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오일은 기본적으로 튀김이나 볶음 용으로 선호되지 않는 편입니다. 대신 샐러드에 드레싱을 하는 용도로는 많이 쓰이죠. 다른 기름에 비해 올리브유는 발연점이 낮아서, 튀김이나 볶음처럼 높은 온도로 가열하는 조리법에 부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올리브유로 튀겨낸 치킨이라고 브랜딩한 BBQ 치킨만 하더라도, 실제로는 100% 올리브유가 아니라 다른 오일이 첨가 – 발연점이 높아진 상태의 오일을 사용합니다. 그냥 올리브유로 닭을 튀기면 표면은 맛깔스럽게 익지만 기름의 온도 자체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튀겨진 것이라 속살은 벌건 색으로 익지 않은 상태가 되지요. 이는 참기름도 마찬가지라서, 참기름도 무치거나 버무리는 경우에는 활용되지만 프라이팬에 지지고 볶는 요리에는 기본적으로 선호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올리브유가 볶음 요리에 쓰이기도 합니다. 화력을 세게 잡지 않고 중불 정도로 맞춘 다음, 긴 시간에 거쳐 서서히 재료를 볶는 조리법에는 올리브유가 은근히 잘 쓰입니다. 참기름도 (지금은 종영한)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이 여타 식용유와 참기름을 적당히 섞어서 볶음용으로 쓰거나 하는 활용법을 보여주곤 했지요.
정리하면, 재료의 특성/특징/성격에 따라 활용하는 조리법은 어떠한 경향성을 띠고 있다는 것, 그러나 바로 그 특성/특징/성격의 핵심을 파악하여 다른 방식으로 응용, 잘 쓰이지 않는 조리법에 접목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이 될 겁니다.
요리를 비유로 글문을 열었으니, 계속해서 요리로 말을 풀어보는 게 어떨까요?
<최후의 훈민정음>은 일단 작품 소개에 나오듯 대체역사인데 아스트랄로 도착한, 기기묘묘하다면 기기묘묘한(……) 작품입니다. 음식으로 치자면 (다른 분의 표현을 살짝 빌려서) 이런 요리로 아이디어가 출발했는데 만들고 보니 비빔밥이 나왔더라하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비빔밥을 생각하고 비빔밥을 만든 경우와 다른 것을 생각했는데 만들고보니 비빔밥인 경우의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지요. 사실, 착상이나 본래 작의와는 달리 결과로 도출된 작품은 의도에서 멀찍이 떨어진 다른 느낌으로 완성되는 경우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의도와 꽤나 멀리 떨어진 느낌의 결과물을 보고 그 느낌에 호감을 가져 호응하는 독자들이 많은 경우 또한 제법 그 사례가 많지요. 다만 이번 작품을 읽고 느낀 감상으론, 요리 메뉴로 분류하자면 성격상 비빔밥에 해당하지만 잘 만들어진 비빔밥인가 하면 아쉬운 느낌도 함께 드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명장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고수의 단계에 도달한 사람들일수록 ‘요리의 절반은 재료‘라는 말에 손을 들어주더라고요. 그래서 우선 작품에 활용된 ‘재료’의 측면을 살펴보았습니다. 훈민정음과 대한민국, 대체역사 또는 가상의 미래상, 전형적이되 익숙한 모습으로 일견 코믹한 모습을 풍기는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있는 주인공 인물, 본래의 대한민국 영토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어느 아프리카 국가……. 장르상으로도 소재상으로도 여러가지 재료들이 쓰였습니다. ‘비빔밥’이라는 표현이 참 알맞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재료들의 어우러짐을 보아야겠지요. 아마 아쉬운 느낌이 이 재료들의 ‘어우러짐’에 기인한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요리로 치면, 재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 즉 ‘조리법’에 해당하겠지요. 노 교수는 나이든 어르신의 스테레오 타입을 보여주는 한편 말 안 듣는 손자 또한 익숙하다면 익숙한 그림입니다. 익숙하다는 건 어찌보면 장점입니다. 손쉽게 이해/파악하고 이야기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이점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다만 이 작품에서 제가 느낀 익숙함에는 풍자적 또는 해학적 유쾌함을 예상할 만한 요소들이었는데, 사고로 인한 부부의 사망 등 무거운 공기를 동반하는 요소들과 조화롭게 매칭되기보단 서로 다른 공기가 부유하는 인상으로 다가왔습니다. 물과 그 위에 떠있는 기름이 섞이지 않고 부유하는 모양새와 비슷한 느낌이 아쉽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다시 요리로 치자면, 갓 살얼음을 맺은 냉면 육수와 펄펄 끓는 삼계탕 육수가 만나 ‘비빔밥이 주는 맛의 어우러짐 – 하모니’의 느낌이라기보다 ‘재료의 맛이 서로 따로 분리되어 있는 기분’에 가까웠다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리뷰 의뢰는 일찍 수락한 편이었고, 그래서 가급적 서둘러 적어 올리려 했습니다. 헌데 사람 일이라는 게 신기하게도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문제들이 첩첩이 쌓이더니 한 일주일 정도는 정신도 못차리고 넉다운 되어서 책 한줄도 제대로 못읽을 정도로 상태가 안좋았더랍니다. 어제 그제 무렵부터 기운을 추스르고 다시 움직이는 중입니다. 사설을 늘어놓는 것은, 다소 늦어진 리뷰 글에 대한 변명. 이런저런 말씀을 더 나누려고 보니 공교롭게도 이미 좋은 리뷰가 하나 올라와 그 안에 제가 드리려던 이야기도 많이 담겨, 제가 드릴 말씀이 줄었다는 은근한 부담(?)으로 구질구질 제 이야기를 사족으로 곁달았습니다(헛헛…). 제 감상은 이 정도로 마무리해야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조금이나마 기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저 또한 잘 읽었다 말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