 그렇지요. 그것은 분명 장르의 이해 부족에서 오는 것이고, 내 글이 읽히지 않는다면 그러한 몰이해가 한몫 한 것이 아닐까 반성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음, 이건 제 이야기군요^^!
MiK 작가의 작품들에서도 그러한 장르의 이해 부족이 보여요. 이를테면,
반려견 장례식 풍경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SF 작품이에요. 시대는 달라져도 ‘같은 상실감’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지요. 그러나 의문이 들더군요. 이 작품이 SF라고 할 수 있을까? 로봇*가 등장한다고 작가가 SF로 분류한 것은 아닐까? 하는.
SF는 소재가 아니라 ‘작품’이 SF여야 하지요. 이 작품은 (정서는 충분히 공감되지만) 로봇*는 ‘다른 설정’으로도 대치할 수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작가도 밝혔듯이, 최초 아이디어에 인상과 감성만 담긴 것 같아 아쉬워요. 처음 발상에서 SF적으로 조금 더 나아갔으면 어땠을까요. (하지만 그건 SF에 대한 이해가 갖춰지기 전까진 힘든 일이죠)
이 작품 역시 (내용은 차치하고) 장르에 대한 의문이 들어서 공감하기 힘들더군요. ‘언-럭키 워치’라는 미래 기기가 등장하고 불행지수가 척도가 된 현실을 은유하지만, SF라기 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워 보여요. 또 작가가 주제(?)로 삼은 ‘현실에 대한 은유’가 제대로 드러나고 있는지 역시 의문이에요.
잠깐 샛길로. 최근에 새로 나온 한국의 SF 단편집 둘을 읽었는데, <SF는 미래에 대한 일종의 사고실험이다>라고 하는 장르를 쓰면서 ‘왜 자꾸만 내면으로, 안으로만 침전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소위 순문학을 읽고 자란 작가들이 ‘SF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쓴 것 같았죠… 궁금해지더군요. 이건 SF에 대한 몰이해일까, 아니면 한국 SF만의 특징인 걸까?
이 작품 역시 ‘시간 루프’라는 SF 설정 있고 그로 인한 ‘정서의 여운’이 느껴지는 작품인데… 그 여운은 애초 ‘루프’라는 전제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채로 쓰였기에, 여운의 ‘기능’을 못 하고 있어요. 적어도 제가 받은 느낌은 그래요.
그렇다면 SF 작품들만 그런 걸까? 규칙이 좀 더 엄밀한 추리/스릴러들을 읽어봤어요. 이번에 다시 읽은 <비가 내리기 전에>는 공포에 가까워보이고, 또 가장 최근작도 그렇더군요… 분명 장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보여요.
그건 작가께서도 느끼는 중이시리라 생각합니다.
서술 방식에 대해
다른 작가의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부끄럽고 조심스러운 일이에요… 하지만 작품들을 읽으며 느낀 또다른 의문은, 왜 작품들에 기승전결이 없을까? 였어요. 작가는 기승전결이 없는 이야기들만 선호는 걸까? 또는 쓰지 못하는 걸까?
서재의 작품목록을 다시 살펴보니, 대다수 작품이 엽편이거나 ‘짧은’ 이야기들이더군요. 비로소 작가에 대해 ‘조금’ 파악할 수 있었죠. 이 작가는 애정과 열정을 글을 쓰는구나… 그리고 내재한 감성을 바탕으로 ‘최초 아이디어만’을 구현해내고 있구나.
그런 흔적들은 작품들 전체에서 드러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이 SF 작품은 참신하고 재기발랄해요. 그러나 ‘서술 방식’에서만 보면, 재미있는 발상 하나에 작가 고유의 감성을 깔아놓은 작품이에요. 거기에 연작이 되면서 반복과 과잉을 드러내죠. 아이디어의 재생산이라고나 할까요?
작가께선 종말된 지구는 맛있다!가 컨셉이라고 하셨는데. 분명 맛있는 컨셉이지만, 거기에 의미와 책임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모든 작품이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이 그렇게 느껴졌던 것은… 처음 발상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인 듯해요. (제목 변경을 말씀드렸던 건, 그 단어 하나로 의미와 색깔이 많이 달라질 거라 느꼈기 때문이었어요)
브릿G 추천작인 이 성인동화(?)는 감성과 정서와 여운으로 완성도를 보여줘요. 그러나 서술 방식에 있어선 다르지 않아요. 처음 아이디어에, 그 인물을 파고들며 정서와 여운만을 그려내고 있지요. 이 작품만 읽는다면 완성도 높은 좋은 작품이지만… 작가 전체를 본다면 아쉬움이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MiK 작가께선 내재한 감성을 바탕으로 ‘최초 발상만 구현하는’ 작품들을 쓰고 있다는 거예요. 열정적으로, 재기발랄하게. 그리고 짤막하게. 반복적으로.
작가 본인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또 그런 방식은 득일까요, 실일까요?
다른 계단을 올라가볼 때예요
처음 아이디어만으로 ‘짧은’ 글을 쓰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지요. 누구나 그렇게 시작하니까요. 그 최초 발상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또 평생을 엽편만 쓰면서도 대가 소리를 듣는 호시 신이치 같은 작가도 있으니까요… 왜 안되겠어요, 이런 짧은 작품들이 모여 MiK 작가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그만의 세계관을 구축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제가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런 형태의 글쓰기 관습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거예요. 그것이 작가를 규정하고 박제하게 되는 건 아니까… 이제, 다른 계단을 올라가볼 때가 되지 않았나요?
받아들이신다면, 이제 긴 이야기의 계단을 올라가 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장편은 권하지 않아요. 대신 100~200매 분량의,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를 권해요.
(제 경험으로) 100~200 분량이라는 것이 아주 요망한 것이어서, 최초 발상과 감성만으론 절대 채워지지가 않아요. 감성의 반복과 버려야 할 것들만 늘어놓게 되지요… 하지만 그로 인해, 이야기를 풀어내며 ‘고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지요.
기승전결이라는 구조도 아주 골때려요. 매 단계를 넘을 때마다 최초 아이디어 이상을 고민해야 하고, 때로는 그 최초의 것을 버려야만 이야기가 계속 진행될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로 인해, 작가의 사고가 업그레이드되는 것은 분명해요.
다시 한 번, 긴 이야기를 탐구해 보시길 권해요.
만약 그것이 자신의 방식이 아니라면 다시 짧은 이야기들로 돌아와도 됩니다. 왜 안 되겠어요… 그러나 다른 길을 가보았던 이는 ‘자신만의’ 길을 더 잘 파악하게 될 것이고, 그 길은 좀 더 촘촘하고 다듬어진 자갈들로 꾸며질 거예요.
우리는 그것을 경험이라고 부르죠. 지금은 ‘다른 경험’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어요.
이상입니다. 개인적인 부채로 시작한 글이 어줍잖은 조언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쓰면서 저도 돌아보고 배우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글이었기를 바라며
언젠가 MiK 작가의 장점이 여전하면서도… 장르적으로 명확한, 기승전결이 분명한 이야기가 나왔다는 알림이 울리길 기다려 봅니다. 제 보라색 종은 항상 켜져 있거든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