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지금까지 이 땅의 좀비들이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아왔나 생각해 봤습니다.
수많은 헐리웃 영화들 속에서 좀비는 인간에게 적대적인 존재로 그려집니다. 수십 명의 좀비가 한 사람의 인간에게 달려들어 살을 물어뜯고 병을 전염시킵니다. 그래서 좀비들은 마치 조스처럼, 에일리언처럼, 연쇄살인마처럼 인간들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성모 좀비 요양원>은 이전 좀비물과는 다른 독특한 감수성을 포착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좀비가 됐기 때문이겠죠.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은 그렇게 길러진다고 생각합니다. 게이, 레즈비언, 장애인 등. 주변 사람들 중에 소수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런 사람들을 한 명도 몰랐을 때와 결코 같아질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동생이 게이인데, 내 친구가 장애인인데, 감히 그들을 차별하는 정책에 동의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인지 전 이 작품에서 ‘생각보다 좀비는 무력했다.’는 말이 제일 와 닿았습니다.
상어는 생각보다 사람을 많이 죽이지 않습니다. 조스라는 영화 때문에 백상아리에 대한 공포가 매우 커졌지만, 상어가 죽이는 사람 수보다 사람이 죽이는 상어 수가 훨씬 많죠. 오히려 무서운 건 사람입니다. 좀비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좀비의 권리를 신장시켜 준 작가님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좀비 실험실이 아닌, 좀비 요양원을 만든 상상력에 감탄했습니다.