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결국, 그러나 아직 (작가: 이상문, 작품정보)
리뷰어: 주렁주렁, 19년 10월, 조회 85

이상문 작가님의 [결국, 그러나 아직]은 곧 멸망하는 지구가 배경입니다. 약 6개월 뒤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식이 전 지구인에게 알려졌고 다들 패닉에 빠진 상태이고요.  총 5편의 단편으로 구성됐고 각 편마다 등장인물들이 다르고요, 서로 겹치지는 않습니다. 총 다섯 가지 이야기가 나오는 단편집이라고도 할 수 있고 연작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읽다가 레이먼드 카버가 잠깐 생각났는데 카버 단편을 하도 옛날에 읽었던지라 기억이 거의 안 나는……)

우선 지구 멸망이란 소재에서 연상되는 아비규환이나 살아있는 지옥, 대혼란….이런 빤한 걸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그 덕에 마지막 편까지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멸망을 앞둔 인간의 잔인한 본성이 튀어나온다거나 바닥을 드러낸다거나…..그런 쪽으로 끌고 가지 않아서 좋더라고요. 이 단편소설들은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강제된 끝’을 앞둔 사람들 저마다의 자기 자리를 찾는 여정같기도 해요. 좀더 많은 캐릭터(가령 아이들이나 여성들이요)의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또 희한하게 저라면 어땠을까/ 또 남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처럼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하려나? 궁금해지더라고요. 소설의 빈 부분 – 더 많은 캐릭터들 – 을 다른 작가들이 돌아가면 채우면 어떨까, 릴레이 소설처럼요, 그렇다면 브릿g의 작가들은 이 소재로 어떤 단편을 쓰려나, 그럼 참 재밌겠다, 그런 상상을 잠깐 했어요.

이 소설에는 미국/한국/프랑스였나 영국이었던 것 같은데요, 대통령 실명이 거론됩니다. 그냥 이름만 나오는 게 아니고 멸망 소식을 접했을때 각 나라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선택을 설명해요. 이 부분이 저한테는 글쎄요, 장점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멸망이 지금/이 순간/ 일어날 수 있다는 접근성과 또 익숙한 정치가들 이름덕에 현실성을 주는 장점이 있다고는 생각을 합니다만, 소설을 읽으면서 상당히 방해받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계속해서 왜 몇몇 정치가들 이름만 실명인 걸까, 정치색을 의식하게 되고 의심하게 되고 그게 제 독서를 아주 많이 방해하는 느낌이었어요. 저에게는 이 부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 단편들 중에서 제가 좋았던 건 유서를 작성하는 현민 이야기(와…웃었어요. 이게 막 빵 터져서 웃는 게 아니라 쿡쿡 웃는 웃음이었는데요, 행동이 너무 이해가 가고 남일같지 않은 거예요. 이런 일상의 한 순간을 잘 포착했다고 느꼈어요. 지금도 충분히 웃겼지만, 아마 작가님이 나중에 더 능숙해 지면 더 빵 터지웃기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랑 집으로 가는 말년 병장과 일병의 이야기인 [집으로 가는 길] 이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뒷부분의 고양이와 두 등장인물까지좋았어요. 되게 애틋한데 그걸 말로 구구절절히 설명하지 않아서 좋더군요. 마지막 부분을 읽는데 아 뭔가 뭉클한 거예요. 제 욕심 같아서는 작가님이 이 단편을 독립시키고 (앞부분과 중반에만) 살을 좀더 붙여서 공모전에 내보시는 게 어떨까 생각도 했는데요, 또 그러면 이 소설이 처음부터 쌓아올린 것, 어찌보면 소설이 미숙한 부분도 있끼 때문에 그래서 마지막에 더 애틋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훼손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읽은지는 며칠 됐는데 이 고민을 하느라 리뷰를 쓰는데 시간이 걸렸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각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는데요, 그게 뭐냐면, 멸망이라는 SF 소재를 가져와서 한국과 한국인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란 질문이 있다면 이 소설 [집으로 가는 길]이 대답의 하나가 될 수도 있겠구나. 좋더라고요.

내친 김에 [어떤 환빠가 과거로 우연히 가버렸을  때]도 읽었는데 몇 마디 적어볼께요. 피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서]와 정서적으로? 비슷하단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나 이런 제목을 가져온 이상, 그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독자라는건, 아마 저라는 독자 한정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이 제목을 봤을때 거는 기대라는게 있지요. 분명 현대인이 과거로 가서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그게 얼마나 기발하고 제가 상상하지 못했던 내용일지를 기대합니다. 코니 윌리스가 몇 번이나 시간 여행 소설을 써도, ‘아 또 과거로 간 역사학도가 뻘짓하는 내용이겠지’하면서 책을 펴도 정말이지 너무나 감탄하게 된단 말이지요. [둠즈데이 북]을 읽으면서 목이 메일 정도로 울었어요. 물론 [어떤 환빠가 과거로 우연히 가버렸을  때]는 단편이고, 단편에서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분량상의 한계가 있으리라고 짐작을 하고서 읽었는데도, 저는 상당히 허탈하더라고요. 제목은 아주 요새의 웹소설 풍의 직관적인 제목인데 내용은 제목으로 짐작한 것과는 다른 주변부 이야기라는 인상이었어요. 이런 점이 아쉬웠어요. 뭐 결국은 제맘대로 짐작한 제 탓이겠지만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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